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중국의 수륙 침공

-109년 한나라의 조선 침공┆598년 수나라의 고려 침공┆612년 수나라의 고려 침공┆645년 당나라의 고려 침공
 
-0195 齊┆燕┆代
• -0195 齊┆燕┆代
21067#21119 SBLNGS CHLDRN 21119
 
-0109┆左將軍 荀彘 + 樓船將軍 楊僕
• -0109┆左將軍 荀彘 + 樓船將軍 楊僕
21067#21056 SBLNGS CHLDRN 21056
 
-0109  漢의 조선 침공
• -0109 漢의 조선 침공
▐ 齊의 중심지는 발해만 안쪽에 있었다. 齊 병력을 모아 출발시켰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발해 해안선은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있었다. 이곳에서 배를 띄우면 발해에 배를 띄우는 것이 된다. 당시의 항해는 가능한 한 해안선을 따라갔다. 산동 반도에서 요동 반도로 건너가든 한반도로 바로 건너가든, 발해만 안쪽에서 띄운 배는 일단 齊의 해안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21067#21103 SBLNGS CHLDRN 21103
 
• -0109 史記(-91)
遣樓船將軍楊僕從齊浮渤海 兵五萬人 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 가을에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여 제(齊)를 따라 발해에 배를 띄우고,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좌장군 순체는 요동에서 출발하여 우거를 토벌하게 하였다. ▐ 樓船은 갑판 위에 누각이 있는 배다.
21067#21102 SBLNGS CHLDRN 21102
 
• -0109 史記(-91)
樓船將軍 將齊兵七千人 先至王險 누선장군은 제나라 병사 7천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험에 이르렀다.
21067#21105 SBLNGS CHLDRN 21105
 
• -0109 史記(-91)
左將軍素侍中 幸 將燕代卒 悍 좌장군은 본시 시중으로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가 연과 대 지방의 군사를 거느렸으므로 굳세었다.
21067#21118 SBLNGS CHLDRN 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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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0598 ┆ + 水軍總管 周羅睺
• 0598 ┆ + 水軍總管 周羅睺
21067#21068 SBLNGS CHLDRN 21068
 
• 0598.06 수서(636)
(周羅睺) 起遼東之役 徵為水軍總管 自東萊泛海 趣平壤城 遭風 船多飄沒 無功而還 (주라후) 요동에서 전쟁이 발생하자 수군총관으로 기용되어 동래에서 바다로 배를 띄워 평양성을 향하였으나 바람을 만나 배가 많이 파손되어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21067#21101 SBLNGS CHLDRN 21101
 
• 0598.06 수서(636)
▐ 東萊. 漢의 조선 침공 때도 누선장군이 동래에서 출발했을 듯하다. ▐ 비슷한 표현┆-109 從齊浮渤海┆598 自東萊泛海
21067#21106 SBLNGS CHLDRN 21106
 
0611 ┆ + 左翊衛大將軍 來護兒
• 0611 ┆ + 左翊衛大將軍 來護兒
21067#21088 SBLNGS CHLDRN 21088
 
• 0611 수서(636)
遼東之役 護兒率樓船 指滄海 入自浿水 去平壤六十里 與高麗相遇 요동에서 전쟁이 났을 때 내호아는 누선을 이끌고 큰 바다로 나아가 패수를 거슬러 평양으로부터 60리 거리에서 고려군과 맞닥뜨렸다. ▐ 비슷한 표현┆-109 從齊浮渤海┆598 自東萊泛海┆611 指滄海
21067#21100 SBLNGS CHLDRN 21100
 
0612 隋의 고려 침공
• 0612 隋의 고려 침공
21067#21090 SBLNGS CHLDRN 21090
 
• 0613 수서(636)
時將軍來護兒 以舟師 自東萊將入海 趣平壤城 軍未發 이때 내호아 장군은 수군을 이끌고 동래에서 바다로 나가 평양성을 얻을 계획이었으나 출발하지 못했다. ▐ 비슷한 표현┆-109 從齊浮渤海┆598 自東萊泛海┆611 指滄海┆613 自東萊將入海
21067#21111 SBLNGS CHLDRN 21111
 
• 0614 수서(636)
十年 又帥師度海 至卑奢城 高麗舉國來戰 護兒大破之 斬首千餘級 614년에 다시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비사성에서 고려와 전투를 벌여 깨트리고 천여명의 목을 베었다.
21067#21116 SBLNGS CHLDRN 21116
 
• 0614 수서(636)
▐ 卑奢城. 비사성은 요동반도의 끝에 있다. 내호아가 평소처럼 동래에서 출발했다면 산동반도를 따라가다 요동반도에 가까운 곳에서 요동반도로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경로는 산동반도의 끝에서 황해를 건너 한반도로 바로 가는 것보다 안전한 바닷길이라 동래에서 출발한 수군은 대부분 이 경로를 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21067#21117 SBLNGS CHLDRN 21117
 
0645 ┆遼東道行軍大總管 李勣 + 平壤道行軍大總管 張亮
• 0645 ┆遼東道行軍大總管 李勣 + 平壤道行軍大總管 張亮
21067#21094 SBLNGS CHLDRN 21094
 
• 0645 舊唐書(945)
命刑部尙書張亮爲平壤道行軍大總管 領將軍常何等率江·淮·嶺·硤勁卒四萬 戰船五百艘 自萊州汎海趨平壤 형부상서 장양을 평양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장군 상하 등과 강·회·령·협의 강한 군사 4만명·전선 5배척을 이끌고 내주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다. ▐ 비슷한 표현┆-109 從齊浮渤海┆598 自東萊泛海┆611 指滄海┆613 自東萊將入海┆645 自萊州汎海
21067#21107 SBLNGS CHLDRN 21107
 
• 0645 舊唐書(945)
又以特進英國公李勣爲遼東道行軍大總管 禮部尙書江夏王道宗爲副 領將軍張士貴等率步騎六萬趨遼東 兩軍合勢 또 특진 영국공 이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예부상서 강하왕 도종을 부총관으로 삼아서 장군 장사귀 등과 보병·기병 6만을 이끌고 요동으로 나아가게 했다. 양군이 합세하도록 하였다.
21067#21126 SBLNGS CHLDRN 21126
 
• 0645.05 舊唐書(945)
張亮副將程名振攻沙卑城 拔之 虜其男女八千口 장양의 부장 정명진이 사비성(비사성)을 공격하여 빼앗고 남녀 8천명을 생포하였다. ▐ 沙卑城은 卑沙城의 오기다. 614년의 사건에는 卑奢城이라 되어 있다.
21067#21108 SBLNGS CHLDRN 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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