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壽 - 使持節都督諸軍事 平東將軍 護撫夷校尉 樂浪相昌黎玄菟帶方太守 都鄕侯
▐ 동수는 요동 사람이다. 낙랑, 창려, 현도 그리고 대방은 晋의 평주 5군국 중 요동을 제외한 4군이다. 낙랑과 대방은 고려가 병합했지만 그 나머지는 모용선비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용선비는 낙랑과 대방의 유민도 받아 따로 낙랑군을 설치한 바 있다. 동수는 336년에 고려로 망명하였는데 이 관작은 그 전에 모용선비에 있을 때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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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7 묵서명
▶평곽은 요동 반도에 있는 지금의 개주시다.
▶樂浪相昌黎玄菟帶方太守는 서진의 평주 5군국 중 요동을 뺀 4군을 관할하는 직책이라는 뜻이다.
창려는 요서 지역인데 307년 모용외가 자립을 선언할 때부터 모용 선비의 차지가 되었다.
낙랑과 대방은 각각 313년과 314년에 고려에 병합되었는데, 모용외는 그 유민을 받아 낙랑군을 따로 설치하여 안집하였다.
현도는 명목상 고구려현을 포함하는데, 모용외의 아들 모용황은 342년에 고려를 침공하여 도읍을 파괴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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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1.10 三國史記(1145)
百濟王卛兵三萬 來攻平壤城 王出師拒之 爲流矢所中 是月二十三日薨 葬于故國之原
백제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이 군대를 내어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서거하였다. 고국의 들에 장사지냈다.
▶고국원왕의 장사지는 故國之原이고 故國原은 서천왕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서천왕의 무덤은 낙랑과 대방을 병합하지 못했을 때 만들어졌다. 안악3호분은 옛 대방 지역에 있으므로 고국원왕의 무덤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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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남북일렬로 여러 방을 배열하고 앞방 좌우에 옆방을 두는 것은 한대 벽돌무덤의 기본 설계법이고 옆으로 넓어진 앞방에 사각형의 주실을 달아 T자형 평면을 만드는 것은 낙랑의 덧널무덤이나 벽돌무덤에서 흔히 보인다. 또 큰 판석으로 묘실을 짜는 것은 요동의 한대 묘에서 볼 수 있고 모줄임천장, 팔각형 돌기둥 그리고 기둥에 두공을 얹어 천장석을 받들게 하는 것은 산동 기남의 후한 대돌무덤과 같다. 묘주들이 휘장을 친 방안에 앉아 있는 모습은 요동의 고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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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도
위키백과에는 진과 16국 시대의 무장 항목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여 놓았다.
"Procession of Dong Shou, a general of Former Yan or Eastern Jin origin"
'전연 또는 동진 출신의 장수 동수의 행렬'이라는 뜻이다.
▶동수는 고려에 망명하였고 무덤이 있는 곳도 314년 이후 고려가 점유한 대방 지역에 위치해 있으므로 행렬도는 고려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낙랑의 고분 벽화를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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