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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이후 나의 전장(戰場)은 태백산지구로 옮겨졌다. 당시 강원도·경북 산악지대엔 북에서 남파한 유격대와 지역 빨치산이 합세해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다. 북은 2500여명의 유격대를 100명 단위로 해상과 산악을 통해 침투시켰다. 그곳은 낮엔 대한민국, 밤엔 인민공화국이었다. 현지에 가보니 국군 부대는 군기 빠진 오합지졸에 대민관계도 엉망이었다. 국군은 적만큼이나 주민들에게 '몹쓸 놈들'이었다. 멋대로 닭·돼지를 잡아먹고 식량과 김치를 퍼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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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어머니가 권사로 계신 이 교회에 들이닥친 공산당원 4~5명이 다짜고짜 "교회를 접수한다. 내일 당장 문을 닫아라"고 했다. 난 "이 땅엔 종교의 자유도 없느냐"며 버텼지만 그들은 "동무는 말이 많구만. 반동이야"라고 했다. 반동은 인민의 적이다. 한번 낙인 찍히면 한밤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사라진다. 어머니는 "꼭 살아야 한다"며 내 등을 떠미셨다. 그날 밤 나는 무작정 남쪽을 향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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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김일성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 많이 들었소. 나와 함께 평양에 가지 않겠소"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즉답하지 않았다. 이미 사회주의의 허구성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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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제주인민봉기
1948년 4월 소위 임관과 함께 처음 배치된 곳은 제주도 9연대. 첫날 묵은 여관 옆 골목길에는 폭도들에게 맞아 죽은 경찰관 시체가 나뒹굴었고, 서북청년단원들이 죽창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이른바 4·3사건이었다. 그곳엔 이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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