辟卑離·辟中·辟支·碧骨·辟城·避城·金堤┆古沙夫里·古四·古阜·平倭┆意流村·州流須祇·州柔·周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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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日本書紀(720)
비리‧辟中‧포미지‧반고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백제왕 부자와 황전별·목라근자 등이 意流村(지금은 州流須祇라 한다)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천웅장언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辟支山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다시 古沙山에 올라가 함께 반석 위에 앉아서 맹세하였다.
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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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2 日本書紀(720)
백제왕 풍장, 그 신하 좌평 복신 등은 협전련·박시전래진과 의논하기를 “이 주유(州柔)는 농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토지가 척박하여 농업과 양잠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고, 방어하기 좋아 싸울 만한 곳이다. 여기에서 오래 머문다면 백성들이 굶주릴 것이니 이제 피성(避城)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끝내 간하는 말을 따르지 않고 피성(避城)에 도읍하였다.
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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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3 日本書紀(720)
백제가 달솔 김수 등을 보내 조를 바쳤다. 신라인이 백제의 남쪽 경계에 있는 4주를 불태우고, 아울러 안덕 등의 중요 지역을 빼앗았다. 이에 避城이 적과 거리가 가까웠으므로 형세가 머물 수 없어 주유에 돌아와 살았으니, 전래진이 헤아린 바와 같았다.
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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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全州
古阜郡 本百濟古眇夫里郡 景徳王改名 今因之 領縣三┆扶寧縣 夲百濟皆火縣景 徳王改名 今因之┆喜安縣 夲百濟欣良買縣 景徳王改名 今保安縣┆尚質縣 本百濟上㭍縣 景徳王改名 今因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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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57 九州五小京 全州
金堤郡 本百濟碧骨縣 景徳王改名 今因之 領縣四┆萬項縣 本百濟豆乃山縣 景徳王改名 今因之┆平皐縣 夲百濟首冬山縣 景徳王改名 今因之┆利城縣 夲百濟乃利阿縣 景徳王改名 今因之┆武邑縣 夲百濟武斤村縣 景徳王改名 今富潤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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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중(辟中)
삼국지에는 마한에 辟卑離國 등 50여개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비리는 古沙夫里의 부리처럼 들이라는 뜻이다.
일본서기에는 왜가 한국에 진출할 때 辟中의 항복을 받고 意流村 또는 州流須祇에서 백제왕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辟支山과 古沙山에 차례로 올라 맹세를 했다고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백제의 碧骨郡이 웅진도독부의 古四州 辟城縣이 되었다가 신라의 金堤郡이 되었고, 백제의 古沙夫里郡은 웅진도독부의 古四州 平倭縣이 되었다가 신라의 古阜郡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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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卑離)
비리(卑離)는 옛 지명 어미에 흔히 붙어 있는 백제의 부리(夫里), 신라의 벌(伐)·불(弗)·불(火) 등과 같은 뜻이다. 즉, 평야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어 읍락 또는 나라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일정한 지역의 비리 중 근본이 되는 비리에는 특정한 이름이 붙지 않았을 수 있다. 신라의 6부 이름에 梁部·沙梁部·漸梁部 등이 있는데, 이 중 근본이 되는 것만 양부라고 한 예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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