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遼黑史 > BC 0318ᑅ 흉노/동호 > 0049-01 후한서(445) 光武帝紀

요동 요외의 맥인(예맥국 사람을 말한다)이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략하였다. 요동태수 채융이 불러 항복시켰다. ● 이 기록의 맥인은 오환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동북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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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삼국지(289)
建武二十五年烏丸大人郝旦等九千餘人率衆詣闕封其渠帥爲侯王者八十餘人使居塞內布列遼東屬國遼西右北平漁陽廣陽上穀代郡雁門太原朔方諸郡界招來種人給其衣食置校尉以領護之遂爲漢偵備擊匈奴鮮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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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삼국지(289)
오환의 대인 학단 등이 9천여 인의 무리를 거느리고 궁궐을 방문하자, 후 혹은 왕에 책봉된 거수들이 80여 인이었다. 그들에게 새내에 거주하도록 하였는데 요동속국, 요서, 우북평, 어양, 광양, 상곡, 대군, 안문, 태원, 삭방, 여러 군의 경계 지역 곳곳에 두루 안치하였다. 동족을 불러오도록 하여 그들에게 옷가지와 음식물을 주었고, 교위를 설치하여 그들을 거느리게 하였으며, 마침내 한나라를 위하여 정찰하면서 대비하였고 흉노와 선비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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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후한서(445) 光武帝紀
二十五春正月遼東徼外貊人(貊人穢貊國人也貊音陌)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遼東太守祭肜招降之 烏桓大人來朝(大人謂渠帥也) 南單于遣使詣闕貢獻奉蕃稱臣又遣其左賢王擊破北匈奴却地千餘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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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후한서(445) 光武帝紀
요동 요외의 맥인(예맥국 사람을 말한다)이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략하였다. 요동태수 채융이 불러 항복시켰다. 오환의 대인이 내조하였다.(대인은 우두머리를 말한다.) 남선우가 사신을 보내어 공헌하고 변방의 신하가 되겠다고 하였다. 또 좌현왕을 보내어 북흉노를 격파하고 천여리를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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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삼국사기(1145)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습격하였으나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해하고 친하게 지냈다. ※후한서의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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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後漢書集解
陳景雲曰 太原二字 非衍卽誤 貊人入寇東邊諸郡 不能西至太原內之地也 東夷傳同 맥인이 동쪽 변경의 여러 군을 침략했을 뿐이지 서쪽으로 태원까지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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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1 貊人이 아니라 烏桓이다
요동군이 건재한 상태에서 맥고려가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공하려면 북쪽으로 요하 상류를 지나거나 남쪽으로 바닷길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요하 상류보다는 아무래도 바닷길이 쉽다. 당시 요하 상류에는 오환과 선비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길을 이용하려면 먼저 압록강을 따라 내려가 바다에 들어간 뒤 해안을 따라 요동반도를 돌아서 계속 가면 된다. 그러나 낙랑군도 건재해 있는 상태라, 맥고려가 요동군과 낙랑군 사이를 지나 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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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03 후한서(445) 光武帝紀
三月南單于遣子入侍 戊申晦日有食之 伏波將軍馬援等破武陵蠻於臨沅 남선우가 자식을 보내어 모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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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10 후한서(445) 光武帝紀
冬十月叛蠻悉降 夫餘王遣使奉獻(夫餘國在海東去玄菟千里餘) 부여왕이 사신을 보내서 봉헌하였다.(부여국은 바다의 동쪽에 있는데 현도에서 천여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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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_ 후한서(445) 光武帝紀
是歲烏桓大人率衆內屬詣闕朝貢 이 해에 오환의 대인이 무리를 거느리고 입궐하여 조공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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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_ 후한서(445) 東夷
二十五年春句驪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而遼東太守祭肜以恩信招之皆復款塞 구려가 우북평·어양·상곡·태원을 침입하여 노략질하는 것을 요동태수 채융이 은의와 신의로 초유하니 모두 다시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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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_ 후한서(445) 烏桓
遼西烏桓大人郝旦等九百二十二人率眾向化詣闕朝貢獻奴婢牛馬及弓虎豹貂皮 요서 오환대인 학단 등 922인이 무리를 이끌고 귀순하였다. 궁궐을 방문하여 조공하고 노비, 소, 말, 활 그리고 호랑이· 표범·담비의 가죽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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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_ 후한서(445) 鮮卑
二十五年鮮卑始通驛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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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5 삼국사기(1145)
築遼西十城以備漢兵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고려는 이때 요동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후한서에는 49년에 요동 태수가 고려를 달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따라서 앞뒤 정황과 맞지 않는다. 이 기록은 출처도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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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 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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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후한서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인정하고 요동과 요서를 산해관 동쪽으로 설정하여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 이덕일의 설명은 모순이 굉장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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