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 이야기 > 1424 세종대왕의 처녀진헌

서울 세종로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세종대왕의 동상이 서 있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모셔지고 있는 왕이다. 그런 세종대왕의 행적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매우 난감한 부분들이 있다. 특히 세종 8년 12월의 기록을 보면 거의 사흘에 한번 꼴로 처녀를 간택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처녀는 명나라 황제에게 바쳐질 진헌녀를 말한다. 마치 왕의 주된 업무가 진헌할 처녀를 뽑는 일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1393 화령(和寧)
이성계는 왕조를 세운 뒤,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 둘 중에 어느 것을 국호로 할 지를 물어, 조선으로 하라는 결정을 받아 국호를 조선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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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1424 영락제
영락제는 주원장의 4남으로 조카가 황제가 되자 그를 내쫓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했다. 몽골, 만주, 월남 등지를 정벌하였고 동남아시아에 원정대를 보내 조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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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04-16 조선왕조실록
임금(태종 이방원)이 황제(영락제)의 서신에 절하고 나서 서쪽 섬돌로 올라가 사신 앞에 꿇어앉았다. 황엄이 황제의 뜻을 전하기를, "네가 조선국에 가서 국왕에게 말하여 잘 생긴 여자가 있으면 몇 명을 간택해 데리고 오라." 하였다.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 이조가 명나라에 처녀를 바치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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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04-04 조선왕조실록
전국의 혼인을 금지하니, 새해 인사차 보낸 통역 사신 원민생이 명나라의 서울로부터 돌아와 황제(영락제)가 미녀를 요구한다고 (태종 이방원에게) 넌지시 알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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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08-16 조선왕조실록
사신 황엄·해수가 한씨·황씨를 데리고 돌아가는데 한씨의 오빠 부사정 한확, 황씨의 형부 녹사 김덕장, 근수하는 시녀 각 6인, 화자 각 2인이 따랐다. 길 옆에서 보는 자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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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1-19 조선왕조실록
(세종의 왕위계승을 승인하는 영락제의 문서가) 경복궁에 당도하자 상왕(태종)은 궁문 밖에서 영접하고 사신은 절·고를 받들고 근정전에 당도하였다. 임금(세종)은 뜰에 내려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네 번 절하고 면복을 입고 나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멀리 사은하며 네 번 절하고 향을 피우며 또 네 번 절하고 만세를 부르며 춤추고 발구르며 네 번 절하고(山呼舞蹈四拜) 면복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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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1-19 조선왕조실록
예식이 끝나니 한확은 악차 앞에 와서 네 번 절하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임금(세종)이 사신과 더불어 행례할 적에 한확은 “감히 그럴 수 없다.” 고 사양하는데 임금이 강권하여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한확은 잔치에는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는 본국 사람인데 그 누이가 황제의 후궁으로 뽑혀 들어가서 총애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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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 조선왕조실록 세종 06년
당시 명나라 황제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4남 영락제였다. 그는 이때 65세였었는데 몇 달 후 죽었기 때문에 이 해에 차출되어 진헌될 예정이었던 처녀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내졌다. 그러나 이전에 바쳐졌던 처녀들은 일부가 이미 죽고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남은 사람도 모두 이때 순장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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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07-08 조선왕조실록
명나라를 다녀온 사신이 세종에게 명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였다. 그 내용은 황제가 조공에 대해 불평을 하자 옆에 있던 내관이 황제의 본심을 눈치 채고 이조 사신들에게 처녀를 바치라고 요구하였고 그러자 황제가 매우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세종 또한 황제의 마음을 읽어 황제에게 바칠 처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처녀를 뽑는 과정은 먼저 진헌색을 설치하고 혼인을 금지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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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07-20 조선왕조실록
진헌색(進獻色)이 계하기를, “이번 처녀를 선택하여 고를 때에 종실의 친척과 전조(前朝) 왕씨와 귀화하여 온 사람과 국가에 관계되는 죄인의 딸자식은 모두 간선(揀選)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허락하였다. ● 이씨왕조의 종친이나 왕씨왕조의 후손 그리고 죄인의 친척은 처녀진헌에서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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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10-17 조선왕조실록
황제가 죽자 궁인으로 순장된 자가 30여 인이었다. 죽는 날 모두 뜰에서 음식을 먹이고 마루에 끌어 올리니 곡성이 전각을 진동시켰다. 마루 위에 나무로 만든 작은 평상을 놓아 그 위에 서게 하고 올가미를 만들어 머리를 그 속에 넣게 하고 평상을 떼어 버리니 모두 목이 매어져 죽게 되었다. 한씨가 죽을 때 김흑에게 이르기를, "낭아 나는 간다. 낭아 나는 간다." 고 하였는데 말을 마치기 전에 곁에 있던 환관이 걸상을 빼내므로 최씨와 함께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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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1435 선덕제
영락제의 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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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 세종 08년
1426 세종 08년 03월 14일   1426 세종 08년 03월 14일   1426 세종 08년 04월 07일   1426 세종 08년 04월 18일   1426 세종 08년 11월 18일   1426 세종 08년 12월  
 
1426-03-14 조선왕조실록
● 진헌녀로 뽑히는 것을 모두가 꺼려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처녀를 숨기지 않도록 시집안간 딸들을 빠짐없이 신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관리들에게도 엄한 명령을 내려 인정사정없이 조건에 맞는 처녀를 찾아 서울로 올려보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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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03-14 조선왕조실록
진헌색(進獻色)이 계하기를, “처녀와 따라갈 화자를 충청·경상·전라·황해·평안도에 5명씩, 경기·함길·강원도에 3명씩으로, 나이가 어리고 합당한 사람으로 선택하여, 치장을 차리어 역마(驛馬)를 주어서 올려 보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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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03-14¦진헌녀 선발 조건
진헌녀 선발에서 제외된 네 부류는 다음과 같다. (1) 종실의 친척 (2) 전조 왕씨 (3) 귀화인 (4) 국가에 관계되는 죄인의 딸 그 이유가 뭘까? (1)은 왕족의 특권으로 해석할 수 있다. (3)과 (4)는 진헌녀라 하더라도 황제를 모시는 여자인만큼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계층으로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2)는 어떤 배경일까? 이씨왕조는 왕씨고려를 비하하고 그 왕족들을 대부분 살해하는 등 적대적인 태도를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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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12 조선왕조실록
● 거의 사흘에 한 번 꼴로 명나라에 바칠 처녀를 간택하였다. 마치 왕의 주된 업무가 진헌할 처녀를 뽑는 일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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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 세종 09년
1427 세종 09년 02월 06일   1427 세종 09년 05월 01일   1427 세종 09년 05월 01일   1427 세종 09년 05월 04일   1427 세종 09년 07월 18일   1427 세종 09년 07월 19일   1427 세종 09년 07월 19일   1427 세종 09년 07월 20일   1427 세종 09년 07월 21일   1427-05-01 조선왕조실록  
 
1427-07-18 조선왕조실록
중궁이 경회루에 나가서 처녀 7인을 불러 보고 전별연을 베풀었는데, 처녀의 어머니와 친족들도 또한 연회에 참예하였다. 집찬비(執饌婢) 10인과 수종(隨從)하는 비(婢) 16인은 루(樓) 아래에서 음식을 먹이었다. 성씨(成氏)·차씨(車氏)에게 따르는 비(婢)는 각기 3인이고 그 나머지는 각기 2인이었다. 밤에 날씨가 맑고 고요한데 슬피 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니, 이를 듣는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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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19 조선왕조실록
처녀 차씨(車氏)의 어머니에게 노비 각 3명과 쌀과 콩 합계 40석을 내리고, 최씨(崔氏)의 어머니에게 쌀과 콩 합계 40석을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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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19 조선왕조실록
홍인을 좌군 동지총제, 김오문을 우군 동지총제, 양질을 사헌 장령, 처녀 차씨의 오라비 차효생을 중군 사정, 안씨의 아버지 안복지, 최씨의 숙부 최지손, 오씨의 아버지 오척을 모두 우군 사정을, 정씨의 아버지 정효충을 호군, 최씨의 외숙 최홍재를 사직, 노씨의 아버지 노종득을 좌군 사직, 숙부 노증을 호군으로 삼고, 진헌사인 지돈녕부사 안수산과 성씨의 아버지 성달생에게 의복과 갓·신을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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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20 조선왕조실록
세 사신이 대궐에 나아가니, 임금이 맞이하여 근정전의 뜰 막차로 들어와 다례를 행하였다. 7명의 처녀들이 상림원으로부터 근정전으로 들어 와서 집이 있는 교자에 나누어 들어갔는데, 성씨만은 한 교자에 혼자 들어가고 그 나머지는 두 사람이 한 교자를 같이 탔다. 사신이 친히 자물쇠를 채우고 집찬비와 수종하는 비도 모두 말을 탔다. 건춘문에서 길을 떠나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아 울면서 보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또한 모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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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07-21 조선왕조실록
임금이 말하기를, “어제 처녀들이 갈 적에 어미와 자식이 서로 이별하게 되니 그 원통한 것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국내의 이해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관계되어 조정 신하들의 비교가 아니므로 간할 수도 없고 다만 영만 따를 뿐이다. 만약 일이 본국의 이해에 관계된다면 마지못하여 주달했을 것이다.” 然此事非本國利害所關 且外國 非若廷臣之比 不得諫諍 唯令是從而已 若事關本國利害 則不得已奏達矣 ●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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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7¦세종은 왜 진헌녀를 보냈나?
세종 자신도 원통해 한 일인데 왜 그는 처녀 진헌을 거부하지 못했을까? 만약 처녀 진헌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처녀를 바치지 않는다고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씨왕조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사소한 일 같지만 명나라가 이씨왕조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씨왕조에게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첫째, 이씨왕조가 왕조를 개창한 지 30여년 밖에 안 된 신생 왕조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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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10-04 조선왕조실록
세 사신이 한씨를 모시고 돌아가니 임금이 모화루에서 전별연을 베풀어 보내고 진헌사 총제 조종생과 한씨의 오라비 광록시 소경 한확이 함께 갔다. 도성 안 사람과 사녀들이 한씨의 행차를 바라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그의 형 한씨가 영락 궁인이 되었다가 순장당한 것만도 애석한 일이었는데 이제 또 가는구나”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이때 사람들이 이를 생송장이라 하였다. ● 한씨의 언니는 1417년에 바쳐졌다가 1424년 황제가 죽었을 때 순장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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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0 미군 위안부 피살사건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2건과 1건 발생하였는데 모두 참혹한 죽음이었다. 용의자인 미군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못해 범인을 잡지 못하고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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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국과 속국에 대한 이런 정의
이시이 아키라(石井明) 도쿄대 명예교수 등도 류큐가 중국의 번속국이라는 의견을 냈다. 번국은 대국의 제후 등이 파견돼 다스리는 변방국가를 뜻하고, 속국은 자체 왕조가 있되 대국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는 형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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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신라시대
0403 일본서기(720) 아신왕   0428 일본서기(720) 전지왕   0453 일본서기(720)   0455 일본서기(720) 개로왕   0458 일본서기(720)   0461 일본서기(720) 개로왕   0466 위서(554) 장수왕   0472 위서(554) 개로왕   0631 구당서(945) 진평왕   0646 구당서(945) 보장왕   0713~0741 신당서(1060) 성덕왕   0722 삼국사기(1145) 성덕왕   0791 삼국사기(1145) 원성왕  
 
왕고시대
1231 고려사절요   1273-03 고려사(1451)   1273-03 고려사(1451)   1275 고려사절요   1276 고려사절요   1288 고려사절요   1290 고려사절요   1292 고려사절요   1293 고려사절요   1294 고려사절요   1300 고려사절요   1301 고려사절요   1302 고려사절요   1305 고려사절요   1307 고려사절요   1308 고려사절요   1309 고려사절요   1310 고려사절요   1331 고려사절요   1335 고려사절요   1338 고려사절요   1343 고려사절요   1353 원사   1362 고려사절요  
 
일본군위안부 [日本軍慰安婦]
일본 제국주의 점령기에 일본에 의해 군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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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의 해외여행
나라가 힘이 없어 중국에 바쳐진 인간 진상품… 貢女(공녀)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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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공녀
두산백과: 왕소군   두산백과: 화번공주  
 
환향녀 [還鄕女]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절개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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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철수 자주화
외국에 기대어 생존을 도모할 때 여자들이 희생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할 수 있다면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로부터 우리가 얻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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