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남안에 토성지가 있는데, 그 주변에 한나라 계통의 고분이 많이 출토되고 낙랑을 명시하는 새김도 발견되므로 이곳을 낙랑군의 치소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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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921 야쓰이 비망록
1916년 시작된 총독부 고적조사는 평양 석암동 9호분 귀틀무덤을 포함한 10기의 고분을 파는 대발굴 사업으로 막을 올렸다. 현재 국보 89호로 지정된 금제동물문 띠고리 장식과 현란한 무늬의 칠기류, 거울, 제사용 술을 바치는 용기인 동정, 장식철검 등 눈이 휘둥그레질 유물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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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921 야쓰이 비망록
세키노와 야쓰이 세이이치는 1909년 석암동 갑분에서 2세기께 한나라 계통의 벽돌무덤과 연호문경, 칠기류 같은 주목할 만한 유물들을 찾아내고도 평양은 고구려 도읍이란 선입관에 갇혀 고구려 무덤일 것이란 막연한 결론으로 유적의 성격을 미봉해버렸다. 도리이는 고구려 적석총 무덤과 평양의 한나라계 무덤이 구조상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그래서 석암동 고분이 평양의 고구려 무덤에 선행하는 낙랑시대 것이라는 견해를 일찌감치 끌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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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서울 호구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소장유물자료집8 ‘각정동직업별호구조서(各町洞職業別戶口調書)’에 따르면, 1934년 말 당시 서울시 인구 39만4525명 중 ‘내지인’이라 불린 일본인은 10만9682명(28%)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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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浪公
高句麗의 長壽王과 文咨明王이 樂浪公이라는 封爵을 받고 있으며, 新羅의 경우 眞興王이후 眞智王과 武烈王, 孝昭王을 제외하고는 聖德王까지의 7王이 樂浪郡公 혹은 樂浪郡王이라는 封爵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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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리 154호분
후한대의 벽돌널방이다. 전실과 후실이 있고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은 무늬가 있는 벽돌로 만들었다.
부식된 목관과 짙은 옷칠을 한 칠기 용기, 반구·괴수·이파리 모양의 금속장식구, 쇠뇌, 벼루, 낙랑계토기, 오수전 등 많은 부장품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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