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年代記 > -0108 樂浪史 > 0121 요동과 고려의 공방

봄에 유주자사 풍환, 현도태수 요광, 요동태수 채풍이 고려를 침공했다. 태조왕이 세자 수성에게 2천명을 거느리고 막게 했다. 수성은 험요지에서 대군을 막고 몰래 3천명을 보내 현도와 요동을 침략하고 2천명을 죽였다.┆여름에 고려가 요동 선비 8천명과 함께 요대를 침략하자 채풍이 신창에서 추격하다 죽었다.┆가을에 태조왕이 마한과 예맥 수천명을 거느리고 현도를 포위하자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와 2만명을 보냈다. 한나라 주와 군이 함께 깨뜨리고 5백명을 베었다
 
0082 +
0082 +
21136
 
0121 三國志(289)
遼東太守蔡風 玄菟太守姚光以宮為二郡害 興師伐之 宮詐降請和 二郡不進 宮密遣軍攻玄菟 焚燒候城 入遼隧 殺吏民 요동태수 채풍과 현도태수 요광은 궁이 두 군의 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였다. 궁은 몰래 군대를 파견하여 현도군을 공격해 후성을 불사르고 요수에 침입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죽였다.
20910
 
0121 後漢書(445) 高句驪
建光元年春 幽州刺史馮煥 玄菟太守姚光 遼東太守蔡諷等將兵出塞擊之 捕斬濊貊渠帥 獲兵馬財物 宮乃遣嗣子遂成將二千餘人逆光等 遣使詐降 光等信之 遂成因據險阸以遮大軍 而潛遣三千人攻玄菟遼東 焚城郭 殺傷二千餘人 於是發廣陽漁陽右北平涿郡屬國三千餘騎同救之 而貊人已去
5883
 
Pet Dictionary
What breed is this pet?
 
0121 後漢書(445) 高句驪
121년 봄에 유주자사 풍환과 현도태수 요광과 요동태수 채풍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국경을 넘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그 우두머리를 붙잡아서 목베고 병마와 재물을 노획하였다. 궁은 이에 세자 수성에게 군사 2천여명을 거느리고 가서 요광 등을 맞아 싸우게 하였다. 수성은 험요지를 점거하여 대군을 막고는 몰래 3천여명의 군사를 보내어 현도와 요동을 공격하여 성곽을 불태우고 2천여명을 살상하였다.
20890
 
0121 後漢書(445) 高句驪
이에 광양·어양·우북평·탁군·속국에서 3천여명의 기마병을 출동시켜 함께 구원케 하였으나 맥인이 벌써 돌아가버렸다.
20891
 
0121 三國志(289)
後宮復犯遼東 蔡風輕將吏士追討之 軍敗沒 그 뒤 궁이 다시 요동을 침범하자 채풍이 가벼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추격하였다가 패하여 죽었다.
20911
 
0121 後漢書(445) 高句驪
夏 復與遼東鮮卑八千餘人攻遼隊 縣名 屬遼東郡也 殺略吏人 蔡諷等追擊於新昌 戰歿 功曹耿耗 兵曹掾龍端 兵馬掾公孫酺以身扞諷 俱沒於陳 死者百餘人 여름에 다시 요동의 선비 8천여명과 함께 요대를 침공하여 관리와 민간인을 죽이고 약탈하였다. 채풍 등이 신창에서 추격하다가 전사하였다. 功曹인 耿耗와 兵曹掾인 龍端과 兵馬掾인 公孫酺가 몸으로 채풍을 가리다가 모두 진중에서 죽으니 죽은 사람이 백여명이나 되었다.
20892
 
0121 後漢書(445) 高句驪
秋 宮遂率馬韓 濊貊數千騎圍玄菟 夫餘王遣子尉仇台將二萬餘人 與州郡并力討破之 斬首五百餘級 가을에 궁이 드디어 마한·예맥의 군사 수천명을 거느리고 현도를 포위하였다. 부여왕이 그 아들 위구태를 보내어 2만여명을 거느리고 주·군과 함께 힘을 합하여 쳐서 깨뜨리고 5백여명을 참수하였다.
208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