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마음에 안드는 약소국의 지도자를 계속 암살해 왔고 박정희는 미국과 사이가 나빴으며 김재규는 미국과 자주 접촉했고 박정희를 살해할 당시에는 정승화와 함께 있었다.
박정희 살해 사건을 수사하던 전두환은 소장파 군인들을 규합하여 상관인 정승화를 체포하였다.
미국은 전두환에게 분노했으나 박정희 살해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던 처지라 개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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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2 왜, 백제 진사왕 교체
백제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침에 대항하여 왜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는데, 이로 말미암아 왜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백제 진사왕이 실정을 저지르자 왜는 사신을 보내어 이를 질책하였고 백제는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왜의 사신은 아신을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다.
▐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탱해 주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면 한국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대통령을 살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2695#2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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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미국, 콩고 지도자 암살
CIA는 오랜 시도 끝에 1961년에 콩고의 Patrice Lumumba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 CIA가 원하는 세력을 권력의 자리에 앉힐 수 없었고 혼란만 4년간 이어졌다.
▐ 박정희를 암살했지만 그의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 권력은 박정희를 암살한 세력의 뜻대로 옮겨가지 않고 오히려 미국이 싫어하는 박정희의 충직한 부하들에게 넘어갔다.
2695#28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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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미국, 남부 월남 쿠데타 지원
CIA가 남부 월남의 Ngo Dinh Diem 대통령에 반대하는 군부 세력의 쿠데타를 지원하여 정권을 교체하였다. Ngo Dinh Diem 대통령은 살해되었다.
▐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살해되었을 때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바로 이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을 풀어주는 것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에게 큰 과제가 되었다. 이 사건이 나고 나서 Peer de Silva는 CIA 월남지부장이 되었다.
2695#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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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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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2 김재규 관련 美 비밀전문
주한미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김재규 관련 전문 3건이 비밀해제검토를 받았으나 행정명령 또는 국무부 규정에 의거하여 모두 비공개처리되었다.
1건은 중앙정보부 차장이던 김재규를 1973년에 면담한 내용이고 1건은 1976년에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 되자 이를 분석한 내용이며 그 며칠 뒤 작성된 1건은 김재규를 면담한 내용이다.
미국과 갈등을 빚던 박정희 대통령을 김재규가 1979년에 살해했기 때문에 그것과 연결짓지 않을 수 없다.
2695#3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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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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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979 위키백과
미국은 늦어도 1976년부터 한국의 권력층과 사회저명인사들을 대상으로 박정희가 없는 한국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듣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이 '미국은 박정희의 통치를 더이상 원치 않는다' 라고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1979년 6월, 지미 카터의 방한 때 같이 왔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250명은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한국에 남아 있었다.
2695#39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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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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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카터의 미군철군 이유
(1) 미국 제7함대·미국 7 공군과 군수지원만 있으면 대한민국 국군은 단독방어가 가능하다. (2) 주변 4대 강대국 (중공, 일본, 소련, 미국)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것을 싫어하며, 미국7보병사단이 일부 철수해도 충분히 북한을 억제할 수 있다. (3) 대한민국 경제가 북한을 앞질렀다. (4) 철군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을 현대화시키면 된다. (5) 미국 7 공군은 가장 강력한 억지력이다.
2695#3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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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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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01 미중수교
한국과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무렵 대만과 미국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그에 따라 대만에는 미군기지가 건설되고 핵미사일도 배치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며 대만과 단교하였고 대만주둔 미군도 철수시켰다. 이때 미국은 한국에서도 미군을 철수시키려 했다.
▐ 주한미군의 철수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군의 철수는 한국과 대만 두 나라를 핵무장으로 몰았다. 그러나 핵무장을 시도하던 박정희와 장경국은 모두 급사했다.
2695#2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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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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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0.26 김계원 회고
차지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재규가 “썅~” 하면서 일어났다. “이 새끼, 버러지 같은 놈. 너 죽어 새끼야”라며 권총을 쏘았다. 차지철은 오른쪽 팔꿈치를 맞고 실내 화장실로 도망갔다. 김재규는 맞은편 박정희 쪽으로 몸을 돌려 “야, 너두 죽어봐”라며 욕설을 뱉고 권총을 쏘았다. 두 발이 발사된 뒤 권총은 작동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된 거사였다면 자기 권총에 탄환이 몇 발 들어있는지, 총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겠나?
2695#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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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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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0.26 위키백과
10.26 며칠 전 김재규는 로버트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을 면담했다. 또 10.26 당일 오후 2시에는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를 만났다. 그는 1심 최후변론에서 박정희를 살해한 이유로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다고 했다.
2695#39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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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50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광주□□
광장 중앙에 8t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사람이 몰려 웅성거렸다. 경남 번호판이 부착된 차량이었다. 폭도들이 운전사, 조수를 끌어내려 때리고 발로 차고 밟고 하여 두 사람이 현장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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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0.26❶ 10.26은 김재규가 미리 계획했나?
10.26은 김재규가 미리 계획했다고 보기에는 준비된 것이 너무 없었다.
그렇다고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사람이 홧김에 대통령을 죽였다고 하는 것도 어색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미리 계획한 흔적이 있지 않을까 찾게 된다.
2695#2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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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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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0.26❷ 10.26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나?
김재규를 수사한 전두환은 미국이 배후에 있었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미국이 박정희를 버렸다는 인상을 준 것이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서 마음에 안드는 지도자를 계속 암살해 왔고 박정희는 미국과 사이가 나빴으며 김재규가 미국과 자주 접촉해 온 사실도 드러났기 때문에, 배후에 미국이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695#2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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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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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2.12 백선엽의 6·25 징비록
1979년 12.12 사태 직후 당시 미 8군을 이끌고 있던 사령관 존 위컴은 아주 흥분한 표정으로 육두문자를 사용하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쿠데타 주역 2명을 거론하며 “□□□은 그냥 나쁜 X이고 가장 나쁜 X은 ○○○다”라고 말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할 군부대를 쿠데타를 위해 이동시킨 것을 미국적 관점에서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국가 내의 정변 수준을 뛰어넘어 국가의 명운을 담보로 군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2695#26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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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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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2.12❸ 미국은 왜 12.12를 막지 않았나?
신군부는 미대사에게 자신들이 행동에 나서게 되면 최소한 열흘 전에 미리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이 정승화로 하여금 자신들을 제압하도록 사주한 것으로 판단하자, 예고없이 12.12를 단행하였다.
1월 말에는 신군부의 반대 세력이 미대사를 찾아와 신군부에 반격을 가하겠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 왔으나 미국은 망설이다 거절하였다.
미국은 처음에 정승화가 신군부를 제압해 주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자 12.12를 용인하기로 한 듯하다.
2695#27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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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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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2.04 백악관 일일 보고
79년 12·12사건 이후 전두환에게 불만을 가진 일부 군부 세력이 80년 1월 말 나를 찾아와 역(逆)쿠데타를 모의하고 있으니 미국이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으나 이를 거절했다.
역쿠데타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전하려고 했을 때 워싱턴에서는 예상외로 단안을 주저했다. 이유 중 하나는 미국 주도에 의한 전두환 제거를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미대사와는 달리 미본국은 12.12를 탐탁치 않게 여긴 듯하다.
2695#4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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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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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22 백악관 정책검토 회의
▐ 전두환이 한국의 군부 실력자이긴 하나 한국은 미국에 방위를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이 전두환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전두환은 12.12를 일으킨 직후에도 미대사를 만나 미국이 정승화를 시켜 자신을 제거하려 했다며 경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박정희 암살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두환이 이를 알게 되었고 전두환에게 약점을 잡힌 미국은 그에게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2695#29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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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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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8.27❹ 전두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일까?
주한미대사, 주한미군사령관 그리고 미국방부장관은 전두환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았고 백악관과 CIA는 전두환에 부정적이었다.
처음 12.12때는 주한미대사의 의견에 따라 미국의 대응이 이루어졌고 5.18때는 미국방장관의 의견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7월에 들어와 백악관은 CIA로 하여금 전두환 축출 계획을 세우게 했다.
그러나 8월에 들어와 주한미군 고위 간부가 전두환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자 최규하 대통령은 사임하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다.
2695#27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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