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ian > ISSUES > 1980 광주□□ > 날짜별 > 1980.05.21 > 13:00 도청앞 집단발포 36명 사망

갑작스런 화염병 공격을 받아 계엄군 장갑차가 후진하면서 계엄군 1명이 참혹하게 깔려죽자 분개한 계엄군이 돌진해 오는 버스를 향해 집단발포를 하게 되었다.
 
12:00ᑀ 11공수 63대대 이경남
낮 12시 넘어서 시위대 차량 돌진이 시작됐다. 돌진하던 차량에서는 화염병을 투척했다. 당황한 군 장갑차가 갑자기 후진 퇴각하다가 권○○ 일병이 깔려 숨졌다. 저지선이 무너지고, 군인은 도망가고, 장갑차가 퇴각하니 금남로가 비었다. 시위대 측에서 차량 공격을 시작하자 그때 실탄을 지급받은 지휘관들과 저격수들이 발포를 했다. 이것이 도청 앞 발포 사건이다. 발포 당시 이경남 일병은 도청 지하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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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ᑀ 11공수 63대대 이경남
권 일병이 캐터필러 밑으로 깔렸다. 내 눈앞에서 권 일병의 몸이 궤도 아래 깔려 입으로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권 일병이 눈앞에서 부대 장갑차에 깔려 죽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 그를 하사관들이 도청 지하실로 데려갔다. 발포가 끝나고 63대대 한 하사관이 이경남 일병에게 말했다. “내가 장갑차에 깔려죽은 권 일병의 원수를 갚느라고 조준사격해서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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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미대사관이 분석한 광주□□
It is probable that regionalism is playing significant roll in the intensity of the riot in Kwangju. 지역주의가 광주 폭동을 격화시키는 주요 원인이었을 수 있다.
 
13:00 11공수 61대대장 안부응
시위대가 장갑차와 차량의 시동을 걸고 ‘부릉부릉’ 거리는 등 살벌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뒤 장갑차의 빵빵 소리와 함께 시위대로부터 화염병 1개가 날아와 62대대 장갑차 있는 곳에 떨어졌습니다. 장갑차가 화염병을 보고 뒤로 빠졌으며 그와 동시에 시위대 장갑차와 5t 트럭이 돌진해 왔습니다. 도청을 향해 병력들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계엄군 1명이 깔려 죽었습니다. 시위대 장갑차의 돌진과 동시에 시위대 쪽에서 총소리가 연발로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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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11공수 61대대장 안부응
시위대 버스 1대가 저희 병력을 덮쳤습니다. 그때 버스가 달려드니까 누군가가 버스를 향해 사격을 한 것입니다. 이때 관광호텔 쪽에 서 있던 시위대 장갑차와 5t 트럭이 동시에 계엄군을 향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차를 향해 공수부대원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큰일 났구나’ 생각하며 뛰어 다니면서 사격 중지를 외쳤습니다. 사격 중지를 외쳐도 동시에 사격 중지가 되지 않아 뛰어 다니며 발길로 걷어차면서 사격 중지를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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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11공수 61대대장 안부응
5월20일 야간 시위대의 차량 시위를 진압한 뒤 22시~23시경 사이에 어느 지역대장이 와서 저에게 ‘62대대는 경계용 실탄을 소지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보고해 제가 62대대장에게 ‘실탄이 있다고 하는데 있으면 나누어 달라’고 하니 62대대장이 ‘2탄통이 있다’고 해 제가 ‘그러면 1탄통만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지역대장과 중대장 몇 사람이 저에게 와서 실탄을 분배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중대장들에게 1탄창씩 지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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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11공수 62대대장
“운명의 13:00 정각 ... 병력들은 마치 옛 전장에서 횡대 무릎쏴 자세로 적을 공격하는 듯한 자세로 일제히 분수대 앞에 포진하여 응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물러서 있는 군중에게 무차별 사격을 중지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친다.” -- 발포 명령이 따로 있었다는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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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11공수 상황일지
국방부가 1985년과 1988년 작성한 11공수 상황일지입니다. 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상황 일부가 지워져 있고, 이후 폭도들이 감히 도청을 향해 돌진해오지 못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80년에 작성된 원본에 지워진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1명의 폭도가 버스 1대를 몰고 ... 분수대를 돌아 다시 나가려는 의도를 알고 ... 그 자리에서 사살, 폭도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 발포 명령이 따로 있었다는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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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검찰의 수사 발표
"상급 지휘관이나 별도의 지휘계통에 있는 특정인의 발포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거나 광주 시민들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하여 사전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행하여진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으며 ... 특수부대 장교들이 대대장이나 지역대장의 통제 없이 장갑차 등의 돌진에 대응하여 자위 목적에서 발포한 것으로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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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공수부대원 자필수기
공수부대원의 자필 수기는 더 자세합니다. 버스가 오고 있을 때 대대장이 '저건 죽여도 좋다'고 했고, 중대장이 병사에게 실탄을 줘 조준 사격을 했습니다. 운전을 하던 사람은 내리다 쓰러졌습니다. -- 발포 명령이 따로 있었다는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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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전두환 회고록
"오후 1시경 시위대는 장형태 지사가 약속했던 시간이 되었음에도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은데 항의하면서 공수부대 장갑차에 화염병을 던졌다. 장갑차에 불이 붙는 순간 시위대 측 장갑차 한 대가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대원들은 돌진하는 장갑차를 피해 좌우로 갈라져 전남도청, 상무관, 수협지부 건물 등으로 흩어졌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공수대원 2명이 시위대 장갑차에 치여 1명은 즉사했고 1명은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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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전두환 회고록
"이때 갑자기 시위대가 버스와 트럭으로 공수대원들을 향해 또다시 돌진해왔다. 차량들이 자신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자 장병들은 혼비백산했다. 다급한 상황에서 몇몇 장교들이 돌진하는 차량을 향해 발포를 했다. 이때 시위대 쪽에서도 총소리가 연발로 들렸고 62대대 이 모 대위의 얼굴을 탄환이 스쳐 지나갔다. 버스 운전자가 피격 사망하면서 버스는 도청건물 좌측을 들이받으며 정지했고 나머지 차들은 분수대를 돌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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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탈취 장갑차 운전 조□□
“시민과 계엄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장갑차 안에 있던 대학생 형들이 ‘밀어 밀어’라고 외쳤고, 옆에 있던 버스가 먼저 앞으로 나가자 장갑차를 5m 정도 전진시켰다. 우리 앞에 있던 계엄군 장갑차가 뒤로 후진하면서 장갑차 오른쪽에 있던 병사가 하반신을 궤도에 깔렸다. 상체가 들린 상태로 입에서 피를 토하던 군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고가 나고 총알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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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탈취 장갑차 운전 조□□
▐ 11공수 61대대장 안부응이나 11공수 63대대 이경남의 증언과 거의 일치한다. 별도의 발포 명령이 없었다는 정황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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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11공수 61대대장 안부응
조선대로 철수하라는 지시를 여단으로부터 받아 다른 대대장들과 의논한 뒤 저의 대대가 앞장서고 62, 35, 63대대 순으로 철수하자고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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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 11공수 61대대장 안부응
조선대에 해지기 전이니까 약 17시경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병사들을 식사시킨 뒤 병사들에게 실탄을 휴대시키라는 지시를 여단 작점참모로부터 정식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조선대에 통합 보관되어 있던 실탄을 병사들에게 기본 휴대량인 60발씩 분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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