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地理志 > -0108 樂浪郡 > -0075~0030 東部都尉 > 不而

낙랑과 예의 교류는 단단대령 남쪽에 나 있는 추가령구조곡을 통해 이루어졌다. 불내는 낙랑과의 관계에서 항상 가장 먼저 거론되고 또 낙랑에 가장 우호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이는 불내가 낙랑에서 예로 갈 때 먼저 접하는 지역이라 그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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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5 三國志(289)
後爲夷貊所侵 徙郡句麗西北 今所謂玄菟故府是也 沃沮還屬樂浪 漢以土地廣遠 在單單大領之東 分置東部都尉 治不耐城 別主領東七縣 時沃沮亦皆爲縣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현도의 고부라는 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不耐城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에 옥저도 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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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朝鮮 䛁邯 增地 黏蟬 駟望 屯有 帶方 列口 長岑 海冥 昭明 提奚 含資 遂成 鏤方 渾彌 浿水 吞列┆東暆 蠶台 不而(불이)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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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 漢書(82)
朝鮮 䛁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東暆 不而(불이)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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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0 三國志(289)
省邊郡 都尉由此罷 其後皆以其縣中渠帥爲縣侯 不耐·華麗·沃沮諸縣皆爲侯國 夷狄更相攻伐 唯不耐濊侯至今猶置功曹·主簿諸曹 皆濊民作之 변경의 군을 줄였는데 도위도 이 때 폐지되었다. 그 후부터 현에 있던 우두머리로 모두 현후를 삼으니 不耐·화려·옥저 등의 제 현은 전부 후국이 되었다. 이들 이적들은 서로 침공하여 싸웠으나 오직 不耐濊侯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조·주박 등의 제조를 두었는데 예인이 모두 차지하였다.
14989
 
0030 三國志(289)
省都尉 封其渠帥爲侯 今不耐濊皆其種也 도위를 폐지하고 그들의 우두머리를 봉하여 후로 삼았다. 오늘날의 不耐濊는 모두 그 종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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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0 三國史記(1145)
華麗·不耐二縣人連謀 率騎兵犯北境 貊國渠帥 以兵要曲河西 敗之 王喜 與貊國結好 화려와 不耐 두 현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맥국의 우두머리가 곡하의 서쪽에서 군사로써 막아 물리쳤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우호를 맺었다.
14990
 
0245 三國志(289)
樂浪太守劉茂·帶方太守弓遵以領東濊屬句麗 興師伐之 不耐侯等擧邑降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궁준은 령 동쪽의 예가 구려에 복속하자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였는데 不耐侯 등이 고을을 들어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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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수서(636)
魏將毌丘儉討高麗 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留者遂爲新羅焉 故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兼有沃沮·不耐·韓·獩之地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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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수서(636)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옥저로 쫓겨 갔다.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를 세웠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중국·고려·백제의 족속들이 뒤섞여 있으며 옥저·不耐·한·예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라의 왕은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 北史(659)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다.
14991
 
0247 三國志(289)
詣闕朝貢 詔更拜不耐濊王 居處雜在民間 四時詣郡朝謁 二郡有軍征賦調 供給役使 遇之如民 (예가) 조정에 와 조공하므로 不耐濊王으로 봉하였다.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계절마다 군에 와서 조알하였다. 2군에 전역이 있어 조세를 거둘 일이 있으면 공급케 하고 사역을 시켜 마치 백성처럼 취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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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1+ ❰❰ 0016 이후 三國史記(1145)
北溟人耕田 得濊王印 獻之 (신라) 북명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을 얻어 바쳤다. ▐ 북명은 지금의 안변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신라가 죽령 이북의 땅을 차지한 것은 551년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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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 수서(636)
鏤方 長岑 海冥 蓋馬 建安 南蘇 遼東 玄菟 扶餘 朝鮮 沃沮 樂浪 黏蟬 含資 渾彌 臨屯 候城 提奚 踏頓 肅慎 碣石 東暆 帶方 襄平 凡此衆軍 先奉廟略 駱驛引途 總集平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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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불내 화려고(不耐華麗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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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변
낙랑이나 한국에서 영흥만 지역으로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첫 지역이다. 낙랑과의 관계에서 항상 먼저 거론되는 不而가 안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979
 
철령
14980
 
추가령구조곡
영흥만 지역에 들어가는 통로다. 한국 뿐만 아니라 낙랑도 단단대령 남쪽으로 나 있는 이 통로를 통해 영흥만과 교류하였을 것이다.
14978
 
¦중국의 추정도
¦중국의 추정도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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