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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진흥왕순수비
삼각산 비봉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사람들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 비석을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으로 알고 있었다.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이씨조선을 건국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승려다. 이중환은 1751년 펴낸 택리지에서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도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백운대에서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비봉에 이르러 '무학은 이곳에 잘못 찾아왔다(武學誤尋倒此)'는 글이 새겨진 비석을 발견하고는 발길을 돌렸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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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진흥왕순수비
그 뒤 금석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정희는 1816년에 그 수수께끼의 비석을 찾아가서 새겨진 글귀를 해독해 보고는 매우 놀라게 된다. 그 비석은 400여 년 전에 있었던 무학대사와 관련된 비석이 아니라 1200년도 더 된 신라진흥왕의 순수비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예로부터 전해들은 역사와 이야기 중에는 왜곡되거나 잘못된 것도 많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민족정체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의 착각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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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역사교과서의 변천
이조말기의 역사교과서를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단군이 단군조선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는데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그리고 고구려로 이어졌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은 남쪽으로 와 마한을 세웠는데 진한과 변한을 속국으로 두었다. 이 삼한은 나중에 백제, 신라 그리고 가야로 발전하였다. 가야는 신라에 흡수되었고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의 3국이 대립하는 시대가 이어졌는데, 결국 신라에 의해 통일되었다. 신라말기에 잠깐 후삼국으로 분열되었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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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중복국호의 구별
• 國家年代記   • 고려왕 작위    BC 57 서야벌(徐耶伐)    BC 57 서나벌(徐那伐)    BC 37 고구려(高句麗)    BC 18 십제(十濟), 백제(百濟)    0065 계림(雞林)    0307 신라(新羅)    0503 신라(新羅)    0538 남부여(南扶餘)    0900 백제(百濟)    0901 고려(高麗)    0904 마진(摩震)    0911 태봉(泰封)    0918 고려(高麗)    1393 조선(朝鮮)    1897 대한(大韓)    194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Sassanid Persian Empire    高麗神社(こまじんじゃ)   • 이조    ¦중복구호의 구별  
 
 (03) 식민사관과 민족사관
일본의 역사 정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마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단계적으로 심화되어 왔다. 이 역사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는 한국통일, 원의 침공, 이조 침공, 명치유신 그리고 한일합방을 들 수 있다. 676년에 완료된 한국통일은 백제를 멸망시켜 일본과 한국 사이의 오랜 연결고리를 끊어 버렸고 일본으로 하여금 당나라와 신라의 침공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여 일본은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편찬하였는데, 여기에는 수나라의 중국통일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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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반도사관과 대륙사관
반도사관은 한국의 역사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의해 타율적으로 변화해 왔다는 주장이다. 식민사관의 타율성론을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반도적 성격론'이라고도 한다. 한반도는 어차피 외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대륙세력의 가혹한 지배보다는 온정적인 일본의 통치를 받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일제의 한반도 통치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는데 악용되었다. 대륙사관은 한민족의 역사 무대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 중국대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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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재야사학이란 일반적인 역사의 연구방법과 그 결과를 따르지 않고 주류 사학계가 주목하지 않는 사료를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향토사 또는 야사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류 사학계가 주목하지 않는 사료란 개인의 일기, 문집, 편지, 판결문, 신문 등을 말한다. 이러한 역사의 재료는 근래에 와서 주류사학을 보완하는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재야사학의 의미가 변질되어 쓰이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한단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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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유물사관과 주체사학
돌보습과 같은 석기로 농사를 짓는 것보다 경운기와 같은 농기계로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수확물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생산력의 차이를 말하는 것인데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 오면서 생산력은 계속 증대되어왔다. 이 생산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대에는 생산한 수확물을 사람들이 먹고 나면 남는 게 없었지만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생산력이 증대되어 먹고도 남는 수확물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을 잉여생산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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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실증사학은 식민사관인가?
실증사학은 191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동경제국대학과 와세다대학 그리고 조선의 경성제국대학에서 전문적으로 역사학을 교육받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연구의 학풍을 말한다. 실증사학은 합리적인 사료비판과 해석을 통하여 치밀하게 문헌을 고증하고 정치나 기타 불순한 요소의 개입을 배격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실증사학에서는 '역사가는 현재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과거 사실을 보아야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역사를 위한 역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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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민족사와 국사 그리고 역사공동체
대한민국사나 중화인민공화국사라고 하면 대략 60여년이 된다. 그러나 한국사나 중국사라고 하면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우리가 가정 생활을 함에 있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구이고 보모님의 고향은 어디이며 형제자매들은 또 언제 태어났는가 하는 내력을 알아야 가정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듯이, 한 나라의 국민들도 자기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국가공동체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다. 한 나라의 역사는 현재 그 나라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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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역사왜곡의 원인
근래 한국사에 관해 갖가지 황당한 주장들이 나오고 또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가 나올 수 있다. (1) 열등감 한국사를 보면 대륙과 열도로부터 침략을 받고 지배를 당한 일로 가득하다. 여기에 울분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영광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 주장이 나온다면 그 근거가 미약하더라도 믿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수난의 역사에서 생긴 열등감이 역사왜곡의 토양이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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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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