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당시에 유포되었던 유언비어는 이후 음모론으로 발전하였고 지금은 광주□□에 대한 일반적 인식으로 고착되었다.
그러나 근거가 나온 것은 하나도 없다.
→ 미국 책임┆살인마 전두환┆경상도 군인┆발포명령┆암매장┆헬기 사격┆폭동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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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였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악랄한 유언비어가 광주 시내를 뒤덮었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 '무지막지한 군인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잘라냈다', '처녀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등 수많은 유언비어가 사실인 양 퍼져나갔다.
3250#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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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미국배후설
광주□□은 미국이 광주를 도와주러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선동에 더욱 힘을 얻었으나 항공모함은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왔다. 또 미국은 진압군의 광주 이동을 허가해 주었는데 조선은 이를 '미국이 전두환을 보내 광주폭동을 잔인하게 진압하게 했다'는 이야기로 증폭시켰다.
3250#2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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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전두환관여설
전두환관여설은 대통령-계엄사령관-계엄군으로 이어지는 지휘계통 바깥의 전두환이 광주□□의 진압에 관여하였다는 주장으로 암매장설과 결합하여 전두환을 학살자로 부르게 한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집요하게 뒤져 왔지만 전두환이 광주□□의 진압에 관여한 증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전두환관여설에 기반한 투쟁 세력은 전두환에게 사과를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이 자백에 매달리는 것과 같았다.
3250#3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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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경상도군인설
광주□□를 폭발시킨 가장 큰 자극은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소문이었다.
당시 경상도 포항에 있는 해병대는 경상도에 투입되었고 서울·경기도와 강원도에 있는 공수부대 26개 대대는 서울에 투입되었으며 전라도 익산에 있는 공수부대 4개 대대는 광주에 2개 대대, 전주와 대전에 각각 1개 대대로 갈라 투입되었다.
광주 지역의 작전을 맡았던 전투교육사령부와 31사단은 모두 광주에 있었다.
경상도군인설은 사실이 아니다.
3250#26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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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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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발포명령설
20일 23시에 광주역 앞에서 3공수의 발포로 5명이 숨졌다. 21일 13시에는 전남도청 앞에서 7공수와 11공수의 발포로 36명이 죽었다. 이 두 사건은 광주사태의 발포 시작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상부로부터 별도의 발포 명령이 내려온 증거는 없다.
발포명령설은 전두환관여설과 암매장설을 연결하여 광주□□음모론을 형성하는 핵심 고리 중 하나인데 이렇게 근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광주□□음모론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3250#3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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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암매장설
암매장설은 광주□□때 계엄군의 발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이들 사망자들은 암매장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암매장설은 계엄군을 악마화하는 핵심 주장 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암매장 의혹이 제기된 곳 수십 군데를 파보았지만 나온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있었던 것은 증명할 수 있어도 없었던 것은 증명할 수 없기에 암매장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3250#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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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직승기사격설
직승기 사격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고 전일빌딩에 직승기 사격의 탄흔이 있으며 직승기 사격 명령이 있었다는 기록과 증언도 있다. 그러나 사격을 실시했다는 증언이나 기록은 없고 직승기 사격의 피해자로 판명된 사례도 없다.
직승기 사격은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쏘는 경우와 사람을 겨누고 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후자도 비무장 시위대를 향한 경우와 무장 폭도를 향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 탄흔은 있으나 피탄자가 없기 때문에 무력시위의 가능성이 높다.
3250#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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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광주□□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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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
인민재판과 처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미국무성의 25일과 26일 전문 세 곳에서 나타난다. 이 이야기는 카빈 소총에 맞아 죽은 민간인 시체와 연결될 수 있다. 카빈 소총은 21일부터 폭도에 의해 대량으로 탈취되었는데 계엄군은 그 총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인민재판은 군중들이 하는 재판이라 목격자가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인민재판을 봤다는 목격자는 없다. 계엄사령부의 발표에도 인민재판에 대한 언급이 없다.
3250#9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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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계획
피터슨 목사는 미 공군기지 사령관 측근인 데이비드 힐 중사로부터 계엄군의 도심 폭격계획을 미군이 저지했다는 말을 들었다.
수원과 사천 비행장의 조종사는 광주사태때 폭탄을 장착하고 대기했다가 바로 풀었다고 증언했다.
▐ 광주의 소요가 무장폭동으로 발전하자 월남 내전의 경험이 있는 군은 조건반사적으로 폭격을 준비했을 수 있다. 그런데 무장대기를 지시하고 보니까,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고 폭도와 계엄군이 뒤섞여 있는 상태라 바로 무장대기를 해제한 것이 아닐까?
3250#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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