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地理志 > -0108 樂浪郡 > -0108 樂浪郡 > 浿水 ↜ 조선 + 사기

패수현은 패수에 있었다. ❷ 패수는 요동과 조선 사이의 경계였는데, 한나라 육군이 패수를 건너 곧바로 평양성에 이르렀고 수군은 대동강 하구에 먼저 도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패수는 청천강이다.
 
-0202 史記(-91) 요약
-0202 史記(-91) 요약
○ 연나라가 그 전성기 때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뒤에는 요동 외요에 소속시켰다. ○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10169
 
-0202 史記(-91)
▶멀어서 지키기 어려우므로 패수를 국경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연나라가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고 진나라가 요동외요에 소속시킨 곳'이 패수 바깥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국경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패수가 요동 바깥 경계였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강은 압록강, 청천강 그리고 대동강이 있을 수 있다.
10060
 
-0110 구원(九原)
15924
 
-0110 갈석산(碣石山)
15920
 
-0110 漢書(82)
行自泰山復東巡海上至碣石(文穎曰在遼西絫縣 絫縣今罷 屬臨榆 此石著海旁 師古曰碣 碣然特立之貌也 音其列反)自遼西歷北邊九原歸于甘泉 태산으로부터 순행을 시작하여 동쪽으로 바다를 거쳐 갈석에 내렸다. 요서로부터 북쪽 변방의 구원을 거쳐 감천으로 돌아왔다. ▶갈석산은 난하 동쪽에 있다. 이때는 패수가 한나라와 위만 조선의 경계였으므로 만약 패수가 난하라면 한무제는 갈석에 내릴 수 없다.
15937
 
-0109 ~ -0108 史記(-91) 요약
-0109 ~ -0108 史記(-91) 요약
○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좌장군 순체는 요동에서 출발하였다. ○ 좌장군의 졸정인 다가 요동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전하였다가 패하여 군사는 흩어지고 다는 도망하여 돌아왔다. ○ 우거는 태자를 보내 들어가 사죄하게 하고 말 5천필을 군량미를 바쳤다. ○ 태자는 사자와 좌장군이 자기를 속이고 죽일까 의심하여 패수를 건너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고 돌아가버렸다. ○ 좌장군이 패수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전진하여 왕험성 아래에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했다.
4290
 
-0109 ~ -0108 史記(-91)
▶패수와 왕험성 사이에 또 다른 강이 있을 거 같지 않은 정황이다. 왕험성이 평양의 대동강 북안에 있었다면 패수는 청천강이 된다.
10061
 
-0108 염철론(-81)
秦既并天下 東絕沛水 並滅朝鮮
18635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朝鮮 䛁邯 增地 黏蟬 駟望 屯有 帶方 列口 長岑 海冥 昭明 提奚 含資 遂成 鏤方 渾彌 浿水(패수) 吞列┆東暆 蠶台 不而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140
 
0008 漢書(82)
朝鮮 䛁邯 浿水(水西至增地入海)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東暆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14961
 
0008 漢書(82)
西蓋馬(馬訾水西北入鹽難水西南至西安平入海過郡二行二千一百里莽曰玄菟亭) 서개마(마자수가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로 들어간다.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2군을 지나 2100리를 흐른다. 왕망은 현도정이라 했다.) ▶압록강을 마자수 또는 염난수라 하였다. 따라서 패수는 압록강이 아니다.
15059
 
0030±~0124± 說文解字(許慎)
浿水 出樂浪鏤方東入海 一曰出浿水縣 패수는 낙랑 누방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혹자는 패수현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패수의 발원지에 대해 누방과 패수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해 놓았다. 뒤의 이야기는 한서 지리지에 나오는 것이나 앞의 이야기는 출처를 알 수 없다.
10044
 
한국의 어원
ᐥ한국은 중국인의 후손 한씨가 세운 나라라는 뜻이다.ᐥ
 
0220 - 水經(桑欽)
貝水 出樂浪鏤方縣 東南過於臨水貝縣 東入於海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서 동남쪽으로 흘러 패수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於臨水貝縣은 於臨貝水縣의 오기로 보인다. 설문해자에 나오는 두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져 있다.
10171
 
0220 - 浿水는 灤河가 아니다
수경주에 실린 수경에는 패수와 유수가 나온다.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패수현을 지나 동쪽 바다로 들어가고, 유수는 새외에서 흘러와 동남쪽으로 요서군의 령지현과 해양현을 지나 남쪽 바다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다. 유수에 대한 설명은 오늘날의 난하와 거의 일치한다. 패수의 흐르는 방향이 난하와 일치한다며 패수가 난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처럼 난하와 더 일치하는 유수가 있기 때문에 패수는 난하가 될 수 없다.
2824#10280
 
0220 後漢書(445)
朝鮮 䛁邯 淇水(패수)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394
 
0276 진서(648)
朝鮮 屯有 渾彌 遂城 鏤方 駟望
10023
 
0386~0534 십삼주지(十三州志)
浿水縣在樂浪東北 鏤方縣在朝鮮郡東 패수현은 낙랑의 동북쪽에 있고 누방현은 조선군의 동쪽에 있다. (澍按酈道元曰蓋出其縣南遷鏤方也 역도원은 대략 그 현의 남쪽에서 나와서 누방을 지나간다고 하였다. 許慎曰浿水出鏤方東入海ー曰出浿水縣 허신은 패수가 누방에서 나와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가는데 패수현에서 나온다고도 했다. 又按浿水屬樂浪郡水西至增地入海 또 패수가 낙랑군에 속하는데 물이 서쪽으로 흘러 증지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도 하였다.)
14455
 
0515± 수경주(水經注) 水經
浿水 出樂浪鏤方縣 東南過臨浿縣 東入于海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 바다로 들어간다.
10163
 
0515± 수경주(水經注) 水經
▶임패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수경에 臨貝水縣이라 되어 있는 것을 오독한 결과로 보인다. 한나라는 낙랑군의 단단대령 동쪽 7현을 동부도위로 묶었다가 나중에 폐지하였다. 전한 25현이 후한 18성이 된 건 이 때문이다. 누방은 후한 18성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단단대령 동쪽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누방에서 발원한 물은 동남쪽으로 흘러 동쪽 바다로 들어갈 수 없다.
10175
 
0515± 수경주(水經注) 許慎
許慎云 浿水出鏤方 東入海 一曰出浿水縣 허신(30±~124±)에 의하면, 패수는 누방에서 나와서 동쪽 바다로 들어가는데 패수현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설문해자와 내용이 같다.
9897
 
0515± 수경주(水經注) 十三州志
十三州志曰 浿水縣在樂浪東北 鏤方縣在郡東 蓋出其縣南逕鏤方也 昔燕人衛滿自浿水西至朝鮮 朝鮮 故箕子國也 箕子教民以義 田織信厚 約以八法 而不知禁 遂成禮俗 戰國時 滿乃王之 都王險城 地方數千里 至其孫右渠 漢武帝元封二年 遣樓船將軍楊僕 左將軍荀彘討右渠 破渠于浿水 遂滅之 若浿水東流 無渡浿之理
10042
 
0515± 수경주(水經注) 十三州志
십삼주지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패수현은 낙랑의 동북쪽에 있고 누방현은 동쪽에 있다. 대략 그 현의 남쪽에서 나와서 누방을 지난다. 연나라 위만이 패수 서쪽에서 조선으로 갔다. 이때는 전국 시대로, 왕이 되어 왕험성에 도읍하였다. 사방이 수천리다. 그 손자 우거에 이르러 한무제가 기원전 109년에 누선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를 보내어 우거를 치게 했는데, 패수에서 격파하고 멸망시켰다.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면 패수를 건널 필요가 없었다.
10043
 
0515± 수경주(水經注) 十三州志
▶패수는 낙랑의 동북쪽에 있고 누방은 낙랑의 동쪽에 있다는 심삼주지의 기록을 들어, 패수가 누방 또는 패수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다면, 연나라 위만이 패수를 건너 조선으로 갔다는 등의 이야기와 모순된다는 뜻이다.
10172
 
0515± 수경주(水經注) 高句麗使
其地今高句麗之國治 余訪番使 言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逕故樂浪朝鮮縣 即樂浪郡治 漢武帝置 而西北流 그곳은 지금 고구려의 도읍인데 사신을 만나 물어보니, 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고 그 물이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 조선현 즉, 낙랑군치(한무제가 설치하였다)를 지나 서북쪽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6390
 
0515± 수경주(水經注) 高句麗使
▶수경주가 편찬될 당시 대동강이 패수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만 조선의 시기에는 패수를 건너 왕험성에 이르거나 열수를 따라 올라가 왕험성에 다다랐으므로 패수는 청천강이고 대동강은 열수였다.
10167
 
0515± 수경주(水經注) 故地理志
故地理志曰 浿水西至增地縣入海 又漢興 以朝鮮為遠 循遼東故塞至浿水為界 옛 지리지에는, 패수가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며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조선이 멀다고 요동의 옛 요새에 의지하여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한서(82) 지리지와 조선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10168
 
0515± 수경주(水經注) 注
○ 考之今古 於事差謬 蓋經誤證也 지금 들은 것과 비교해 보니 차이가 있는데 수경이 잘못 고증한 것이다. ▶수경주 저자는 (1) 십삼주지를 들어 패수가 동쪽으로 흘렀을 리 없고 (2) 고구려 사신의 말을 들어 보면 패수가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3) 옛 지리지에도 패수가 서쪽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다며,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는 수경의 이야기를 부정하고 있다.
10170
 
0612 수서(636)
鏤方 長岑 海冥 蓋馬 建安 南蘇 遼東 玄菟 扶餘 朝鮮 沃沮 樂浪 黏蟬 含資 渾彌 臨屯 候城 提奚 踏頓 肅慎 碣石 東暆 帶方 襄平 凡此衆軍 先奉廟略 駱驛引途 總集平壤
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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