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 자료 > 신라와 왜(倭)
 
0295 삼국사기(1145)
봄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백제와 함께 도모해서 일시에 바다를 건너 그 나라에 들어가 공격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서불한 홍권이 대답하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까지 가서 정벌한다면 뜻하지 않은 위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물며 백제는 거짓이 많고 항상 우리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또한 함께 도모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왕이 “옳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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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02 삼국사기(1145)
왕이 왜인이 대마도에 군영을 두고 무기와 군량을 쌓아 두어 우리를 습격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예 군사를 뽑아 적의 군영을 격파하고자 하니 서불한 미사품이 말하였다. “험한 곳에 의지하여 관문을 설치하고 오면 곧 그들을 막아서 침입하여 어지럽힐 수 없게 하다가 유리해지면 곧 나아가 그들을 사로잡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왕이 그 말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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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291) 해사록(1607)
그들의 연대기(年代記)를 보면, ‘이른바 응신 22년에 신라 군사가 명석포에 들어왔다.’ 하였는데, 명석포는 대판에서 겨우 1백 리 떨어져 있다. 적간관 동편에 큰 무덤 하나가 있는데, 왜인이 이를 가리켜 말하기를, ‘이는 백마분인데 신라 군사가 깊이 들어오니, 일본 사람이 화호를 청하여 군사를 해산하고 흰 말을 베어서 맹세하고, 여기에 말을 묻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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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3 동사강목(1778)
진평왕 5년 신라가 왜(倭)의 서변을 토벌하였다. 【안】 해동기(海東記)에는, “왜황 민달 12년 계묘에 신라가 서변을 토벌하였다.” 고 적혔으나 신라와 백제가 왜(倭)와 접경하여 그 환(患)을 자주 입었는데 교빙과 정벌에 대하여는 사적에 드물어서, 바다를 건너서 왜국을 정벌하였다는 일은 듣지 못하였다. 왜사 연대기(年代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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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1-11-24 속일본기(797)
신라가 사찬 김약필, 대내말 김원승을 보내 조(調)를 바쳤다. 말을 익힌 자 세 사람도 약필을 따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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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7-10-28 속일본기(797)
신라 사신 일길찬 김필덕과 부사 내마 김임상 등이 내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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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8-01-03 속일본기(797)
신라 사신 일길찬 김필덕 등이 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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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8-02-03 속일본기(797)
김필덕 등이 번(蕃)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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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8-03 삼국사기(1145)
일본국 사신이 와서 왕이 숭례전에서 접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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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1-09 속일본기(797)
신라국이 살찬 김복호와 금찬 김효원 등을 보냈는데, 와서 국왕의 상(喪)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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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4-01 속일본기(797)
신라객에게 난파관에서 잔치을 베풀었다. 조를 내려 “신라국가 살찬 김복호가 표(表)를 올려 ‘우리 임금이 불행하게도 지난 가을부터 편찮으시더니 금년 봄에 돌아가셔서 영원히 성조와 작별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사신을 뽑아 보내어 조문하고 부의하도록 하라. 복호 등은 멀리 바다를 건너와 사신의 임무를 다하였으니 짐이 그 고된 일을 가상히 여긴다. 마땅히 포백을 내려주도록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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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5-02 속일본기(797)
김복호 등이 번(蕃)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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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5-03 속일본기(797)
표착한 신라인이 복호 등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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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9-22 속일본기(797)
종5위하 파다조신광족을 파신라대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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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10-25 속일본기(797)
천황이 대안전에서 파신라사 파다조신광족과 액전인족에게 각각 침구 1령과 옷 한 벌을 내리고, 또 신라왕에게 비단 2필과 명주 40필을 내리도록 조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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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_ 삼국사기(1145)
일본국에서 사신이 왔는데 모두 20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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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08-03 속일본기(797)
파신라사 종5위상 파다조신광족 등이 신라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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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1 삼국사기(1145)
일본국의 전선 3백 척이 바다를 건너 우리 동쪽 해변을 습격하였다. 왕이 장군에게 출병을 명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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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0-01-01 속일본기(797)
천황이 대극전에서 신년 축하 조회를 받았다. 발해군의 사신과 신라학어 등이 행렬에 함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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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2-02-03 속일본기(797)
대행부에서 신라 사신 사찬 김흠영 등 187인이 내조했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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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2-02-05 속일본기(797)
조를 내려 새로운 수도의 창건으로 궁실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우대변 기조신반마려 등에게 명하여 김흠영 등에게 대행에서 향응을 베풀고 그 곳에서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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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2-10 삼국사기(1145)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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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2-03-22 속일본기(797)
대행부에서 신라왕자 한아찬 김태렴, 조(調)를 바치는 사신 대사 김훤과 왕자를 보내는 사신 김필언 등 700여 인이 7척의 배를 타고 와서 머물고 있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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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2-06-14 속일본기(797)
신라왕자 김태렴 등이 조정에 배알하고 아울러 조(調)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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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2-06-22 속일본기(797)
태렴 등이 대안사와 동대사에 나아가 예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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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2-07-24 속일본기(797)
태렴 등이 돌아가 난파관에 있었는데 칙(勅)으로 사신을 보내어 명주와 포(布), 술과 안주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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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3-08 삼국사기(1145)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오만하고 예의가 없었다. 그러므로 왕이 그들을 접견하지 않자 마침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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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0-09-16 속일본기(797)
신라국이 급찬 김정권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육오안찰사 종4위하 등원혜미조신조갈 등으로 하여금 내조한 이유를 묻게 하였다. 정권이 “직공을 닦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저희 나라의 왕이 조(調)를 가져다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성조의 풍속과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학어 2인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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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0-01-05 속일본기(797)
신라 사신이 방물을 바치고 이어, “신라 국왕께서 ‘삼가 살찬 김난손과 급찬 김암 등을 보내어 조(調)를 바치고 겸하여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파당판관 해상삼수 등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사신에 딸려 보내고, 또한 상례에 따라 학어생을 보냅니다’고 하셨습니다”하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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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05 삼국사기(1145)
일본국이 사신을 파견해 황금 3백 냥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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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9-07-02 일본삼대실록
칙을 내려 대행부사를 견책하기를, “여러 나라의 공조사의 관리와 영장들은 일시에 함께 떠나야 하고 그 선후를 흐트러뜨리거나 무리를 떠나서는 안된다. 그런데 풍전국 한 나라만 먼저 떠나도록 하였더니, 나약하고 간사한 사람들은 호랑이 입의 먹이가 되어, 드디어는 신라 도적들로 하여금 틈을 타 침탈케 함으로써 관물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욕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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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70-02-15 일본삼대실록
신라의 적선 두 척이 축전국 나가군의 황진에 이르러서 풍전국 공조선의 견면을 약탈하여 도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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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82-04 삼국사기(1145)
일본 국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백 냥과 명주 1백 개를 진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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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4년 이후 도화견문지(圖畫見聞誌)
왜국은 일본국이다. 왜(倭)라는 원래 이름을 부끄러워했는데, 극동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가 일본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속국이다. 倭國乃日本國也,本名倭,既耻其名,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今則臣屬高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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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石浦
응신 22년에 신라 군사가 명석포(明石浦)에 들어왔다. 명석포는 대판에서 겨우 1백 리 떨어져 있다. 적간관(赤間關) 동편에 큰 무덤 하나가 있는데, 왜인이 이를 가리켜 말하기를, 이는 백마분(白馬墳)인데, 신라 군사가 깊이 들어오니, 일본 사람이 화호를 청하여 군사를 해산하고, 흰 말을 베어서 맹세하고, 여기에 말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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筑前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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豊前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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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략기(扶桑畧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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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해적은 왜 대마도를 침공했나
2012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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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신라구
신라구(新羅寇) 또는 신라 해적(新羅海賊)은 신라시대에 일본의 구주 지방과 대마도 등으로 진격해서 물자를 약탈한 신라인 출신의 해적 집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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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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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후기(日本後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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