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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해방 직후 영천군 대창면에 인민위원회, 농민조합, 치안대(치안유지대) 등의 활동이 활발했고 자양면도 사정이 비슷했다. 당시 영천군 단위의 주요인물로는 임장춘, 임재식 형제가 있었고 영천 북부지역의 주요인물로는 황보집이, 남부지역의 주요인물로는 조규선, 조규용, 조규인 형제와 한석헌 등이 있었다. 자양면 치안유지대의 경우 20대 초반의 청년 20여 명이 구성하였고 그들의 활동은 면 단위로 지원을 받았다.
9231#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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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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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0.03
미군의 G-2(정보기관) 주간요약 보고서에 따르면 영천군에서는 3일 아침 2000여 명의 시위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하고 경찰서장과 경찰관 15명을 살해했다. 이밖에도 경찰관 46명이 실종됐는데, 이 중 적어도 40명은 시위군중이 납치했다. 시위군중도 15명이 사살되고 부상자가 다수 발생하는 등 피해가 커져갔다.
시위군중은 대구에서 지원경찰 100명이 내려오기까지 만 이틀 동안 영천 일원을 지배했다.
9231#9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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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0.03+ 1
대창면에서는 한석헌을 대장으로 하는 치안대가 대창지서를 점령하였다. 자양면도 사정이 비슷하였다. 영천 북부지역의 경우 영천 북부지역의 중심지인 화북면 자천리 자천장터에 영천읍의 상인들이 트럭을 타고 들어와 선동하였으며, 이에 그 지역 농민들이 합세하여 ‘몽둥이패’가 되어 마을 단위로 돌아다니며 우익인사, 지주, 친일파 집에 불을 지르거나 가옥 파괴를 하였다.
9231#9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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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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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0.05+
외지에서 온 경찰에 의해 진압된 이후 군경과 빨치산의 대치상태가 지속되었다. 빨치산들은 봉홧불 올리기, 삐라 뿌리기, 길 끊기, 열차 탈취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경북도당유격대와의 연계가 활발했다. 구술자 최일달은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봉홧불 올리기 등에 동원되었다. 반면 구술자 이종만은 군경작전 시 현지 청년단원으로서 자주 동원되었다.
9231#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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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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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군경의 진압과정에 민간인이 다수 살해되었으며, 이 지역에 들어온 서북청년단원이 민간인을 사살하거나 주민들을 집단폭행하는 사건도 자주 있었다. 이에 상당수의 청년들이 입산하여 빨치산유격대를 형성하여 군경과 빨치산의 내전에 버금가는 대치상태가 한국전쟁기까지 계속되었고 이에 따라 주민들의 피해도 막심하였다. 한국전쟁 전까지 영천지역에서 군경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은 600여 명, 한국전쟁 기간에 국민보도연맹사건 등으로 학살된 민간인도 600여 명으로 추산된다.
9231#9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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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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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면 -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고경면 논실동, 덕정동, 파계동은 산간 부락으로 대구10월사건이 일어난 뒤 군경이 토벌을 위해 마을에 자주 들어왔다. 논실동의 참고인 김호연(1932), 최남주(1930)와 덕정동의 참고인 최채규(1934)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이 마을들에서는 청년들이 군경의 진압을 피해 입산하거나 도시로 이주하자 토벌부대가 수시로 와서 주민들을 구타하거나 마을 앞 못물에 넣는 등 고문을 했다. 그러던 중 덕정동 주민 박방우(1928)가 대구10월사건 관련자라는 이 ...
9231#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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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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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면 동도리
1947년 가을 전라도경찰 30~40명이 마을에 들어와 집집마다 뒤진 뒤 남자들을 도로 앞에 끌어내어 꿇어앉혀놓고 몽둥이로 팼다. 그리고 최진격과 김수암, 박민옥, 이민우 등 5~6명을 지서로 연행했다. 그 사람들은 주로 지역유지들이었는데 경찰이 입수한 원명부(남로당에서 가입 대상자를 지목하여 적은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이유였다. 3일 후에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와 대구뜰 골짜기로 가보니 5~6명을 둘씩 끈으로 연결하여 묶어놓고 총살했더라.
9231#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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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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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면 파계리, 덕정리, 논실리
저수지 인근이 파계리고 골의 남쪽 끝이 덕정리며 동쪽으로 갈라진 골이 논실리다.
1947년 덕정리 박방우가 경찰에게 연행된 뒤 마을 인근에서 사살되었다. 1948년 5월 논실리 김정출과 박위준이 벼락부대(서북청년단) 여러 명에게 끌려가 당산나무 밑에서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 사살되었다. 1948년 여름에는 덕정리 이상두가 벼락부대에게 강제연행된 뒤 살해되었다.
9231#9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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