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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우리 나라의 토지제도는 국유의 유법을 두었으니 선현의 통론한 바 준성조지공분수지법하여 혁후인사유겸병지폐라 하였으니 이는 문란한 사유제도를 국유로 환원하라는 토지혁명이다. 우리 민족은 옛 규칙과 새 법을 참작하여 토지제도를 국유로 확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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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11-27 카이로 선언
1943년 11월 27일 미·영·중의 3개 연합국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여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5일간에 걸친 회담에는 루스벨트·처칠·장제스 등이 대표로 참가했으며, 회담 결과 발표한 이 선언에서 연합국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최초로 일본에 대한 전략을 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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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7-26 포츠담 선언
이 회담에서는 일본의 항복 권고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본에 대한 처리 문제가 논의되었고, 합의 내용은 "포츠담 선언"으로 공포되었다.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영국의 수상인 처칠, 중화민국의 총통인 장제스가 회담에 참여하여 선언에 서명하였고,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도 참전과 동시에 이 선언에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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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8-15 옥음방송
일본 제국의 히로히토 천황이 〈대동아 전쟁 종결의 조서〉를 읽은 라디오 방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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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9-02 일본의 항복문서
The Japanese Instrument of Surrender was the written agreement that formalized the surrender of the Empire of Japan, marking the end of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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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9-06 조선인민공화국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정·선포하였다. 중앙인민위원 55명과 후보위원 20명, 고문 12명을 선출하였으며 군정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남북의 전 도, 군, 면에 인민위원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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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9-08 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
在朝鮮美陸軍司令部軍政廳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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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9-16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 김성수, 송진우, 장덕수, 조병옥, 장택상, 윤보선 등이 결성하였다. ○ 지주와 자본가들이 주축이었고 일조시대 기득권층이 의지했다. ○ 건국준비위원회와 그로부터 나온 조선인민공화국을 반대하고 임시정부를 지지하였다. ○ 조병옥, 장택상, 윤보선 등 미군정청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옛 조선총독부의 경찰과 관료를 그대로 기용하였다. ○ 서북청년단 사무소는 한민당 본부가 있던 동아일보 사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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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02 비상국민회의
1946년 2월 13일에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여운형, 조소앙, 안재홍 등 28명의 최고정무위원직을 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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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02 민주주의민족전선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전평, 전농, 청년총동맹, 부녀총동맹, 각종 문화단체 등이 가입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원봉, 장건상, 성주식, 김성숙과 중도우파에서 활동하였던 이극로, 천도교 간부 오지영 등이 가담했다. 공동의장단은 여운형, 박헌영, 허헌, 김원봉, 백남운의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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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0-01 대구인민봉기
대구인민봉기는 해방 이후 대구에서 응축된 모순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었다. 식량정책을 비롯한 미군정의 정책적 실패, 전재민의 증가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 상황, 친일경찰에 대한 원한과 미군정에 대한 반감이 조직적이고 강력했던 대구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통해 상대적으로 탄압강도가 약했던 미군정과 경찰의 저지력을 뚫으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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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08-15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 기념사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이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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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1 대구6연대 반란
사회주의 성향의 하재팔은 해방 후 대구에서 국군준비대를 만들었으나 미군정에 의해 용납되지 않자 해체하고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갔다. 학교 수료 후 1946년 2월에 대구 중동에서 6연대가 창설되자 거기에 들어갔다. 6연대는 하재팔과 그해 10월에 일어난 대구인민봉기의 영향을 받아 분위기가 사회주의 성향으로 흘렀다. 1948년 여순 반란 이후 숙군 작업이 벌어지자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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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2-12 유엔총회결의 195호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195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 (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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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보도연맹 학살
해방 직후 한국 민중들은 사회주의를 원했다. 이러한 염원을 반영하여 전국에 걸쳐 인민위원회가 구성되고 조선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미군은 이 인공을 뭉개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우익 폭력조직을 사주하여 좌익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실시하였다. 대구인민봉기는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났고 제주인민봉기로 이어졌다. 이어서 한국전쟁까지 터지자 미국과 우익은 민중학살로 대응하며 이남 사회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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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쥐잡기작전
1951년 겨울 국군과 경찰 등 3만여 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규모 토벌군은 지리산 일대를 에워싸며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 작전을 벌였다. 작전명은 '쥐잡기작전(Operation Rat Killer)'이었으며 토벌군의 명칭은 '백선엽야전사령부(백야사, Task Force Paik)'였다. 백야사는 일본군이 만주에서 사용했던 초토화작전 방식으로 토벌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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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마지막 빨치산
성일기는 12월27일 자택에서, 유응재는 1월16일, 이원량은 1월19일 대구 시내에서, 지춘란은 1월20일 팔공산 아지트에서, 남도부는 1월21일 리어카 행상 행세를 하다가 동인동에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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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
516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만든 당이다. 민주당의 색깔 공세에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0여년 전에 불법화된 남로당 지지계층이 공화당 지지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724#754
 
1963-12-14 황태성 처형
'황태성 처형' 내막   1963-10-12 윤보선   1963-10-15 제5대 대통령 선거   1963-10-17 윤보선 발언 모음   1963-12-14 황태성 총살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위키백과: 황태성   황태성 이야기  
 
1971-04-27 제7대 대통령 선거
박정희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8%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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