Silla > 신라민족론 > 3. 왜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 (6) 왜의 옷
 
0289 삼국지 倭
남자는 모두 모자를 쓰지 않고 상투를 틀고, 목면으로 머리를 묶는다. 그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으며, 실로 꿰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인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말아서 뒤로 묶었으며, 옷을 만드는 것이 홑이불과 같은데, 그 중앙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넣어 입는다. 벼와 모시를 재배하고 양잠을 하여 실을 만들며, 세모시, 좋은 비단 그리고 솜을 산출한다.
11484
 
0289 삼국지 倭
● 일본의 벼농사는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 주었다. 그렇다면 벼농사를 전해줄 당시의 한국인의 옷도 이 기록의 옷보다 낫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지는 우리의 조상이 한반도에 정착한 이후 들어온 것이 된다.
11551
 
0500± 강전선산(江田船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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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梁職貢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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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梁職貢圖
'왜인의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으며 실로 꿰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250여년 전의 삼국지 기록과 일치한다. 피부색이 검은 것은 오래되어 변색된 그림을 보고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왜인은 바지를 입는 문화가 있었다. 그것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はにわ를 통해 알 수 있다.
11483
 
0550± 埴輪(はにわ)
11490
 
0550± 埴輪(はにわ)
일본의 고분 시대는 기마 문화의 도입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말을 타려면 바지를 입어야 한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はにわ에는 바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왜인은 바지를 입고 중간쯤을 끈으로 묶었다. 윗도리는 아래위 두 개의 고름으로 고정하였다.
11489
 
1871 신미양요 이조군 포로
삼국지의 왜인 설명에 나오는 '남자는 모두 모자를 쓰지 않고 상투를 틀고, 목면으로 머리를 묶는다'는 묘사과 일치하는 모습이다.
11505
 
埴輪(はに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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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구려 그리고 한복(韓服)
왼쪽으로부터, 삼국지(289)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한 왜인의 옷, 고분 시대의 はにわ와 그것을 바탕으로 상상한 그림,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그림 그리고 이조 후기의 풍속화다. ● 왜의 바지 저고리 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거라면 그 당시 한국의 바지 저고리 형태도 はにわ를 통해서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상상에 의하면 고구려의 옷과는 큰 차이가 나고 이조의 한복과는 맥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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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구려 그리고 한복(韓服) - 足結
はにわ에서 나타나는 족결은 이조의 풍속화에도 나타난다. 천년이 넘는 시차가 있으나 이조 이전에는 족결이 없었다는 정황이 없으므로 이조의 족결은 삼한 시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바지 저고리 문화가 왜로 건너갈 때 족결도 따라갔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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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구려 그리고 한복(韓服) - 고름
고구려의 벽화에는 허리띠로 윗도리를 묶을 뿐, 별도의 고름이 없다. 그러나 왜의 はにわ에는 고름처럼 묶는 부분이 있어 이조의 고름과 통하는 면이 있다. 바지 저고리 문화가 왜로 건너갈 때의 한국 저고리도 はにわ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조 한복의 고름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양직공도에 나오는 신라 사신이 입은 옷에 고름이 없는 것은 일반인의 옷이 아니라 예복이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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