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권 또는 역사공동체는 대체로 강의 유역과 일치한다. 이는 인류의 문명이 농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 농경은 강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하 유역과 흑수 유역은 역사가 서로 얽혀 있어 별개의 역사공동체로 분리하기 어렵다. 요하 유역과 황하 유역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요하 유역과 흑수 유역을 하나로 묶어 요흑사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동서로는 몽골에서 연해주까지고 남북으로는 흑룡강에서 장백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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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연해주까지 그리고 장백산에서 흑룡강까지
국가의 계통은 조선, 낙랑, 고려, 발해, 요(遼), 금(金), 원(元) 그리고 청(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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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770
조선이 요하 유역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렇게 설정하면 사서 기록과 충돌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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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311ᑅ 조선
朝鮮은 중국의 전국시대에 燕에 복속되었다. 이후 서기전 221년에 秦이 燕을 포함한 중국을 통일하자 조선은 다시 秦에 소속되었다. 秦은 진승, 항우 등이 난을 일으켜 혼란해 졌는데, 이때 燕·齊·趙 지역의 백성 수만명이 조선, 진번 그리고 한국으로 피난하였다. 이후 秦이 망하고 서기전 202년에 漢이 다시 중국을 통일하게 되는데, 이때 조선은 漢의 영역에서 빠졌다.
2658#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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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0108 낙랑
낙랑은 기원전 108년에서 기원후 313년까지 400여년간 대동강 유역에 존속하였다.
644년에 당태종이 낙랑고려에 대한 침공을 준비하면서 '요동은 옛 중국 땅(遼東故中國地)'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658#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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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8 발해
발해(渤海)는 고려가 망한 지 30여년 뒤인 698년에 고려의 유민 대조영이 세운 왕조다.
고려를 구성했던 맥(貊), 예(濊), 옥저 그리고 부여는 각각 발해의 압록부, 남해부, 용원부 그리고 부여부로 편제되었다.
200여 년 간 왕조를 이어가다 926년에 요(遼)에 병합되었다.
2658#2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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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遼
요나라가 고려 계승국인 발해를 병합하자 고려계승을 자처하는 왕씨고려와 모순 관계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다 요나라와 중국의 조송이 경쟁하면서 중국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왕고와 요나라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요나라의 왕고 침공은 이런 배경에서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2658#2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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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 만주국
淸이 망한 후 요흑은 중화민국 군벌에 의해 장악되었다. 그러다 1932년 일본이 들어와 이 지역의 군벌을 몰아내고 만주국을 세웠다. 만주국의 수도는 지금의 길림성 장춘(당시 명칭은 新京)에 있었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국가원수로 내세운 입헌군주제의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본 관동군에 의해 지탱되는 일본의 괴뢰국이었다.
만주국은 만주족과 한족이 토대가 되었으나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이주하여 다민족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45년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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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사의 무대
동북아시아의 역사는 중국, 요동, 한국 그리고 일본 이렇게 네 역사공동체로 이루어진 구조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중 유독 한국은 요동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고전하였는데 이는 영토, 인구 그리고 생산력 등에 있어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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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原 vs 遼黑
탁발선비의 위나라, 거란의 요나라, 완안여진의 금나라, 몽골의 원나라 그리고 건주여진의 청나라는 모두 중원을 한번씩 점령하고 통치했었다. 이들은 모두 요흑 지역의 종족들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역사를 중원과 요흑의 대결 구도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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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分割工程
중국분할공정의 북쪽 부분은 요흑사(遼黑史)에 기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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