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自單單大山領以西 屬樂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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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茂陵書
臣瓚曰 茂陵書 臨屯郡 治東暆縣 去長安六千一百三十八里 十五縣 真番郡 治霅縣 去長安七千六百四十里 十五縣
신찬이 말하기를 '무릉서에 임둔군은 치소가 동이현으로 현이 15개다. 진번군은 치소가 삽현으로 현이 15개다'라고 하였다.
▐ 신찬은 西晋(265~316) 시기의 인물이다. 무릉서는 무릉에서 출토된 한무제 시기의 공문서다.
21141#2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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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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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5 三國志(289)
漢以土地廣遠 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 治不耐城 別主領東七縣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불내성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 임둔군이 처음 설치될 때 15개 현이었는데 동부도위는 7개 현만 남았다. 진번군도 15개 현이었는데 대방군을 설치할 때는 7개 현이었다.
대방군의 남계는 임진강이 자연스럽고 동부도위의 남계는 철령이 자연스럽다.
21141#23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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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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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 東國輿地志
大關嶺 一名大嶺 自咸鏡道之劍山 分水嶺入本道 爲鐵嶺 楸池嶺 金剛山 又自金剛 歷彌時坡嶺 雪嶽山 所冬羅嶺 五臺山 爲此嶺 橫亘千餘里 漢志 所謂單單大嶺者 卽此也
대관령은 대령이라고도 한다. 함경도의 검산으로부터 분수령이 강원도로 들어와 철령·추지령·금강산이 되고 또 금강산으로부터 미시령·설악산·소동라령·오대산을 지나 이 령이 되는데, 천여리에 걸쳐 뻗어 있다. 한지에서 말하는 단단대령이 바로 이것이다.
21141#2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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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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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東史綱目
單大嶺 今鐡嶺内外至大關嶺ー條山嶺 是也 勝覧大關嶺亦稱大嶺 盖舊號不替也
단대령은 지금 철령 안팎에서 대관령에 이르는 한 가닥 산령이 바로 그것이다. 여지승람에서 대관령을 또한 대령이라고 칭하였으니 아마 옛이름이 없어지지 않았던가 보다.
▐ 濊의 대부분은 철령 이북이기 때문에 이 설정은 맞지 않는다.
21141#2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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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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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 海東繹史
文獻備考 自咸鏡道之劔山分水嶺 至鐵嶺金剛五臺山 爲大關嶺 橫亘千餘里 卽單大嶺也
문헌비고에는 함경도 검산의 분수령으로부터 철령, 금강산, 오대산에 이르기까지가 대관령인데, 1000여 리에 걸쳐 뻗쳐 있는바, 바로 단대령이라고 되어 있다.
▐ 동국여지지(1656)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동국문헌비고(1770)에서 해당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혹시 한치윤이 동국여지지를 문헌비고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21141#2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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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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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山山脈
단단대령이 천산산맥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낙랑에서 동쪽으로 단단대령, 예 그리고 바다가 이어졌다는 기록과 고구려에서 동쪽으로 개마대산, 옥저 그리고 바다가 이어졌다는 기록은 인정한다.
그런데 예 북쪽에 옥저가 있었다는 기록을 들이밀면 갑자기 옥저를 예 북쪽의 옥저와 동해안의 동옥저로 분할시킨다.
그러면 고구려 서쪽에 또 옥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기록은 왜 없냐고 물으면 마침내 삼국지가 역사를 조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게 된다.
21141#23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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