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遼黑史 > BC 0108 낙랑 > 黏蟬

대동강 하구 인근에서 점제비가 발견되어 점제현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이로써 점제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는 열수는 대동강이 되었고 열구도 대동강 하구 인근으로 위치가 좁혀졌다. 한나라 수군이 바다를 건너와 열구에 도착한 뒤 왕험성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에 의해 왕험성 또한 대동강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대사 개념도
5910
 
BC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朝鮮(조선) 䛁邯(남감) 增地(증지) 黏蟬(점제) 駟望(사망) 屯有(둔유) 帶方(대방) 列口(열구) 長岑(장잠) 海冥(해명) 昭明(소명) 提奚(제해) 含資(함자) 遂成(수성) 鏤方(누방) 渾彌(혼미) 浿水(패수) 吞列(탄열, 원문에는 吞에 초두가 붙어 있다.) 東暆(동이) 蠶台(잠태) 不而(불내) 華麗(화려) 邪頭昧(사두매) 前莫(전막) 夫租(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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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한서(漢書)
樂浪郡 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縣二十五 낙랑군의 호수는 62,812호고 인구는 406,748명이며 25현이 있다. 朝鮮 俨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傥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조선 남감 패수 함자 점제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탄열 동이 불이 잠태 화려 사두매 전막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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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후한서(後漢書)
樂浪郡 武帝置 雒陽東北五千里 十八城 户六萬一千四百九十二 口二十五萬七千五十 낙랑군은 무제가 치소를 두었다. 낙양으로부터 동북 5천리 18성 61,492호 257,050구다. 朝鮮 남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조선 남감 패수 함자 점제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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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 수서(636)
左第一軍可鏤方道 第二軍可長岑道 第三軍可海冥道 第四軍可蓋馬道 第五軍可建安道 第六軍可南蘇道 第七軍可遼東道 第八軍可玄菟道 第九軍可扶餘道 第十軍可朝鮮道 第十一軍可沃沮道 第十二軍可樂浪道 右第一軍可黏蟬道 第二軍可含資道 第三軍可渾彌道 第四軍可臨屯道 第五軍可候城道 第六軍可提奚道 第七軍可踏頓道 第八軍可肅慎道 第九軍可碣石道 第十軍可東暆道 第十一軍可帶方道 第十二軍可襄平道 凡此衆軍 先奉廟略 駱驛引途 總集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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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점제현신사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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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성현리에 있는 낙랑시대의 고비(古碑). 낙랑군의 여러 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었는데 이 비의 발견으로 점제현이 지금의 용강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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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점제현신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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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을동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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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을동토성(於乙洞土城)
토성 안에서는 길이 10.4m, 너비 6.8m 되는 관청터를 비롯한 여러 채의 건물터와 기와, 벽돌 혹은 돌을 깐 시설물들이 발굴되었으며 여러 가지 질그릇들과 세형동검자루맞추개가 나왔다. 질그릇 가운데 세형동검 관계무덤들에서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 화분형단지와 배부른 단지가 적지 않게 있으며 세형동검의 검자루맞추개가 발굴된 사실은 어을동토성이 세형동검시기에 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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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보주(漢書補注)
呑列(分黎山列水所出 西至黏蟬入海 行八百二十里) 분려산에서 열수가 시작되는데 서쪽으로 흘러 점제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820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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