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서기(720)에는 신공황후 원년(320년)에 신라왕 파사매금이 미질기지파진간기를 왜에 인질로 바쳤다고 되어 있다.
○ 삼국사기(1145)에는 실성왕 원년(402년)에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왜에 인질로 보냈다고 되어 있다.
○ 삼국유사(1281)에는 나물왕 36년(391년) 庚寅年(390년)에 왕의 셋째 아들 미해를 왜에 인질로 보냈다고 되어 있다.
● 광개토왕릉비에는 왜가 391년에 한국에 진출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
0080 三國史記(1145)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 즉위했다.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다. 혹은 유리의 동생인 나로의 아들이라 한다. 비(妃)는 김씨(金氏)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허루갈문왕의 딸이다. 처음에 탈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료들이 유리의 태자 일성을 추대하려 했다. 어떤 사람이
“일성은 적통의 자식이지만 위엄과 지혜가 파사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니, 드디어 그를 추대했다. 파사는 검약하며 씀씀이를 아끼고 백성들을 사랑하여 나라 사람들이 가상히 여겼다.
1301#7712
SIBLINGS
CHILDREN
COMMENT
7712
•
0350~0394 진(前秦)
감숙성 일대에 거주하던 저족은 오호십육국시대 초기에는 포홍을 지도자로 하여 전조(前趙) 및 후조(後趙)의 용병으로 각지를 전전하였다. 특히 후조에 의해 하북성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포홍의 아들 부건이 장안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351년에 전진을 건국하였다.
370년에 전진은 전연을 멸망시키고 화북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었다. 그러나 383년에 동진 침공이 실패하자 384년에 후연이 건국되고 전진은 쇠약해졌다.
1301#16521
SIBLINGS
CHILDREN
16521
•
0350~0450 월성
❹유물 조사와 약 40점의 시료를 대상으로 한 가속질량분석기 분석을 통해 4세기 중엽에 공사를 시작해 5세기 초반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파사매금이 등장하는 일본서기의 320년 기록과 파사이사금 때 월성을 쌓았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기록 그리고 4세기 중엽에 축조된 것으로 판정된 월성의 고고학적 분석을 연결할 수 있다. 그러자면 80년에 즉위해서 112년에 죽었다고 하는 삼국사기의 파사이사금 연대를 조정해야 한다.
1301#16295
SIBLINGS
CHILDREN
16295
•
0390 삼국유사(1281)
나밀왕(那密王) 36년 경인에 왜왕이 사신을 보내 와서 이르기를 “우리 임금이 대왕께서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신 등을 시켜 백제가 지은 죄를 대왕에게 아뢰게 하는 것이오니,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왕자 한 분을 보내어 우리 임금에게 성심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라 하였다. 이에 왕은 셋째 아들 미해(美海, 未吐喜라고도 한다)를 왜국에 보냈는데 이때 미해의 나이가 열 살이었다. 말과 행동이 아직 익숙지 않았으므로 내신 박사람을 부사로 삼아 왜국에 보냈다.
1301#25907
SIBLINGS
CHILDREN
COMMENT
25907
•
0418 모말(毛末)
○ 일본서기(720)에는 신공황후 5년(325년)에 신라가 모마리질지를 보내어 미질허지벌한을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삼국사기(1145)에는 눌지왕 2년(418년)에 모말이 왜로 가 미사흔을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삼국유사(1281)에는 눌지왕 10년(426년) 乙丑年(425년)에 제상이 왜로 가 미해를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1301#7984
SIBLINGS
CHILDREN
COMMENT
7984
...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