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 자료 > 보수(保守)와 진보(進步)
 
1904 매천야록
일진회의 강령. 아! 500년 宗社와 삼천리 강토의 위기가 呼吸之間에 놓여 있다. 이런 시국을 생각해 볼 때 누가 통곡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본사에서는 몇 사람의 동지를 규합하여 이를 「一進會」로 칭하고 일심으로 진보할 것을 주의로 삼고 있으니 모든 우리 동포들은 이것을 목적으로 삼고 의무로 삼아, 하나는 개개의 血性으로 勇進할 것이며 또 하나는 단단한 丹衷으로 충군애국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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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매천야록
일진회의 친일. 윤시병이 일진회를 창설하자 그들은 인원을 각처로 보내 제각기 일어나 호응하도록 하므로 10일도 되지 않아 13도의 동학도들은 모두 일어나 혹 進步會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일진회의 지회로 칭하기도 하였으며, 觀察府에서 회의를 개최하기도 하고, 혹은 군내의 불량민들이 답지하여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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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매천야록
20. 일진회와 지방민의 현혹. 一進會를 창설할 때 尹始炳 등은 서로 속이어 시국이 장차 바뀐다고 하면서 관리를 모두 일진회에서 선출하여, 높은 사람은 정부에 있고 아랫사람은 관찰사와 군수로 있었으므로 비록 鄕長과 里長 자리라도 일진회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면 감히 넘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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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매천야록
02. 一進會의 宣言書 게시. 一進會의 尹始炳, 宋秉畯 등이 선언서를 게시하였다. 그 大意는 「우리나라는 멸망할 징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으므로 공사간의 大小人이 모두 일본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10월 勒約 때의 영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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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 매천야록
18. 一進會의 西間島 巡視. 9월, 一進會에서 會民 李光洙를 西間島로 파견하여 巡視하였다. 西間島는 압록강 서쪽이자 寧古塔 동쪽에 있는 공허한 지역으로 그곳에 흘러 들어온 우리 백성들이 수만 호나 되었는데, 청국인들은 강제로 관할하여 그 학대를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본국의 관리가 와주기를 바란 지 이미 몇 년이 되었으나 우리 조정에서는 그럴 여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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