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과 예의 교류는 단단대령 남쪽에 나 있는 추가령구조곡을 통해 이루어졌다. 불내는 낙랑과의 관계에서 항상 가장 먼저 거론되고 또 낙랑에 가장 우호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이는 불내가 낙랑에서 예로 갈 때 먼저 접하는 지역이라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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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5 三國志(289)
後爲夷貊所侵 徙郡句麗西北 今所謂玄菟故府是也 沃沮還屬樂浪 漢以土地廣遠 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 治不耐城 別主領東七縣 時沃沮亦皆爲縣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현도의 고부라는 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不耐城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에 옥저도 현이 되었다.
2776#40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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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0 三國志(289)
省邊郡 都尉由此罷 其後皆以其縣中渠帥爲縣侯 不耐·華麗·沃沮諸縣皆爲侯國
夷狄更相攻伐 唯不耐濊侯至今猶置功曹·主簿諸曹 皆濊民作之
변경의 군을 줄였는데 도위도 이 때 폐지되었다. 그 후부터 현에 있던 우두머리로 모두 현후를 삼으니 不耐·화려·옥저 등의 제 현은 전부 후국이 되었다. 이들 이적들은 서로 침공하여 싸웠으나 오직 不耐濊侯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조·주박 등의 제조를 두었는데 예인이 모두 차지하였다.
2776#1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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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수서(636)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옥저로 쫓겨 갔다.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를 세웠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중국·고려·백제의 족속들이 뒤섞여 있으며 옥저·不耐·한·예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라의 왕은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 北史(659)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다.
2776#1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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