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4. 임나사 > 기록 > 0391 4읍 > 벽중(辟中)
 
 0289 삼국지(晉·陳壽)
마한은 벽비리국(辟卑離國) 등 모두 5십여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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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8-08(<18) 삼국사기(1145)
(백제) 원산과 금현의 두 성을 수리하고,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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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30 삼국사기(1145)
처음으로 벽골지(碧骨池)를 만들었는데 둑의 길이가 1천 8백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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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1 왜의 7국 4읍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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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1-03(<-249) 일본서기(720)
... 이 때 비리‧벽중(辟中)‧포미지‧반고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 그래서 백제왕 부자와 황전별·목라근자 등이 의류촌(지금은 주류수기라 한다)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천웅장언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벽지산(辟支山)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다시 고사산(古沙山)에 올라가 함께 반석 위에 앉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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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95 남제서(537)
이제 사법명을 가행정로장군 연라왕으로, 찬수류를 가행안국장군 벽중왕(辟中王)으로, 해례곤을 가행무위장군 불중후로 삼고, 목간나는 과거에 군공이 있는 데다 또 성문과 선박을 때려 부수었으므로 행광위장군 면중후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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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6 주서(周書)
백제의 도읍은 고마성이다. 지방에는 다시 5방이 있으니 중방은 고사성(古沙城), 동방은 득안성, 남방은 구지하성, 서방은 도선성, 북방은 웅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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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2-12-01 일본서기(720)
백제왕 풍장, 그 신하 좌평 복신 등은 협전련·박시전래진과 의논하기를 “이 주유(州柔)는 농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토지가 척박하여 농업과 양잠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고, 방어하기 좋아 싸울 만한 곳이다. 여기에서 오래 머문다면 백성들이 굶주릴 것이니 이제 피성(避城)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 끝내 간하는 말을 따르지 않고 피성(避城)에 도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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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3-02-02 일본서기(720)
백제가 달솔 김수 등을 보내 조를 바쳤다. 신라인이 백제의 남쪽 경계에 있는 4주를 불태우고, 아울러 안덕 등의 중요 지역을 빼앗았다. 이에 피성(避城)이 적과 거리가 가까웠으므로 형세가 머물 수 없어 주유에 돌아와 살았으니, 전래진이 헤아린 바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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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90 삼국사기(1145)
벽골제(碧骨堤)를 증축하였는데, 전주 등 7주 사람을 징발하여 공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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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51 삼국사기(1145)
청해진을 없애고 그곳 사람들을 벽골군(碧骨郡)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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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고사주(古四州)는 본래 고사부리(古沙夫里)다. 5현으로 평왜현(平倭縣)은 본래 고사부촌(古沙夫村), 대산현은 본래 대시산, 벽성현(辟城縣)은 본래 벽골(辟骨), 좌찬현은 본래 상두, 순모현은 본래 두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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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김제군은 본래 백제의 벽골현(碧骨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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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완산주의 군현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벽골군(碧骨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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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
고부군(古阜郡)은 본래 백제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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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 주변 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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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골제는 방조제였다.
벽골제는 삼한시대 때 저수지 제방이 아니라 방조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조 초기에 그 흔적을 두고 거대한 호수였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중국의 지역 명칭을 투영하여 호남, 호서 그리고 기호 지방의 이름이 생겨났다. --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벽골지와 벽골제가 나오는데 저수지인지 방조제로 인해 생긴 담수호인지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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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1
일본서기의 이야기는 왜와 백제의 연합군이 벽중(辟中)의 항복을 받고 주류수기(州流須祇)에서 백제왕을 만나 벽지산(辟支山)과 고사산(古沙山)에 차례로 올라 맹세를 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벽성(辟城)은 원래 벽골(辟骨)이었는데 고사(古沙)와 인접한 곳이며 벽성과 고사는 각각 지금의 김제와 고부에 해당된다. 이로써 벽중(辟中)의 위치를 김제로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주서에 나오는 기록과도 정황이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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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2
辟城(벽성)은 피성으로도 읽히는데 훗날의 피성(避城)과 연결될 수 있다. 벽중(辟中) = 벽골(辟骨) = 벽성(辟城) = 피성(避城). 그러면 주류수기(州流須祇)와 주유(州柔)도 대응이 되는데 삼국사기에 나오는 주류성(周留城)이다. 주류성은 지금의 변산반도로 추정된다. 주류수기(州流須祇) = 주유(州柔) = 주류성(周留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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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나4현과 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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