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서라벌 주변의 明活山, 吐含山, 北兄山, 西兄山 등이 제사를 지낸 곳으로 나와 있다. 남산만 빠졌을 리는 없을 테니, 제사 기록에 있는 髙墟(沙梁)를 남산에 제사지낸 곳으로 추정한다. 고려사에도 沙梁을 南山部로 바꾸었다고 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남산은 남북으로 결이 나 있어 금오봉에 오르는 길 또한 이 결을 따라 났을 것이므로 그 입구인 포석정 일대를 突山 高墟村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蘿井과 가까워 혁거세 설화와도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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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2 三國史記(1145)
6부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를 사여하였다. 楊山部는 梁部라고 하고 성은 李로 하였으며, 高墟部는 沙梁部라고 하고 성은 崔로 하였다. 大樹部는 漸梁部(牟梁部라고도 한다)라고 하고 성은 孫으로 하였으며, 干珍部는 本彼部라고 하고 성은 鄭으로 하였다. 加利部는 漢祇部라고 하고 성은 裵로 하였으며, 明活部는 習比部라고 하고 성을 薛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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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5- 三國史記(1145) 祭祀
大祀 三山 一奈歴(習比部)┆中祀 五岳 東吐含山(大城郡)┆中祀 北兄山城(大城郡)┆小祀 髙墟(沙梁) 西述(牟梁)
▐ 習比部는 明活山 아래에 있고 西述(牟梁)은 西兄山 아래에 있다. 따라서 서라벌 주변의 明活山, 吐含山, 北兄山, 西兄山 등 주요 산이 모두 제사를 지낸 곳으로 나와 있다. 남산만 빠져있을 리는 없을 테니, 髙墟(沙梁)에서 남산에 제사지냈을 가능성이 있다.
26786#2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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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髙墟村의 우두머리인 소벌공이 楊山의 기슭을 바라보니 蘿井 옆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가서 살펴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단지 큰 알이 있었다. 알을 깨뜨리니 어린아이가 나왔다. 6부의 사람들이 그 탄생이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 이르러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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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 三國史記※
▐ (이 지도와 사진은 위가 남쪽이다.) 남산은 남북으로 결이 나 있다. 따라서 정상에 오르는 길 또한 이 결을 따라 났을 것이다. 그 길의 출발지는 포석정 일대이므로 고대인들에게는 그 일대가 남산의 아래라고 여겨졌을 듯하다.
이곳은 蘿井과 가까워 그 옆 숲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게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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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 ✗
沙梁里 閼英井(娥利英井이라고도 한다)에서 계룡이 나타나서 왼쪽 옆구리로부터 동녀(혹은 용이 나타나 죽으매 그 배를 가르고 얻었다고도 한다)를 낳으니 자색이 뛰어나게 고왔다. 그러나 입술이 닭의 부리 같은지라 月城 北川에 가서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퉁겨져 떨어졌으므로 그 천의 이름도 따라서 撥川이라 하였다. 궁실을 남산 서쪽 기슭(지금의 昌林寺이다)에 짓고는 두 명의 신성한 아이를 모셔 길렀다.
26786#26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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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東國輿地勝覽
金鼇山 一名南山 在府南六里
금오산은 남산이라고도 한다. 부의 남쪽 6리에 있다. 당 나라의 고운이 최치원에게 지어준 시에, “들으니 바닷가에 세 마리의 금오가 있어, 머리 위에 높디 높은 산을 이었다네. 산 위에는 구슬궁ㆍ진주대궐ㆍ황금전이요, 산 밑에는 천리 만리 끝없이 넓은 물결, 그 곁에 한 조각 계림이 푸른데, 금오산이 정기를 모아 기특한 인재 낳았네.” 하였다.
26786#2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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㖨·喙·啄·梁·涿
沙喙(524 봉평신라비)-沙㖨(720 일본서기)-沙梁(1145 삼국사기)-沙涿(1281 삼국유사)┆喙己呑·㖨己呑(720 일본서기)┆啄評(636 양서)-喙評(801 통전)┆㖨國·喙地(720 일본서기)-達伐·達句伐(1145 삼국사기)
▐ 달구벌과 서라벌의 지명에 나오는 喙·達·㖨·梁·啄·涿은 모두 같은 발음을 표기한 듯하다. 최치원은 신라인들이 연나라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북중국의 涿水에서 지명을 땄다고 했다.
26786#2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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