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4) 낙랑고려 > 무덤 벽화 > 0684 章怀太子墓

장회태자묘의 무덤길과 무덤방에는 50여 폭의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고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새털 쓰개를 하고 있는 그림도 있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章怀太子墓
묘도와 묘실에는 총 50여 폭의 벽화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마구(馬球) 경기, 출행(出行), 객사(客使), 의장대(儀仗隊), 남녀시종의 그림과 같이 귀족의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그림부터 청룡⋅백호⋅일월성신 등 신앙적인 주제까지 다양하여 미술사에서 가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벽화는 채색화가 많으며 우선 회벽에 밑그림을 그린 후에 연한 먹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착색 후 먹으로 다시 윤곽선을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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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懷太子
上元二年(675年),其兄李弘死於合璧宮,六月時改封李賢為皇太子。 開耀元年(681年),將李賢遷徙至巴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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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태자묘 무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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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태자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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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태자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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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태자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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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태자묘 벽화 - 사신
조우관을 쓴 사신의 국적에 대해서는 신라라는 견해와 고려라는 견해가 병존한다. 차남이었던 이현이 태자로 책봉된 해는 형이 죽은 675년인데 이때는 이미 고려가 망한 후이기 때문에 고려의 사신일 수는 없다는 것이 전자의 논거다. 신라는 649년에 관복을 당나라 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사신이 조우관을 썼을 수 없고 고려가 망한 후에도 고려왕은 요동도독조선군왕에 봉해졌기 때문에 고려의 옷차림을 한 사신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후자의 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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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태자묘 벽화 - 사신
그런데 당나라의 요동도독인데 당나라 관복을 착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무덤방 그림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렸다기보다 사신도처럼 상징적인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당나라가 세계의 중심지고 변방의 사신들이 찾아와 천자를 알현하는데 동북아의 강국 고려도 빠지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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