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9 삼국지 倭
남자는 모두 모자를 쓰지 않고 상투를 틀고, 목면으로 머리를 묶는다. 그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으며, 실로 꿰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인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거나 말아서 뒤로 묶었으며, 옷을 만드는 것이 홑이불과 같은데, 그 중앙을 뚫고 그곳으로 머리를 넣어 입는다. 벼와 모시를 재배하고 양잠을 하여 실을 만들며, 세모시, 좋은 비단 그리고 솜을 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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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삼국지 倭
● 일본의 벼농사는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 주었다. 그렇다면 벼농사를 전해줄 당시의 한국인의 옷도 이 기록의 옷보다 낫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지는 우리의 조상이 한반도에 정착한 이후 들어온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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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0539 梁職貢圖
'왜인의 옷은 모두 가로의 폭이 넓은 천을 묶어서 서로 이었으며 실로 꿰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250여년 전의 삼국지 기록과 일치한다.
피부색이 검은 것은 오래되어 변색된 그림을 보고 그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왜인은 바지를 입는 문화가 있었다. 그것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はにわ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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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0± 埴輪(はにわ)
일본의 고분 시대는 기마 문화의 도입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말을 타려면 바지를 입어야 한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はにわ에는 바지가 잘 표현되어 있다. 왜인은 바지를 입고 중간쯤을 끈으로 묶었다.
윗도리는 아래위 두 개의 고름으로 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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