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1145)에는 -37년으로 되어 있으나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 고자묘지명(700)에는 -40년으로 되어 있고 일본서기(720)에는 -32±년으로 되어 있으며 안승책문(670)에는 -132±년 그리고 신당서(1060)에 인용된 고려비기에는 -232±년으로 되어 있다.
•
-0232 0668.02 新唐書(1060)
▐ 환단고기 북부여기에는 -239년에 하늘에서 내려온 帝가 -232년에 무리를 이끌고 5가들을 회유하여 공화정을 폐지하고 단군으로 추대되어 고구려(-86년에 북부여로 개칭)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232년은 역년으로 치면 낙랑고려가 망할 때까지 정확히 900년이 된다. 신당서의 기록에 맞춰 지어낸 듯하다. 5가는 맥고려의 5부를 흉내낸 것이고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전환은 로마제국의 역사를 흉내낸 것이다.
15536#24076
SIBLINGS
CHILDREN
24076
•
-0132- 安勝 책문(670)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였다.
"신라왕이 고구려의 후계자 안승에게 명을 내린다.
公大祖中牟王 積徳比山 立㓛南海 威風振於青丘 仁教被於玄菟 子孫相継 夲攴不絶 開地千里 ❹年將八百
공의 태조 중모왕은 덕을 산처럼 쌓고, 공을 남쪽 바다만큼 세워, 위엄 있는 풍모가 청구에 떨쳤으며, 어진 가르침이 현도를 덮었다. 자손이 서로 이어져 뿌리와 줄기가 끊어지지 않았고, 땅은 천리, 햇수는 거의 800년이나 되었다."
15536#15537
SIBLINGS
CHILDREN
15537
•
-0032± 日本書紀(720)
大唐大將軍英公 打滅高麗 高麗仲牟王 初建國時 欲治千歲也 母夫人云 若善治國可得也 ❸但當有七百年之治也 今此國亡者 當在七百年之末也
대당의 대장군 영공이 고구려를 쳐 멸망시켰다. 고구려의 仲牟王이 처음 나라를 세울 때에 千歲 동안 다스리려고 하였다. 모부인은 “나라를 잘 다스리더라도 불가능하다. 7백 년이 적당하다.”라고 말하였다. 지금 나라를 잃은 것은 그로부터 7백 년 후의 일이었다.
15536#17083
SIBLINGS
CHILDREN
170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