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괴뢰국으로 출발하였다. 이렇게 표현하는 근거가 조선일보의 이 연재에 다 들어 있다.
(1) 해방 직후 한국 사회는 사회주의가 대세였다. 이 말은 대한민국이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2) 한국전쟁때 미군이 개입하여 대한민국이 살아났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군에 방위를 의존하는 것은 종속을 의미한다.
(3) 미국의 재정지원을 받아 정부가 운영되었다. 외국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것 역시 종속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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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원조
1953년 국민소득에서 경제 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이르렀다. 1956년에는 이 비중이 최고 13%까지 올라갔다. 당시 투자 자금의 90%는 원조에서 나왔다. 한국 경제가 전쟁 이후 1960년까지 4~5%의 성장을 이룬 것은 대부분 원조의 힘이었다. 대충자금(對充資金)의 상당 부분은 정부의 재정수입으로 이전됐다. 1954~1959년 대충자금 전입금이 재정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43%에 이르렀다. 1967년에도 이 비중은 2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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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날의 일상 모습
이날 이승만 대통령은 아침 식사를 끝낸 뒤 오전 9시 30분쯤 경회루로 낚시를 하러 갔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어금니 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에 갔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경무대로 들어온 시각은 오전 10시 30분이었다. '탱크를 앞세운 공산당이 개성을 점령하고 춘천 근교에 이르렀다'는 장관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탱크를 막을 길이 없을 텐데…"라고 입속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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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의 사회주의 분위기
해방 직후 한국 사회는 일조시대에 쌓인 부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모두 빼앗아 고루 나눠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정치 세력도 사회주의 세력이 재빨리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앞서나갔다. 한편 주변의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경쟁을 경험했던 한국인들은 일본이 패하고 중국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한국을 장악할 나라는 소련 밖에 없고 이제 그 소련의 이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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