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ian > 광주사태 > 쟁점 > 암매장설/소각설/해양투기설
 
 1980-05-31 계엄사 발표
이번 사태에서 발생된 인명피해는 민간인 144명 군인 22명 경찰 4명의 사망과 민간인 127명 군인 109명 경찰 144명이 부상된 것으로 밝혀졌다. ... 그리고 폭도들간의 강온파간 의사충돌에 따른 상호총격과 평소원한에 의한 살인자행 등에 의해 29명이 사망한 것으로 수사과정에서 일단 밝혀졌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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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5.18광주사태 - 아널드 A 피터슨
광주사태 당시 저자의 체험과 각종 정보를 종합하여 일기체로 서술. 신군부의 언론통제와 역사왜곡을 비판했다. 특히 계엄군이 헬기에서 총을 발사했으며 사망자수가 8백 32명이라고 주장했다. 정동섭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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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07-19 검찰 수사결과 발표
현재까지 정부의 관련자료에 의하여 확인된 광주시위관련 사망자는 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백 66명이고 광주시위관련 행방불명자로 인정되어 보상금이 지급된 사람은 47명이다. 현재로서는 당시의 실제 사망자수를 다시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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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 김씨조선, 5000명 죽었다.
5천여 명이 죽고 1만 4천여 명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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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6-17 서영교, 2000명 죽었다.
"나는 86년 이화여대 총학회장을 했고, 그 시절 총학생회는 전두환 씨가 광주에서 2000명을 죽이고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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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06 광주 교도소
3공수여단이 주둔했고 교도소 안팎의 3곳이 암매장 장소로 지목받았던 옛 광주교도소를 문화재 발굴의 수준으로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광주시는 2002년, 2006년, 2009년 3차례 효령동 야산, 황룡강 제방 등 암매장 추정지 9곳을 발굴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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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14 화순 너릿재
"5·18 직후 대낮에 군인들이 굴착기 등 중장비를 사용해 마대 자루를 묻고 있었으며 자루 밖으로 나와 있는 시신의 머리를 봤다"는 제보가 있었던 너릿재 일원에 땅속탐사레이더(GPR)를 투입해 해당 구역에서 사람 머리뼈인 두개골과 비슷한 형태의 전자파 반응을 감지했다. 암매장 의혹을 받고 있는 7공수는 전라북도에 소재한 부대로 지역 출신 부대원의 비율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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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암매장 발굴 모두 실패
광주사태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은 현재까지 76명에 이르지만 1997년부터 2018년까지 광주지역에서 진행된 11번의 암매장 발굴에서는 단 한 구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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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7 7공수 무등산 주둔
광주사태가 진압된 뒤 다른 공수부대는 바로 복귀했지만 7공수만 10여일간 무등산에 주둔하였는데, 그것이 시신을 암매장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7공수는 전라북도에 소재한 부대로 지역 출신 부대원의 비율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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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5 시신소각설
 2019-03-15 자칭 미군정보원 김용장    2019-03-15 일반인들의 반응    2019-03-15 일반인들의 반응  
 
 2019-04-08 김해로 사체수송
1981년 6월 육군본부가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에는 5월25일 김해-광주 수송기 기록 옆에 ‘시체’라고 적혀 있다. 8개월 뒤인 1982년 2월 육군본부가 편찬한 ‘계엄사’에 실린 5월25일 수송기 기록에는 김해-광주 운항 기록이 삭제됐다. 공군이 1980년 5월21일부터 29일까지 작성한 ‘5·18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자료’에는 5월25일만 운송 화물 목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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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5 시신 해양 투기
“간첩 침투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전남도경의 지문채취 전문 경찰과 함께 가매장된 시신을 전부 발굴했다” “광주 통합병원에서 시설을 개조해 화장 처리했고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해 다 처리를 못하고 유골상태로 광주 모처에 매장했다” “나머지 시신은 시취가 흐르지 않게 비닐에 싸서 항공기로 모처에 이송해 해양 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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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6 카빈소총 사망자가 늘어난 이유
검찰·경찰·의사 등 49명이 참여했던 사체검시관들이 1차로 작성한 소견을 바탕으로 각계 인사 11명으로 구성된 사체검안위원회에서 사체검안서를 작성했다. 이 검안감정서를 바탕으로 보안사령부 505보안대에서 폭도/비폭도 분류 작업을 했다. M16소총 희생자는 폭도로 분류되고 카빈소총 희생자는 비폭도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M16소총 희생자를 카빈소총 희생자로 분류하기 위해 검시관들이 노력했다. 폭도로 분류되면 장례비 등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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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장환/김용장 주장의 변천 과정
(1) 2000년대 초반부터 인민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폭동을 유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2019년 5월 허장환은 계엄군이 간첩을 찾기위해 시신의 지문을 모두 채취했다고 주장한다. 인민군의 지문인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모두 내국인의 지문으로 확인되었으니까, 인민군 개입설의 근거로 내놓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2) 1997년부터 2018년까지 암매장 의혹이 제기된 11개 지역을 파 보았지만 암매장된 시신은 1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20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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