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고려의 장수 이성계는 요동을 치라고 보낸 정벌군을 되돌려 왕을 쫓아내고 이씨 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명나라에 물어 국호를 조선으로 정한 뒤 왕씨 왕족을 멸족시켰다. 이후 명나라의 요구로 처녀를 바치기 시작했는데 그 처녀들이 순장당해도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는 민중들이 궁궐과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왕자들을 붙잡아 일본군에 바치기도 했다. 망할 때는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고 통치권을 넘긴 뒤 그 통치에 부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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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1388 위화도 회군
천산산맥 북쪽에 금의 함주가 있었다. 금을 멸망시킨 원은 왕고의 철령 북쪽에 있던 함주를 이와 혼동하여 인근 화주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철령 이북을 소속시켰다. 또 금의 함주에는 개원로를 설치하였는데 쌍성총관부를 이 개원로에 소속시켰다.
원을 몰아낸 명은 원의 개원로에 속했던 철령 이북을 왕고로부터 돌려받아 철령위를 설치하고 새로 설치된 요동도사에 소속시키려 하였다.
왕고는 이에 반발하여 요동을 공격하게 했으나 정벌군 장수 이성계는 반란을 일으켰다.
23547#2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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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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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 대마도 정벌
이조 세종때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1만 7천여 명의 병력과 두 달여 치의 식량을 200여 척의 배에 실어 보냈다.
대마도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갔고 정벌군은 배에 머물며 일부를 내려보내 치게 했으나 패하여 돌아왔다. 대마도주가 항복하는 편지에 "7월 사이에는 항상 풍파의 변이 있으니, 오래 머무름이 옳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정벌군은 항복을 받아들이고 보름만에 돌아왔다.
23547#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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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 세종대왕의 처녀진헌
영락제가 죽자 태종이 바친 처녀들은 순장을 당했다. 뜰에서 음식을 먹이고 마루에 끌어 올려 작은 상 위에 서서 올가미에 머리를 넣게 하고 상을 떼어 버리니 모두 목이 매달려 죽었다. 한씨가 죽을 때 "낭아 나는 간다. 낭아 나는 간다." 고 하였는데 말을 마치기 전에 상을 빼내므로 다른 처녀와 함께 죽었다.
한씨의 여동생도 얼굴이 예쁘다고 알려져 1428년에 진헌녀로 명나라에 보내졌다. 그녀는 시집갈 때 쓰려고 준비했던 침구를 다 찢어 버렸다.
23547#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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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 세종대왕의 처녀진헌
처녀 7인이 떠나기 전, 중궁이 경회루로 불러 전별연을 베풀었다. 밤에 날씨가 맑고 고요한데 슬피 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니, 듣는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7명의 처녀들이 떠나는 날, 근정전으로 들어와 교자에 나누어 들어갔다. 건춘문에서 길을 나서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아 울면서 보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세종대왕은 "원통한 것은 이루 말할수 없으나 외국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영만 따를 뿐이다."고 했다.
23547#2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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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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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 임진왜란
선조가 피난길에 오르자 병사들은 병기를 질질 끌고 도망가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사람이 빚어낸 일이다. 임금이 왔으니 이제는 살았구나, 기꺼이 적군을 맞이해야지.’ 하였고 백성들은 궁궐과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전라도에서는 순찰사가 군사를 모으려하자 난을 일으켜 관청과 감옥을 불질렀고 겨우 끌어모은 군사들도 도망가 버렸다. 함경도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켜 관아를 점령하고 군사를 모으러 온 두 왕자와 관리들을 붙잡아 일본군을 맞았다.
23547#2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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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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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 안중근과 이씨왕조
황태자가 직접 전보로 아뢰기를, “이토오 태사가 오늘 오전 9시에 하얼빈 역에 도착하여 우리나라 사람의 흉악한 손에 의하여 피살되었으니 듣기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하였다.
조령을 내리기를, “생각건대, 그와 같은 고약한 도당이 세계 형세에 어두워서 이따금 일본의 두터운 우의를 무시하려고 하다가 마침내는 전에 없던 변괴를 빚어냈으니 이는 바로 짐의 국가와 사직을 해치는 자이다." 하였다.
23547#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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