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고려가 중국에 바친 미녀, 백제가 왜에 바친 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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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9 三國志
나라(동옥저)가 작고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구려에 종속되었다. 구려는 그 중에서 대인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대가로 하여금 조세를 통괄 수납케하여 맥·포목·생선·소금·해초류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나르게 하고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니 그들을 노복처럼 대우하였다.
2053#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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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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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2 太平御覽(977~983)
진서에 이르기를 382년에 신라국왕 누한이 사신 위두를 파견하여 미녀를 바쳤다. 그 나라는 백제의 동쪽에 있는데 머리를 아름답게 늘어뜨린 사람이 많다. 길이는 한 장이나 된다.
부견이 "해동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말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묻자, "중국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하고 명칭이 바뀌었으니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2053#3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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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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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6 위서(554) 장수왕
문명태후가 현조의 6궁이 채워지지 못하였다 하여, 조칙으로 연(璉)에게 그의 딸을 보내라고 하였다. 공(公)이 표를 올려,
“딸은 이미 출가하였으므로 아우의 딸 중에서 구하여 조칙에 응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조정에서 허락하였다. 이에 안락왕 진(眞)과 상서 이부 등을 보내 국경까지 가서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그 무렵 현조가 죽어서 그 일은 중지되었다.
2053#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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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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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1 구당서(945) 진평왕
김진평이 사신을 보내어 여악공(女樂工) 두 사람을 바쳤는데, 모두 머리가 새까만 미인들이었다. 태종이 사신에게,
“짐이 들으니 성색(聲色)을 즐기는 것은 덕을 좋아함만 같지 못하다고 한다. 그리고 산천으로 가로 막혀 있으니, 고향을 그리워 할 것도 알 수 있다. 짐은 그들이 멀리 떠나 와서 반드시 친척을 그리워할 것을 불쌍히 여긴다. 마땅히 사자의 편에 보내어 제 집으로 돌려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2053#7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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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6 고려 보장왕
고려가 사신을 보내와 사죄를 하고 아울러 두 미녀를 바쳤다. 태종은 그 사신에게
“돌아 가서 너의 군주에게 일러라. 미색이란 사람이 중하게 여기는 것이며 너희가 바친 미인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부모와 형제를 본국에 두고 온 것이 불쌍하고, 그의 몸을 머물러 두어 그의 어버이를 잊게 하고, 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내가 하지 않으리라.”
하고 함께 돌려 보냈다.
2053#23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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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2 三國史記(1145) 성덕왕
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미녀 2명을 바쳤다. 한 명은 이름이 포정(抱貞)이며 아버지는 나마 천승이었고, 또 한 명은 이름이 정완(貞菀)이며 아버지는 대사 충훈이었다. 의복, 그릇, 노비, 수레와 말을 주어 예와 자태를 갖추게 하여 보내었다.
현종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왕의 고종 자매로서 가족과 떨어지고 본국과 헤어졌으니 짐은 차마 남겨둘 수가 없구나.” 후하게 하사하고는 돌려보냈다.
※책부원귀와 당회요에는 723년으로 되어 있다.
2053#7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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