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4. 임나사 > 위치 비정 > 0391 고해진 침미다례
 
 0289 삼국지(晉·陳壽)
마한은 구해국(狗奚國) 등 모두 5십여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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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1 왜의 7국 4읍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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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1-03(<249) 일본서기(720)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벌‧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의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古奚津)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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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1-03(<249) 일본서기(720)
7국이면 낙동강 유역의 소국을 대부분 포함한다고 보여지므로 고해진은 낙동강 유역의 서쪽 즉, 전라남도의 해안가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남쪽은 제주도다. 오랑캐라는 말이 다른 지역과 이질적인 문화권이었다는 인상을 주므로 더욱 제주도로 심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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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7-03(<277) 일본서기(720)
백제인이 내조하였다, [백제기에는, “아화왕이 왕위에 있으면서 귀국에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침미다례(枕彌多禮) 및 현남·지침·곡나·동한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직지를 천조에 보내어 선왕의 우호를 닦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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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6-04 삼국사기(1145)
탐라(躭羅)국에서 토산물을 바쳐오자 왕이 기뻐하여 그 사신을 은솔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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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98-08 삼국사기(1145)
왕이 탐라(耽羅)에서 공납과 조세를 바치지 않는다 하여 그를 직접 치려고 무진주에 이르니 탐라(탐라는 곧 躭牟羅이다)에서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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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8-12 일본서기(720)
남해의 탐라인(耽羅人)이 처음으로 백제국과 통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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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6-539 양직공도(梁職貢圖)
백제 주변에는 소국이 있는데 반파·탁·다라·전라·사라·지미·마련·상기문·하침라(下枕羅) 등이 백제에 부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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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89 북사(659)
진(陳)을 평정한 해에 전선이 표류하여 해동의 탐모라국(耽牟羅國)에 닿았다. 그 전선이 돌아 가면서 백제를 통과하게 되자 창(昌, 위덕왕)은 필수품을 매우 후하게 주어 보내고 아울러 사신도 보내어 표(表)를 올려 진(陳)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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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89 수서(636)
진(陳)을 평정한 해에 어떤 전선 한척이 표류하여 바다 동쪽의 모라국(牟羅國)에 닿았다. 그 배가 돌아올 적에 백제를 경유하니 창(昌, 위덕왕)이 필수품을 매우 후하게 주어 보냈다. 아울러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진(陳)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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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89 수서(636)
忱彌多禮(침미다례)는 일본서기에 枕彌多禮(침미다례)라고도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양직공도의 下枕羅(하침라)와 연결될 수 있다. 나아가 삼국사기에서 제주도를 가리키는 말인 耽羅(탐라) 및 躭牟羅(탐모라)와도 연결된다. 요약하면, 침미다례(忱彌多禮, 枕彌多禮) = 침라(枕羅) = 탐라(耽羅) = 탐모라(躭牟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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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제주 뱃길
강진은 제주로 건너가는 뱃길이 시작되는 곳이라 탐진이라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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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강진은 예로부터 제주로 건너가는 포구여서 한때 탐진(耽津)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고해진을 강진으로 설정해 본다. 왜(倭)와 백제의 연합군이 고해진에 이르렀을 때 침미다례가 항복해 온 것은 498년에 백제 동성왕이 무진주에 이르렀을 때 탐라가 항복해 온 것과 유사하다. 탐라는 육지의 상황을 관찰하다 침공의 정보가 있으면 미리 항복하여 침공을 예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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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왜(倭)는 397년에 백제에 줬던 침미다례를 다시 빼앗는데 476년에는 탐라가 백제에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 두 시기 사이의 어느 때인가에 백제가 다시 돌려 받았을 것이다. 475년 한강유역을 상실한 백제에게 왜(倭)는 구마나리를 주어 재건을 도운 적이 있는데, 그 시기에 같은 맥락에서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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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지도 - 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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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라국에 시집간 벽랑국 세 공주
제주도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벽랑국은 강진만 입구에 있는 벽랑도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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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내동리
분구의 주변에 약하게나마 주구의 흔적이 확인되는데 너비 3m 정도이다. 왜색이 짙은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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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방산리
길이가 76m이고 높이가 10m에 달하는 굴식돌방무덤이다. 돌방의 내부는 붉은 칠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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