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遼黑史 > BC 0318ᑅ 흉노/동호

중원의 북서쪽에 흉노가 있었고 그 동쪽에 동호가 있었는데, 동호는 다시 오환과 선비로 갈라졌다.
 
동북 지역
7427 COMMENT
 
長城
7464 COMMENT
 
BC 2055 ᑅ 흉노
선진시기   BC 2070 ~ 1600 夏   BC 2055 ᑅ 사기(BC 91)   BC 1600 ᑅ 사기(BC 91)   BC 1600 ~ 1046 商   BC 1150 ± 사기(BC 91)   BC 1046 사기(BC 91)   BC 0770 ~ BC 0403 春秋时期   BC 0624 사기(BC 91)   BC 0624 사기(BC 91)   BC 0260 戰國七雄  
 
BC 0318ᑅ 사기(BC91) 匈奴
흉노(匈奴)는 그 선조가 하후씨(夏后氏)의 후예로 순유(淳維)라고 불린다. 당(陶唐氏)과 우(有虞氏) 이전에는 산융(山戎), 험윤(獫狁), 훈육(葷粥) 등이 북쪽 이민족의 땅(北蠻)에 살면서 가축을 먹이고 옮겨 다니며 살았다.
7428 COMMENT
 
BC 0311 - 0279 사기(BC 91)
其後燕有賢將秦開為質於胡胡甚信之帰而襲破走東胡東胡卻千餘里與荊軻刺秦王秦舞陽者開之孫也燕亦築長城自造陽至襄平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 造陽 集解韋昭曰 地名在上谷 正義按 上谷郡今嬀州 -- 襄平 索隠韋昭云 今遼東所理也.
7456 COMMENT
 
BC 0311 - 0279 사기(BC 91)
그 후에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오랑캐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다.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형가와 함께 진시왕을 암살하려던 진무양은 진개의 손자다. 연나라 역시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에 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방어했다.
7457 COMMENT
 
BC 0311 - 0279 염철론(BC 81)
燕襲走東胡辟地千裏度遼東而攻朝鮮 연나라가 동호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천리의 땅을 개척했다. 또 요동을 지나 조선을 공격했다.
7458 COMMENT
 
BC 0215 사기(BC 91) 진시황본기
燕人盧生使入海還以鬼神事因奏錄圖書曰亡秦者胡也始皇乃使將軍蒙恬發兵三十萬人北擊胡略取河南地 연나라 사람 노생이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귀신에 관한 일로 보고했는데 ‘진을 망하게 할 자는 호(胡)다’라고 쓰여 있는 참위서를 올렸다. 시황은 장군 몽염(蒙恬)에게 군사 30만 명을 내서 북방의 호를 공격하게 하여 하남 땅을 취했다. -- 集解鄭玄曰 胡胡亥秦二世名也秦見圖書不知此爲人名反備北胡
7459 COMMENT
 
BC 0215 사기(BC 91) 몽염열전
秦已並天下乃使蒙恬將三十萬衆北逐戎狄収河南築長城因地形用制険塞起臨洮至遼東延袤萬餘里於是渡河拠陽山逶蛇而北暴師於外十餘年居上郡是時蒙恬威振匈奴 -- 河南 正義謂霊 勝等州 -- 臨洮 集解徐広曰 屬隴西 -- 遼東 正義遼東郡在遼水東 始皇築長城東至遼水 西南至海(之上) -- 陽山 集解徐広曰 五原西安陽県北有陰山 陰山在河南 陽山在河北
7460 COMMENT
 
BC 0215 사기(BC 91) 몽염열전
진이 천하를 합병하자 곧 몽염에게 30만 무리를 이끌고 북으로 융적을 내쫓고, 하남을 수습하여 장성을 쌓게 했다. 지형에 따라 험준한 곳을 통제할 수 있게 쌓았는데 임조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여 리에 걸쳐 있었다. 그리하여 황하를 건너 양산을 거점으로 하여 구불구불 북으로 나아갔다. 10년 넘게 군대는 외지를 전전하다 상군에 주둔하기에 이르렀고, 이 무렵 몽염의 위세는 흉노를 떨게 했다.
7461 COMMENT
 
BC 0215 사기(BC 91) 흉노열전
秦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시황제가 몽염에게 십만의 군사를 주어 북으로 胡를 치게 해 하남 땅을 모조리 손에 넣었다. 황하를 이용해 요새를 만들고 황하를 따라 44개의 현에 성을 쌓고 죄수를 이주시켜 충당하게 했다. 그리고 직도를 통하게 해 구원에서 운양에 이르렀는데 험준한 산의 능선을 국경으로 삼고 골짜기를 이용해 참호로 삼고 수선할 수 있는 것을 손보아 임조에서 요동까지 만 여리에 이르렀다. 게다가 황하를 건너 양산과 북가 사이에 근거지를 두었다.
7462 COMMENT
 
BC 0215 사기(BC 91) 흉노열전
秦滅六國而始皇帝使蒙恬將十萬之衆北擊胡悉收河南地因河爲塞築四十四縣城臨河徙適戍以充之而通直道自九原至雲陽因邊山險塹谿谷可繕者治之起臨洮至遼東萬餘里又度河據陽山北假中
7463 COMMENT
 
BC 0209~BC 0174 한서(82)
마침내 동으로 동호를 습격했다. 동호는 처음에 흉노를 가볍게 보고 방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묵특이 군대를 이끌고 도착해 공격하니 동호의 왕이 크게 패해 망했고 그 백성과 가축 등을 빼앗았다.
7433 COMMENT
 
BC 0209~BC 0174 후한서(445) 鮮卑
鮮卑者亦東胡之支也別依鮮卑山故因號焉 선비도 동호의 한 갈래다. 선비산에 의지하였으므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漢初亦為冒頓所破遠竄遼東塞外與烏桓相接未常通中國焉 한나라 초기에 묵돌선우에게 패하여 요동의 경계 바깥으로 쫓겨났다. 오환과 접하였으며 중국과는 통하지 않았다.
7432 COMMENT
 
BC 0209~BC 0174 후한서(445) 烏桓
烏桓者本東胡也漢初匈奴冒頓滅其國餘類保烏桓山因以為號焉 오환은 원래 동호다. 한나라 초기에 흉노의 묵돌선우가 그 나라를 멸망시키자 남은 무리가 오환산에 들어가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7430 COMMENT
 
BC 0209~BC 0174 후한서(445) 烏桓
오환은 묵특에게 파망한 후 무리가 드디어 고립되어 약해졌기 때문에 늘 흉노에 신하로서 복속하였다. 해마다 소·말·양의 가죽을 바쳤는데, 날짜를 넘겨 바치지 못하면 오환 사람들의 처자를 빼앗아서 노비로 삼았다.
7440 COMMENT
 
BC 0141~BC 0087 후한서(445) 烏桓
무제가 표기장군 곽거병을 보내 흉노의 동쪽 지역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는데, 이때 오환을 상곡과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 5군의 새외로 옮기고, 한나라를 위해 흉노의 동정을 정탐하도록 하였다.
7441 COMMENT
 
BC 0141~BC 0087 후한서(445) 烏桓
오환의 대인은 해마다 한 차례 입조하여 알현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호오환교위(護烏桓校尉)를 설치하였는데, 질(秩)은 이천석이었고, 부절을 지니고 오환의 무리를 감독하고 거느렸으며 흉노와 왕래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7442 COMMENT
 
0005~0023 후한서(445) 烏桓 1
왕망이 제위를 찬탈한 후 흉노를 공격하고자 하여 12부의 군대를 일으켜 동역장 엄우에게 오환과 정령의 병사들을 지휘하여 대군에 주둔하도록 하고 처자를 군현에 인질로 남겨두도록 하였다.
7443 COMMENT
 
0005~0023 후한서(445) 烏桓 2
오환 사람들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주둔하고 쉬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차례 되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왕망이 그들을 보내주려 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스스로 달아나거나 반란을 일으켰고, 돌아가서는 약탈하고 도적질하였다. 그래서 여러 군에서는 그들이 억류해 놓았던 인질들을 모두 다 죽여 버렸다.
7444 COMMENT
 
0005~0023 후한서(445) 烏桓 3
이로 말미암아 왕망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흉노는 오환의 우두머리를 유인하여 관리로 삼고 나머지는 고삐에 매어 끌어당기는 것처럼 속하도록 하였다.
7445 COMMENT
 
0025~0057 삼국지(289)
광무제는 천하를 평정하자, 복파장군 마원에게 3천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오원관에서 변경지대로 나가서 그들을 정벌하게 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군마 1천여 필만 죽였다. 오환이 마침내 강성해져서 흉노를 약탈하고 공격하니, 흉노가 1천 리나 떨어진 곳으로 옮겼고 막남 지역은 사람이 없어서 텅 비게 되었다.
7434 COMMENT
 
0025ᑀ 후한서(445) 匈奴
건무 연간 초에 팽총이 어양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선우는 그와 함께 군대를 연합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다시 권위를 회복하여 노방을 세우고, 그에게 오원으로 들어가서 거점으로 삼도록 하였다. 광무제는 초기에 중원의 여러 세력들을 평정하는 데 한창이었기 때문에 밖의 일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다. -- 오원은 이전의 구원이다.
7450 COMMENT
 
0025ᑀ 후한서(445) 烏桓
광무제 초에 오환과 흉노는 연합하여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니, 대군 동쪽은 더욱 그 피해를 입었다. 새(塞)와 가까웠기 때문에 아침에 천막을 출발하여 저녁이면 성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5군의 민서들은 고통을 당하였고, 군현이 손상되고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유망하기에 이르렀다. 상곡의 새외에 위치한 백산(白山)이 가장 강성하고 부유하였다. -- 5군은 대군,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그리고 요서군을 말한다.
7447 COMMENT
 
0030 후한서(445) 匈奴
6년에 이르러 비로소 귀덕후 유립에게 흉노에 사행하도록 하였는데, 흉노 역시 사신을 파견하여 바쳤다. 한은 다시 중랑장 한통에게 답례하도록 하였는데, 금과 비단을 뇌물로 보내어 이전의 좋은 관계로 서로 통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우가 교만하고 거만하여 자신을 묵특에 비기면서 사자에 대한 언사가 도리에 어긋나고 오만하였으나, 광무제는 처음과 같이 그를 대하였다. 일찍이 사명이 항상 통하고 있어도 흉노는 노방과 함께 자주 북변을 침입하였다.
7451 COMMENT
 
0033 후한서(445) 匈奴
9년에 대사마인 오한 등을 보내어 그들을 공격하였지만 해를 넘겨도 전공은 세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흉노는 다시 번성하게 되었고 노략질하면서 포학한 행동이 나날이 더 많아졌다.
7452 COMMENT
 
0037 후한서(445) 匈奴
13년에 마침내 하동을 침입하여 노략질하였지만 주와 군으로서는 막을 수 없었다. 이에 유주와 병주의 연변 사람들을 점차 상산관과 거용관 이동으로 옮기고, 흉노의 좌부는 마침내 다시 새내로 들어가서 거주하게 되었다. 조정은 이러한 상황을 걱정하여 연변의 병사들과 군민들 수천 명을 증원하여 정후를 매우 많이 쌓고 봉화대를 수리하였다.
7453 COMMENT
 
0044 후한서(445) 匈奴
20년에 마침내 상당, 부풍 그리고 천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7454 COMMENT
 
0045 후한서(445) 匈奴
21년 겨울에 다시 상곡과 중산을 침입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노략질하니 북변은 다시 편안한 해가 없게 되었다.
7455 COMMENT
 
0045 후한서(445) 烏桓
건무 21년에 복파장군 마원에게 3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오완관을 나가서 오환을 불시에 습격하도록 하였다. 오환은 미리 이 사실을 알고 모두 무리를 이끌고 도망갔는데, 이를 추격하여 백여 급을 벤 후 회군하였다. 오환은 군대를 되돌려서 마원 군대의 후진을 공격하니, 마원은 밤낮으로 도망쳐 돌아왔는데, 새내로 들어갈 즈음에 죽은 말이 천여 필이었다.
7448 COMMENT
 
0046 후한서(445) 烏桓
22년에 흉노의 국내가 어지러워지자 오환은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흉노를 공격하여 격파하자 흉노는 북쪽으로 수천 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였고, 막남의 땅은 비게 되었다. 이에 광무제는 폐백을 오환에게 뇌물로 주었다.
7449 COMMENT
 
0049 후한서(445) 鮮卑
乃使招呼鮮卑示以財利其大都護偏何遣使奉獻願得歸化肜慰納賞賜稍復親附 이에 선비를 불러 재물을 보여주니 그 대도호 편하가 사신을 보내어 봉헌하고 귀부하기를 원하였다. 채융이 위로하며 상금을 내리니 점차 다시 복속하였다.
358 COMMENT
 
0049-01 후한서(445) 光武帝紀
요동 요외의 맥인(예맥국 사람을 말한다)이 우북평, 어양, 상곡 그리고 태원을 침략하였다. 요동태수 채융이 불러 항복시켰다. ● 이 기록의 맥인은 오환의 오기로 보아야 한다.
7426#177 COMMENT
 
0054 후한서(445) 鮮卑
鮮卑大人於仇賁滿頭等率種人詣闕朝賀慕義內屬帝封於仇賁為王滿頭為侯時漁陽赤山烏桓歆志賁等數寇上谷 선비 대인 어구분, 만두 등이 그 종자들을 데리고 대궐에 들어와 조하하고 의를 흠모하며 내속하였다. 황제는 어구분을 왕으로 봉하고 만두는 후로 봉하였다. 이때 어양적산오환 흠지분 등이 상곡을 여러 차례 침략하였다.
7419 COMMENT
 
0221ᑅ 삼국지(289)
漢末遼西烏丸大人丘力居衆五千餘落上谷烏丸大人難樓衆九千餘落各稱王而遼東屬國烏丸大人蘇僕延衆千餘落自稱峭王右北平烏丸大人烏延衆八百餘落自稱汗魯王皆有計策勇健中山太守張純叛入丘力居衆中自號彌天安定王爲三郡烏丸元帥寇略青徐幽冀四州殺略吏民
7439 COMMENT
 
0221ᑅ 삼국지(289)
한나라 말기에 요서오환의 대인 구력거(丘力居)는 무리 5천여 락을 거느렸고, 상곡오환의 대인인 난루(難樓)는 무리 9천여 락을 통솔하였으며, 각자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였다. 요동속국의 오환 대인 소복연(蘇僕延)은 무리 1천여 락을 거느리고 스스로를 초왕(峭王)이라 칭하였다. 우북평오환의 대인인 오연(烏延)은 무리 8백여 락을 거느렸는데 스스로를 한로왕(汗魯王)이라 칭하였다. 이들은 모두 계교와 방책이 있었으며 용감하고 건실하였다.
7438 COMMENT
 
0445 후한서 匈奴
7429 COMMENT
 
Xiongnu
Ancient Chinese Historian Describes The Xiongnu // Before The Mongols // Book of Han (111 AD)
8656 COM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