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壤·原은 벌을 훈차한 것으로 보이는데, 낙랑군 25현이나 삼한 78국 그리고 백제 58성에는 그것이 들어간 지명이 거의 없다. 고려에서 國襄, 故國川原, 東襄, 柴原, 中壤, 西壤, 好壤, 故國原 그리고 故國壤처럼 왕의 무덤이 있는 압록강 유역의 벌 이름으로 붙이기 시작해서 영토의 확장을 따라 차현과 죽령에 이르는 지역까지 확장하였다.
이 襄·壤·原은 차현과 죽령 이남의 지명에 붙은 卑離·夫里·伐·弗·火에 대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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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9~0392 襄·壤·原
國襄·故國川原·東襄·柴原·中壤·西壤·好壤·故國原·故國壤
▐ 왕이 죽으면 □川之原에 묻고 □川王 또는 □壤王이라고 했다. □에 들어가는 故國, 東, 中, 西 그리고 美는 모두 훈차다. □壤은 □川이 흐르는 들, 즉 □川之原을 뜻한다. 그런데 故國之原에는 묻힌 왕이 세 명이나 되어 故國川王, 故國原王 그리고 故國壤王으로 명칭을 달리하였다.
27475#2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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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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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走壤
走壤 → 牛首·牛頭(首次若·烏根乃) → 中首 → 首若 → 朔州 → 春州
▐ 백제의 동쪽에 있었다는 東有樂浪²은 춘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낙랑은 37년에 고려가 멸망시켰다고 하는 樂浪²으로 추정되는데, 245년에 위나라가 고려를 치고 영동 지역을 복속시킬 때 다시 낙랑과 대방의 영향권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走壤이라는 지명은 고려가 통치할 때 붙여졌을 듯하다.
27475#27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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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1 平壤³
慰禮城 → 平壤 → 北漢山郡
백제 성명왕이 몸소 군사 및 신라와 임나 두 나라의 병사를 거느리고 고려를 정벌하여 한성의 땅을 차지하였다. 또 진군하여 平壤을 토벌하였는데, 무릇 옛 땅 6군을 회복하였다.
▐ 여기에 나오는 平壤을 대동강 유역의 平壤²으로 보기에는 정황상 무리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서울 광진구에 있었던 平壤³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27475#2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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