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倭의 설화에 등장하고 가라의 설화는 倭의 설화와 닮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및 가라와 倭는 오래 전부터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라가 倭와 우호적이었던 데 반해 신라는 倭와 지속적으로 대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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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4.01 속일본기(797)
신라객에게 난파관에서 잔치을 베풀었다. 조를 내려 “신라국가 살찬 김복호가 표(表)를 올려 ‘우리 임금이 불행하게도 지난 가을부터 편찮으시더니 금년 봄에 돌아가셔서 영원히 성조와 작별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사신을 뽑아 보내어 조문하고 부의하도록 하라. 복호 등은 멀리 바다를 건너와 사신의 임무를 다하였으니 짐이 그 고된 일을 가상히 여긴다. 마땅히 포백을 내려주도록 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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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0.09.16 속일본기(797)
신라국이 급찬 김정권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육오안찰사 종4위하 등원혜미조신조갈 등으로 하여금 내조한 이유를 묻게 하였다. 정권이 “직공을 닦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저희 나라의 왕이 조(調)를 가져다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성조의 풍속과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학어 2인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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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0.01.05 속일본기(797)
신라 사신이 방물을 바치고 이어, “신라 국왕께서 ‘삼가 살찬 김난손과 급찬 김암 등을 보내어 조(調)를 바치고 겸하여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파당판관 해상삼수 등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사신에 딸려 보내고, 또한 상례에 따라 학어생을 보냅니다’고 하셨습니다”하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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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9.07.02 일본삼대실록
칙을 내려 대행부사를 견책하기를, “여러 나라의 공조사의 관리와 영장들은 일시에 함께 떠나야 하고 그 선후를 흐트러뜨리거나 무리를 떠나서는 안된다. 그런데 풍전국 한 나라만 먼저 떠나도록 하였더니, 나약하고 간사한 사람들은 호랑이 입의 먹이가 되어, 드디어는 신라 도적들로 하여금 틈을 타 침탈케 함으로써 관물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욕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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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가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주장
천황가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주장은 다시 그 뿌리에 따라 신라유래설, 임나유래설, 부여유래설 등으로 나뉘어진다.
1890년 성야항(星野恒 ほしの ひさし)은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연구한 후 일본 천황가의 선조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라왕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신라왕은 먼저 시마네 지방에 정착하여 세력을 키워나갔고 동쪽으로 정벌(神武東征)에 나서 마침내 일본열도를 모두 정복하고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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