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4~1904 매천야록
갑오경장 이후 동학도의 잔당들은 각지에 잠복하고 있었지만 안으로는 백성들의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았고 밖으로는 지방대에게 탄압되어 아무 횡포도 부리지 못하고 있었으나 남모르게 부서를 정해 놓고 국가의 유사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윤시병이 일진회를 창설하자 그들은 인원을 각처로 보내 제각기 일어나 호응하도록 하므로 10일도 되지 않아 13도의 동학도들은 모두 일어나 혹 진보회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일진회의 지회로 칭하기도 하였다.
2484#23729
SIBLINGS
CHILDREN
23729
•
1904 매천야록
일진회의 강령. 아! 500년 宗社와 삼천리 강토의 위기가 呼吸之間에 놓여 있다. 이런 시국을 생각해 볼 때 누가 통곡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본사에서는 몇 사람의 동지를 규합하여 이를 「一進會」로 칭하고 일심으로 진보할 것을 주의로 삼고 있으니 모든 우리 동포들은 이것을 목적으로 삼고 의무로 삼아, 하나는 개개의 血性으로 勇進할 것이며 또 하나는 단단한 丹衷으로 충군애국하여야 할 것이다.
2484#35088
SIBLINGS
CHILDREN
COMMENT
35088
•
1904 매천야록
일진회 회원들은 모두 단발을 하고 각도에 지회를 설치하였다. 이때 회장 尹始炳은 그의 일당 尹甲炳, 尹吉炳, 廉仲模, 洪錫厚, 金明濬 등과 밀의하여 일본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 세력이 외로워진다고 생각하여 일본인에게 의탁하자 일본인들은 그들을 비호하였다. 운영자금까지 주면서 일진회를 대한정치개량본부로 칭하여 그들도 당연히 정치를 참여하여야 한다며 병력을 파견하여 그들의 회의장소를 경비하기도 하였다.
2484#23728
SIBLINGS
CHILDREN
23728
•
1905 매천야록
18. 一進會의 西間島 巡視. 9월, 一進會에서 會民 李光洙를 西間島로 파견하여 巡視하였다. 西間島는 압록강 서쪽이자 寧古塔 동쪽에 있는 공허한 지역으로 그곳에 흘러 들어온 우리 백성들이 수만 호나 되었는데, 청국인들은 강제로 관할하여 그 학대를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본국의 관리가 와주기를 바란 지 이미 몇 년이 되었으나 우리 조정에서는 그럴 여가가 없었다.
2484#35092
SIBLINGS
CHILDREN
COMMENT
350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