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음모론은 '미국이 전두환을 박정희의 후임으로 내세우자 전두환은 경상도 군인들을 광주에 투입하고 사적인 경로를 통해 발포 명령을 내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자 이들을 암매장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나오지 않자 전두환의 사과를 애원하거나 노태우 아들, 전두환 손자, 전두환 고향 사람들의 견해 등을 들어 근거의 부족을 가리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광주□□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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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미국개입설
김씨조선은 미국의 카터 정부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광주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로 결정하고 그 돌격대로 전두환을 내몰았다고 주장해 왔다.┆위컴 주한 미군 사령관은 최근
"나는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한 지원도 요청했을 것이다. 만일 더 큰 사태가 벌어졌다면 더 공격적으로 대응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미국개입설 때문에 광주, 부산, 대구 그리고 서울의 미문화원이 공격을 받았다.┆최근에는 김씨조선도 이 주장을 하지 않는다.
3250#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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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전두환관여설
전두환관여설은 대통령-계엄사령관-계엄군으로 이어지는 지휘계통 바깥의 전두환이 광주□□의 진압에 관여하였다는 주장으로 암매장설과 결합하여 전두환을 학살자로 부르게 한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집요하게 뒤져 왔지만 전두환이 광주□□의 진압에 관여한 증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전두환관여설에 기반한 투쟁 세력은 정당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전두환에게 사과를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이 자백에 매달리는 것과 같았다.
3250#3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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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경상도군인설
광주□□를 폭발시킨 가장 큰 자극은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소문이었다.
당시 경상도 포항에 있는 해병대는 경상도에 투입되었고 서울·경기도와 강원도에 있는 공수부대 26개 대대는 서울에 투입되었으며 전라도 익산에 있는 공수부대 4개 대대는 광주에 2개 대대, 전주와 대전에 각각 1개 대대로 갈라 투입되었다.
광주 지역의 작전을 맡았던 전투교육사령부와 31사단은 모두 광주에 있었다.
경상도군인설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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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발포명령설
20일 23시에 광주역 앞에서 3공수의 발포로 5명이 숨졌다. 21일 13시에는 전남도청 앞에서 7공수와 11공수의 발포로 36명이 죽었다. 이 두 사건은 광주사태의 발포 시작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상부로부터 별도의 발포 명령이 내려온 증거는 없다.
발포명령설은 전두환관여설과 암매장설을 연결하여 광주□□음모론을 형성하는 핵심 고리 중 하나인데 이렇게 근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광주□□음모론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3250#3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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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암매장설
암매장설은 광주□□때 계엄군의 발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계엄군의 발표에서 빠진 사망자들은 암매장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암매장설은 광주□□ 진압을 떳떳하지 못한 일로 만드는 핵심 주장 중 하나다.
그러나 1997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암매장 의혹이 제기된 곳 수십 군데를 파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암매장설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광주□□에 대한 인상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3250#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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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국군/지역조직 공작설
지역에 흩어져 있는 무기고를 신속하게 턴다거나 방산업체로부터 장갑차를 탈취하여 몰고 다닌다거나 하는 일은 일반 사람들이 하기 힘들다. 여기에 조직적으로 움직인 무리가 있었다는 목격담이 더해져 공작설이 나오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지만원, 김삼웅, 허장환, 김용장 그리고 정규재의 견해가 같다. 다만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인민군 특수부대, 국군 편의대, 지역조직 등으로 갈린다.
▶이 중 어느 것도 물증이 없으나 지역조직설이 가장 자연스럽다.
325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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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설
인민재판과 처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미국무성의 25일과 26일 전문 세 곳에서 나타난다. 이 이야기는 카빈 소총에 맞아 죽은 민간인 시체와 연결될 수 있다. 카빈 소총은 21일부터 폭도에 의해 대량으로 탈취되었는데 계엄군은 그 총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민재판은 군중들이 하는 재판이라 목격자가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인민재판을 봤다는 목격자는 없다. 계엄사령부의 발표에도 인민재판에 대한 언급이 없다.
3250#9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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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승기사격설
직승기 사격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고 전일빌딩에 직승기 사격의 탄흔이 있으며 직승기 사격 명령이 있었다는 기록과 증언도 있다. 그러나 사격을 실시했다는 증언이나 기록은 없고 직승기 사격의 피해자로 판명된 사례도 없다.
직승기 사격은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쏘는 경우와 사람을 겨누고 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후자도 비무장 시위대를 향한 경우와 무장 폭도를 향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탄흔은 있으나 피탄자가 없기 때문에 무력시위의 가능성이 높다.
3250#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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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계획설
피터슨 목사는 미 공군기지 사령관 측근인 데이비드 힐 중사로부터 계엄군의 도심 폭격계획을 미군이 저지했다는 말을 들었다.
수원과 사천 비행장의 조종사는 광주사태때 폭탄을 장착하고 대기했다가 바로 풀었다고 증언했다.
▶광주의 소요가 무장폭동으로 발전하자 월남 내전의 경험이 있는 군은 조건반사적으로 폭격을 준비했을 수 있다. 그런데 무장대기를 지시하고 보니까,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고 폭도와 계엄군이 뒤섞여 있는 상태라 바로 무장대기를 해제한 것이 아닐까?
3250#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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