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遺民分居山谷之間 爲六村 是爲辰韓六部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 삼국사기가 참고한 역사 기록에는 海東의 역사가 箕子·衛滿朝鮮, 玄莬·樂浪郡 그리고 高麗로 이어지는 계통과 秦難民, 辰韓 그리고 新羅로 이어지는 계통으로 나뉘어 있었다. 따라서 新羅에서 나와서 高麗계승을 내세운 王氏高麗에게는 新羅와 高麗를 연결시켜주는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秦遺民을 朝鮮遺民으로 바꾼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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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三國遺事
최치원이 말하기를 “진한은 본래 연나라 사람으로서 도피해 온 자들이므로 涿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고을과 동리 이름을 沙涿·漸涿 등으로 불렀다.” 신라 사람들의 방언에 涿 자를 읽을 때 발음을 도(道)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혹 沙梁이라 쓰고, 梁을 또한 도(道)라고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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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馬韓의 동북쪽 땅을 떼어 百濟가 만들어졌다.
왕이 熊川柵을 세우자 馬韓王이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왕이 처음 강을 건너왔을 때 발을 디딜 만한 곳도 없었는데, 내가 동북쪽 100리의 땅을 떼어주어 편히 살게 하였다. 이제 나라가 완성되고 백성들이 모여들자 ‘나와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면서 성과 연못을 크게 설치하여 우리의 강역을 침범하니, 어찌 의리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왕이 부끄러워하여 마침내 목책을 헐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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