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057 新羅 六村 > 閼川 楊山村 → 梁部 → 中興部

蘿井은 楊山의 산기슭에 있었으므로 楊山은 남산이다. 閼川에 관한 기록은 형산강에 어울리므로 閼川 楊山村은 형산강을 건너는 나루 인근의 남산 기슭일 것이다. 이곳은 외부의 문물이 서라벌로 들어오는 관문이므로 신라의 시조가 이곳에서 났다는 이야기와도 어울린다. 한편, 蘿井은 楊山의 기슭에 있었지만 이 楊山은 月城에서 보았을 때 남쪽에 있기 때문에 훗날 南山이라 불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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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7 三國史記(1145)
앞서 조선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閼川 楊山村, 둘째는 突山 高墟村, 셋째는 觜山 珍支村(干珍村), 넷째는 茂山 大樹村, 다섯째는 金山 加利村, 여섯째는 明活山 高耶村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진한 육부가 되었다.
8605#26774 SIBLINGS CHILDREN 26774
 
-0057 三國史記(1145)
髙墟村의 우두머리인 소벌공이 楊山의 기슭을 바라보니 蘿井 옆 숲속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가서 살펴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단지 큰 알이 있었다. 알을 깨뜨리니 어린아이가 나왔다. 6부의 사람들이 그 탄생이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 이르러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 이곳이 楊山 기슭이라면 楊山은 남산이다.
8605#26784 SIBLINGS CHILDREN 26784
 
-0057 三國史記(1145)※
발굴 결과 義鳳四年이 새겨진 기와와 함께 팔각형 모양의 건물터가 나왔고 그 아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원형 유구가 묻혀 있었다.
8605#29360 SIBLINGS CHILDREN 29360
 
-0053 三國史記(1145)
봄 정월에 용이 閼英井에 나타났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는데, 노구가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거두어 길렀다.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성장하면서 덕행과 용모가 빼어나니 시조가 그 소식을 듣고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행실이 어질고 내조를 잘하여 이때 사람들이 그들을 두 성인이라고 일컬었다.
8605#26737 SIBLINGS CHILDREN 26737
 
-0053 三國遺事(1281) ✗
沙梁里 閼英井(娥利英井이라고도 한다)에서 계룡이 나타나서 왼쪽 옆구리로부터 동녀(혹은 용이 나타나 죽으매 그 배를 가르고 얻었다고도 한다)를 낳으니 자색이 뛰어나게 고왔다. 그러나 입술이 닭의 부리 같은지라 月城 北川에 가서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퉁겨져 떨어졌으므로 그 천의 이름도 따라서 撥川이라 하였다. 궁실을 南山 西麓(지금의 昌林寺이다)에 짓고는 두 명의 신성한 아이를 모셔 길렀다.
8605#26769 SIBLINGS CHILDREN 26769
 
0014 三國史記(1145)
왜인이 병선 1백여 척을 보내 바닷가의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6부의 날랜 병사를 발동하여 이들을 막게 하였다. 낙랑이 내부가 비었을 것이라고 하고 금성을 공격해 오기를 매우 급하게 하였다. 밤에 유성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니 그 무리들이 두려워하여 물러나 閼川의 주위에 주둔하며 돌무지 20개를 만들어 놓고서 떠나갔다. 6부의 병사 1천명이 그들을 추격하여 吐含山의 동쪽으로부터 閼川에 이르렀는데 돌무지를 보고 적들의 숫자가 많음을 알고서 추격을 그만두었다.
8605#29294 SIBLINGS CHILDREN 29294
 
0032 三國史記(1145)
6부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를 사여하였다. 楊山部는 梁部라고 하고 성은 李로 하였으며, 高墟部는 沙梁部라고 하고 성은 崔로 하였다. 大樹部는 漸梁部(牟梁部라고도 한다)라고 하고 성은 孫으로 하였으며, 干珍部는 本彼部라고 하고 성은 鄭으로 하였다. 加利部는 漢祇部라고 하고 성은 裵로 하였으며, 明活部는 習比部라고 하고 성을 薛로 하였다.
8605#26791 SIBLINGS CHILDREN 26791
 
0032 三國遺事(1281) ✗
六部祖各率子弟俱㑹於閼川岸上議 6부의 조상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 언덕 위에 모여 의논하였다.
8605#29316 SIBLINGS CHILDREN 29316
 
0057 三國史記(1145)
望楊山下瓠公宅 以爲吉地 設詭計 以取而居之 其地後爲月城 양산 아래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는 길지라고 여겨 속임수를 써서 취하여 거기에 살았는데, 그 땅이 뒤에 월성이 되었다.
8605#29359 SIBLINGS CHILDREN 29359
 
0060 三國遺事(1281) ✗
호공이 밤에 月城 西里를 가는데 始林의 가운데 크고 밝은 빛이 있으며 자색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쳐 내려온 것을 보았다. 구름 속에 황금 상자가 있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빛은 상자로부터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탈해왕에게 아뢰자 왕이 친히 숲에 나가서 그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다. 이것은 혁거세의 고사와 같으므로 그 아이 이름을 閼智라 하였다. 알지는 우리 말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閼智即郷言小兒之稱也
8605#26776 SIBLINGS CHILDREN 26776
 
0065 三國史記(1145)
밤에 왕이 金城 서쪽의 始林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자태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閼智라 했다. 聦明多智略 乃名閼智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8605#26775 SIBLINGS CHILDREN 26775
 
0094~0834 三國史記(1145) 閱
0094 閼川┆0138 閼川西┆0200 閼川┆0220 楊山西┆0281 楊山西┆0415 穴城┆0486 狼山之南┆0674 西兄山下┆0674 靈廟寺前路┆0782 始林之原┆0804 閼川之上┆0834 西兄山下 ▐ 형산강은 서쪽의 西兄山과 동쪽의 楊山 사이를 지난다. 따라서 閼川을 형산강으로 설정하면 열병의 장소가 대체로 이 일대로 일관된다. 이곳은 신라가 백제나 고구려로부터 침공을 받거나 그들 나라를 침공하러 가는 방향이기 때문에 열병 장소로 가장 적절하다.
8605#29396 SIBLINGS CHILDREN 29396
 
0160~0785 三國史記(1145) 溢·漲
0160 閼川水溢┆0496 閼川水漲┆0785 閼川水漲 ▐ 삼국사기에는 閼川의 범람 기록만 나와 있다. 경주를 흐르는 가장 큰 물길은 兄山江이므로 閼川은 兄山江으로 보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최근에는 잦은 兄山江 범람을 막기 위해 하천 정비 계획이 세워지기도 했다.
8605#29309 SIBLINGS CHILDREN OPEN
 
0379 三國史記(1145)
楊山에서 작은 참새가 큰 새를 낳았다.
8605#29427 SIBLINGS CHILDREN 29427
 
0487 三國史記(1145)
置神宫於奈乙 奈乙始祖初生之處也 신궁을 나을에 세웠다. 나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8605#26957 SIBLINGS CHILDREN 26957
 
0516 三國史記(1145)
용이 楊山의 우물 속에서 나타났다.
8605#29431 SIBLINGS CHILDREN 29431
 
0562 三國史記(1145)
군대가 돌아오자 왕은 공적을 책정하여 가라 사람 300명을 주었다. 이를 받아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해방시켜 주었다. 또 밭을 하사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 왕이 억지로 권하자 閼川 주변의 불모지를 달라고 청할 뿐이었다.
8605#29304 SIBLINGS CHILDREN 29304
 
0587~0935- 三國史記(1145) 南山
▐ 蘿井은 楊山의 기슭에 있었지만 이 楊山은 月城에서 보았을 때 남쪽에 있기 때문에 훗날 南山이라 불린 듯하다.
8605#26861 SIBLINGS CHILDREN OPEN
 
0764 三國史記(1145)
용이 楊山 아래에 나타났다가 갑자기 날아가 버렸다.
8605#29430 SIBLINGS CHILDREN 29430
 
0940 高麗史(1451)
935년에 경순왕 김부가 항복해 오자 나라를 없애고 경주가 되었다. 940년에 승격시켜 대도독부가 되었고, 주의 6부 이름을 고쳐 梁部를 中興部로, 沙梁을 南山部로, 本彼를 通仙部로, 習比를 臨川部로, 漢祗를 加德部로, 牟梁을 長福部라 하였다.
8605#29527 SIBLINGS CHILDREN 29527
 
1281 三國遺事 - 北川
▐ 삼국사기(1145)는 선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신하들이 회의를 해서 조카를 옹립하려 했으나 閼川이 범람하는 바람에 京北에 사는 그가 건너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閼川이 월성의 북쪽을 동서로 흐르는 北川처럼 들리게 한다. 그런 착각은 삼국유사(1281)에서 나타나서 동국여지승람(1481)을 거쳐 알천제방수개기(1707)로 이어졌다. 그러나 兄山江처럼 북동으로 흐르면 그 동편에 있는 월성에서 북쪽으로 20리 되는 곳이 강의 서편이 될 수 있다.
8605#29313 SIBLINGS CHILDREN OPEN
 
閼川의 어원
▐ 阿利那禮河는 熊津江이 熊+津+江으로 분해되는 것처럼 阿利+那禮+河로 분해될 수 있다. ① 阿利는 娥利英井이 閼英井으로도 표기된 것처럼 閼로 표기될 수 있다. →閼那禮河 ② 那禮는 久麻那利의 那利처럼 나루를 음차한 것으로, 熊津江을 熊川으로도 표기한 것처럼 생략될 수 있다. →閼川 ③ 阿利는 지명 阿利那禮河와 인명 阿利斯等으로 나타나고 閼은 지명 閼川과 인명 閼智로 나타난다. 이러한 阿利·閼의 뜻으로는 알(egg)이 있을 수 있다.
8605#29395 SIBLINGS CHILDREN OPEN
 
역사스페셜 - 新羅건국
8605#16667 SIBLINGS CHILDREN 1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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