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195~0313 朝鮮·樂浪史 > -0109 ~ -0108 한나라의 조선 침공
 
-0111 사기(사기 -91)
누선장군은 정예부대를 이끌고 먼저 심협을 함락시키고 석문을 깨뜨려 월나라의 배와 양식을 노획했다. 이틈에 밀고 나가 월나라의 선봉을 꺽고 수만 명을 거느리고는 복파장군을 기다렸다. 그러나 복파장군은 죄수들을 인솔한 데다 길까지 멀어 약속한 날짜에 늦었고 누선장군과 만났을 때는 1000여 명뿐이었다. 두 군대는 함께 나아갔는데 누선장군이 앞장서서 먼저 번옹에 도착했다.
5877#5842 SIBLINGS CHILDREN COMMENT 5842
 
-0111 사기(사기 -91)
▐ 위만조선을 침공하기 전에 있었던 월남 침공의 기록이다. 죄수를 동원했다는 점과 육로와 해로로 나누어 공격했다는 점에서 조선 침공과 방식이 같다. 월남 침공에서는 육로로 간 부대가 실패했지만 조선 침공에서는 해로로 간 부대가 패배했다. 한나라가 육로와 해로로 나누어 조선을 공격한 방식은 700여년 후 수나라가 고려를 공격한 방식과도 같다.
5877#5841 SIBLINGS CHILDREN COMMENT 5841
 
-0109 ~ -0108 史記(-91) 朝鮮
원봉 2년에 한나라는 사신 섭하를 보내어 우거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끝내 천자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며 국경인 패수에 이르자 마부를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찔러 죽이고 바로 건너 요새 안으로 달려 들어간 뒤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천자가 꾸짖지 않고 하에게 요동 동부도위의 벼슬을 내렸다. 이에 조선은 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습공격해 하를 죽이니, 천자는 죄인을 모집하여 조선을 치게 하였다.
5877#15616 SIBLINGS CHILDREN OPEN
 
-0109 ~ -0108 史記(-91) 朝鮮
가을에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여 제를 따라 발해에 배를 띄우고, 5만의 군사를 이끈 좌장군 순체는 요동에서 출발하여 우거를 토벌하게 하였다. 우거는 군사를 일으켜 험준한 곳에서 준비하였다.
5877#41367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67
 
-0109 ~ -0108  史記(-91) 朝鮮
-0109 ~ -0108 史記(-91) 朝鮮
▐ 齊의 중심지는 발해만 안쪽에 있었다. 齊 병력을 모아 출발시켰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발해 해안선은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있었다. 이곳에서 배를 띄우면 발해에 배를 띄우는 것이 된다. 당시의 항해는 가능한 한 해안선을 따라갔다. 조선을 향해 요동 반도로 건너가든 한반도로 바로 건너가든, 발해만 안쪽에서 띄운 배는 일단 齊의 해안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5877#5848 SIBLINGS CHILDREN COMMENT 5848
 
-0109 ~ -0108 史記(-91) 朝鮮
좌장군의 졸정인 다가 요동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진하였으나, 싸움에 패하여 군사는 흩어지고 다도 도망하여 돌아왔으므로 법에 따라 참형을 당하였다. 누선은 齊 병사 7천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험에 이르렀는데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누선의 군사가 적음을 엿보아 알고, 곧 성을 나와 누선을 치니 누선군은 패해 흩어져 도망갔다. 장군 양복은 그의 군사를 잃고 10여일을 산중에 숨어 살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거두어 모아들였다.
5877#41368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68
 
-0109 ~ -0108 史記(-91) 朝鮮
▐ 한나라 양복의 진군 수나라 내호아의 행보와 비슷하다. "좌익위대장군 내호아가 배의 뒷부분과 앞부분이 수백 리에 이르게 바다에 떠올라 먼저 패수로 들어와서 평양에서 60리 떨어진 곳에서 아군과 서로 만났는데 이를 대파하였다. 숨은 병력이 나가니 내호아가 크게 패하여 겨우 붙잡히는 것을 면하였고 사졸로서 돌아간 자는 수천인에 불과하였다."
5877#14223 SIBLINGS CHILDREN OPEN
 
-0109 ~ -0108 史記(-91) 朝鮮
천자는 양 장군의 전세가 유리하지 않다고 여기고, 위산으로 하여금 군사의 위엄을 갖추고 가서 우거를 달래게 하였다. 우거는 사자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항복하기를 원하였으나 양 장군이 신을 속여서 죽일까 두려워했는데, 이제 신절을 보았으니 항복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태자를 보내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필을 바침과 아울러 군량미를 내주었다.
5877#41369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69
 
-0109 ~ -0108 史記(-91) 朝鮮
무리 만여 인이 무기를 지니고 막 패수를 건너려 할 때 사자와 좌장군은 그들이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태자에게 말하기를, “이미 항복했으니 사람들에게 병기를 버리라고 명하시오.” 라고 하였다. 태자도 역시 사자와 좌장군이 자기를 속이고 죽일까 의심하여 끝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가버렸다. 산이 돌아와 천자께 보고하니 천자는 산을 죽였다.
5877#41370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0
 
-0109 ~ -0108 史記(-91) 朝鮮
좌장군이 패수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전진하여 성 아래에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했다. 누선도 또한 가서 합세하여 성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우거가 끝내 성을 굳게 지키므로 몇 달이 되어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
5877#41371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1
 
-0109 ~ -0108 史記(-91) 朝鮮
▐ 좌장군의 전황을 보면 패수와 왕험성 사이에 또 다른 강이 있을 거 같지 않은 정황이다. 왕험성이 대동강 북안에 있었다면 패수는 청천강이 된다. 그리고 누선은 대동강 하구에 도착하여 왕험성을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5877#14222 SIBLINGS CHILDREN 14222
 
-0109 ~ -0108 史記(-91) 朝鮮
▐ 한나라 좌장군의 행보는 수나라 우문술의 행보와 비슷하다. "既恃驟勝 又逼群議 遂進東 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우문술은 이미 잦은 승리를 거둔데다 여러 의견도 있어 마침내 동쪽으로 진격하여 살수를 건너 평양성으로부터 30리 떨어진 곳에다가 산에 의지하여 군영을 세웠다."
5877#14243 SIBLINGS CHILDREN OPEN
 
-0109 ~ -0108 史記(-91) 朝鮮
좌장군은 본시 시중으로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데다가 燕과 代지방의 군사를 거느렸으므로 굳세었는데, 싸움에 이긴 기세를 타고 군사들이 더욱 교만해졌다. 누선은 齊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바다로 출병하였으나, 이미 여러번 싸움에 패하고 군사를 잃었으며, 앞서 우거와의 싸움에서 곤욕을 치른 패잔한 터라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 하고 장군은 부끄럽게 여겨 우거를 포위하고도 항상 화평을 유지했다.
5877#41372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2
 
-0109 ~ -0108 史記(-91) 朝鮮
좌장군이 맹렬히 성을 공격하니, 조선 대신들은 몰래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누선에게 항복을 약속했으나, 말만 오고 갈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좌장군은 여러 차례 누선과 싸울 시기를 정하였으나 누선은 약속을 급히 이루려고 싸움에 나가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사람을 보내 조선이 항복해 올 때를 탐문하였으나, 조선은 이를 반기지 않고 누선 쪽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양 장군은 서로 반목하게 되였다.
5877#41373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3
 
-0109 ~ -0108 史記(-91) 朝鮮
좌장군은 마음속으로 ‘누선은 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는 데다가 지금은 조선과 사사로이 잘 지내고 있으며, 조선 또한 항복하지 않으니 반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 하였으나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였다.
5877#41374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4
 
-0109 ~ -0108 史記(-91) 朝鮮
천자는, “장수들이 이룰 수 없으므로 전에 위산으로 하여금 우거를 달래 항복하도록 하여 우거가 태자까지 보냈는데도 산이 이를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좌장군과 서로 계교가 틀려 마침내 약속이 깨어지고 말았다. 지금도 양 장군이 성을 포위하고도 역시 어긋나고 달라서 오래도록 결판이 나지 못하고 있다.” 고 말하고 제남태수 공손수를 보내어 이를 바로잡고 상황에 맞게 처하도록 하였다
5877#41375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5
 
-0109 ~ -0108 史記(-91) 朝鮮
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말했다. “조선이 항복할 형편에 이른 지 오래되었는데도 항복하지 않는 것은 사정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누선이 여러 차례 싸우러 나오지 않은 것과 평소의 뜻하는 바를 수에게 낱낱이 고하였다. “지금 이와 같으니 체포하지 않으면 크게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 혼자만이 아니고 조선과 함께 우리 군사를 멸할 것입니다.” 라고 하니, 수도 이를 옳게 여기고 누선장군을 체포하고 군사를 합친 뒤 천자에게 보고하자, 천자는 수를 죽였다.
5877#41376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6
 
-0109 ~ -0108 史記(-91) 朝鮮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하여 맹렬히 조선을 치니, 조선의 상 노인과 상 한음과 니계상 삼 ·장군 왕협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 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장졸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여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음·협·노인이 모두 도망하여 한나라에 항복하였다. 노인은 도중에 죽었다.
5877#41377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7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0109 ~ -0108 史記(-91) 朝鮮
원봉 3년 여름,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으나,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대신 성이가 또 반하여 군리들을 공격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과 항복한 상 노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이를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5877#41378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8
 
-0109 ~ -0108 史記(-91) 朝鮮
삼을 봉하여 홰청후로, 음은 적저후, 협은 평주후, 장은 기후로 삼았으며, 최는 아버지가 죽은데다 자못 공이 있었으므로 온양후로 삼았다.
5877#41379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79
 
-0109 ~ -0108 史記(-91) 朝鮮
좌장군을 불러 들여 오자 공을 다투고 서로 시기하여 계획을 어긋나게 한 죄로 처형하였다. 누선장군도 병사를 거느리고 열구(洌口)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할 것인데도 제멋대로 먼저 군사를 풀어 많은 병사들을 잃어버렸으므로 주살함이 마땅하나 속전을 받고 서인으로 삼았다.
5877#41380 SIBLINGS CHILDREN COMMENT 41380
 
-0109 ~ -0108 史記(-91) 朝鮮
▐ 왕험성이 평양에 있었다면 양복이 왕험성을 치기 위해 도착한 열구는 대동강 하구가 되고 열수는 대동강이 된다. 이 침공 경로는 훗날 수나라가 고려의 평양성을 치기 위해 들어온 경로와 같다.
5877#5913 SIBLINGS CHILDREN COMMENT 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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