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018 百濟 遷都 > 0918⁺ 楊州本高句麗❸北漢山郡(一云南平壤城)
 
• 1451
楊州本高句麗北漢山郡(一云南平壤城)
1238#5503 SBLNGS CHLDRN 5503
 
• 1451 高麗史
남경유수관 양주는 본래 고구려의 北漢山郡(南平壤城이라고도 한다)으로 백제의 근초고왕이 차지하였다. 근초고왕 25년에 南漢山에서 도읍을 옮겼다. 개로왕 20년에 이르러 고구려 자비왕이 쳐들어와서 漢城을 포위하자 개로왕이 나와 도망하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살해되었다. 그 해 아들 문주왕이 熊津으로 도읍을 옮겼다. 뒤에 신라 진흥왕 15년에 北漢山城으로 와서 국경을 정하였다. 진흥왕 17년에 北漢山州를 창설하고 軍主를 두었다. 경덕왕 14년에 漢陽郡으로 고쳤다
1238#1855 SBLNGS CHLDRN CMMNT 1855
 
• 1451 高麗史
長漢城은 신라의 국경인 漢山의 북쪽, 漢江 가에 있었다. 신라가 重鎭을 설치하였다가, 뒤에 고구려에게 점거되자 신라 사람들이 군사를 일으켜 그 성을 다시 찾고, 이 노래를 지어 그 공로를 기념하였다. ▐ 北漢山城인 듯하다.
1238#1894 SBLNGS CHLDRN CMMNT 1894
 
• 1451 高麗史
1067년에 승격시켜 南京留守官이 되었는데, 근처 고을의 백성을 이주시켜 채웠다. 숙종 원년(1096)에 위위승동정 김위제가 도선밀기에 의거하여 南京으로 천도할 것을 요청하면서 양주에 木覓壤이 있어 도성을 세울 만하다고 말하였다.
1238#1921 SBLNGS CHLDRN CMMNT 1921
 
• 1451 高麗史
三角山(新羅稱負兒嶽) 漢江(卽沙平渡) 楊津(新羅時 北瀆漢山河 躋中祀) 삼각산(신라에서는 부아악이라 불렀다) 한강(곧 사평도다) 양진(신라 때의 북독인 한산하로서 중사에 올라 있었다.)
1238#1922 SBLNGS CHLDRN CMMNT 1922
 
1834 ◾古楊州 < 楊州 < 漢陽郡 < 北漢山郡 < 慰禮城
• 1834 ◾古楊州 < 楊州 < 漢陽郡 < 北漢山郡 < 慰禮城
중랑천을 따라 내려와서 한강을 건너 탄천을 따라 올라가려면, 풍납토성과 廣津 맞은 편에 있는 나루에서 건너가는 게 좋고, 楊津이 바로 그 나루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楊州는 峨嵯山 아래가 된다. 왕씨고려때의 楊州는 신라때 漢陽郡이었고 낙랑고려때는 北漢山郡이었다. 이곳은 백제의 慰禮城으로도 어울린다.
1238#32208 SBLNGS CHLDRN 32208
 
• 1834 靑邱圖 - 古楊州 廣州
1238#5500 SBLNGS CHLDRN 5500
 
• 1856~1861 東輿圖 - 古楊州 廣州
古楊州가 峩差山 동쪽 너머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기록에 나타나는 정황과 어긋난다.
1238#21961 SBLNGS CHLDRN 21961
 
• 1884 地圖 - 古楊州
古楊州가 峨嵯山 아래에 있다. 이것이 기록에 나타나는 정황과 부합한다. 漢陽郡本高句麗北漢山郡(一云平壤)과 平壤今楊州也에 의해 北漢山郡(平壤)→漢陽郡→楊州의 위치가 이곳으로 비정된다.
1238#32207 SBLNGS CHLDRN 32207
 
• 1884 地圖 - 廣州
1238#32216 SBLNGS CHLDRN 3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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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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