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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1
靺鞨 在高麗之北 邑落俱有酋長 不相總一 凡有七種 其一號粟末部 與高麗相接 勝兵數千 多驍武 每寇高麗中 其二曰伯咄部 在粟末之北 勝兵七千 其三曰安車骨部 在伯咄東北 其四曰拂涅部 在伯咄東 其五曰號室部 在拂涅東 其六曰黑水部 在安車骨西北 其七曰白山部 在粟末東南 勝兵並不過三千 而黑水部尤為勁健 自拂涅以東 矢皆石鏃 即古之肅慎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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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1
靺鞨은 高麗의 북쪽에 있다. 읍락마다 추장이 따로 있어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모두 7 종이 있다. 그 첫째는 粟末部로서 高麗와 인접하여 있는데, 정병이 수천명으로 용감한 병사가 많아, 늘 高麗를 침입하였다. 둘째는 伯咄部로서 粟末의 북쪽에 있으며, 정병이 7천이다. 세째는 安車骨部로서 伯咄의 동북쪽에 있다. 네째는 拂涅部로서 伯咄의 동쪽에 있다. 다섯째는 號室部로서 拂涅의 동쪽에 있다. 여섯째는 黑水部로서 安車骨의 서북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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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1
일곱째는 白山部로서 粟末의 동남쪽에 있다. 정병이 모두 3천에 불과한데, 黑水部가 가장 굳세고 건장하였다. 拂涅에서부터 동쪽지방은 화살이 다 돌촉인데, 곧 옛날 肅愼氏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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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2
所居多依山水 渠帥曰大莫弗瞞咄 東夷中為強國 有徒太山者 俗甚敬畏 上有熊羆豹狼 皆不害人 人亦不敢殺 地卑濕 築土如堤 鑿穴以居 開口向上 以梯出入 相與偶耕 土多粟麥穄 水氣鹹 生鹽於木皮之上 其畜多豬 嚼米為酒 飲之亦醉 婦人服布 男子衣豬狗皮 俗以溺洗手面 於諸夷最為不潔 其俗淫而妒 其妻外婬 人有告其夫者 夫輒殺妻 殺而後悔 必殺告者 由是姦婬之事終不發揚 人皆射獵為業 角弓長三尺 箭長尺有二寸 常以七八月造毒藥 傅矢以射禽獸 中者立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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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2
주거는 대개 산수에 의지하며, 우두머리를 大莫弗瞞咄이라 하는데, 東夷 가운데에서는 강국이다. 徒太山이라는 산이 있어 풍속에 매우 숭상하고 두려워한다. 산 위에는 熊·羆·豹·狠이 있으나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도 이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지대가 낮고 습하여 흙을 둑과 같이 쌓고 구덩이를 파서 거처하는데, 출입구를 위로 향하게 내어 사다리를 놓고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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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2
두사람이 짝을 지어 밭을 간다. 곡식으로는 조·보리·검은 기장이 많이 난다. 물 맛은 소금기가 배어 있으며, 나무 껍질 위에도 소금이 엉긴다. 가축으로는 돼지가 많다. 쌀을 씹어 술을 만드는데, 마시기만 하면 취한다. 부인은 베옷을 입고 남자는 돼지가죽으로 옷을 해 입는다. 오줌으로 세수를 하는데, 모든 오랑캐 가운데서도 가장 불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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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2
풍속이 음탕하고 투기가 많다. 남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간통한 것을 어떤 사람이 그 남펀에게 알려 주면 남편은 즉시 아내를 죽이는데, 죽이고는 후회를 하여 반드시 알려 준 자를 죽이곤 한다. 이로 말미암아 간음에 대한 일은 끝내 폭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사냥으로 업을 삼는데 각궁은 길이가 3척이고 그 화살은 1척 2촌이다. 해마다 7∼8월에 독약을 만들어 화살에 발라 새나 짐승을 쏘는데, 맞는대로 그 자리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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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3
開皇初 相率遣使貢獻 高祖詔其使曰 朕聞彼土人庶多能勇捷 今來相見 實副朕懷 朕視爾等如子 爾等宜敬朕如父 對曰 臣等僻處一方 道路悠遠 聞內國有聖人 故來朝拜 旣蒙勞賜 親奉聖顏 下情不勝歡喜 願得長為奴僕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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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3
581~600년 초에 서로 어울려서 사자를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고조가 그 사자에게 조서하여, “짐은 그곳의 사람들이 대체로 용감하고 민첩하다고 들었는데, 이제 만나 보니 실로 짐의 마음에 든다. 짐은 너희들을 아들과 같이 여기고 있으니, 너희들도 짐을 아버지처럼 공경하라.” 고 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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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3
“신들은 한 구석에 외지게 살고 있어서 길은 멀고 멀지만, 중국에 성인이 계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와서 조배를 하는 것입니다. 위로를 받고 친히 성안을 뵈오니 하청의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길이 노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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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4
其國西北與契丹相接 每相劫掠 後因其使來 高祖誡之曰 我憐念契丹與爾無異 宜各守土境 豈不安樂 何為輒相攻擊 甚乖我意 使者謝罪 高祖因厚勞之 令宴飲於前 使者與其徒皆起舞 其曲折多戰鬪之容 上顧謂侍臣曰 天地間乃有此物 常作用兵意 何其甚也 然其國與隋懸隔 唯粟末白山為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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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4
그들의 나라가 서북쪽으로 거란과 서로 닿아 있어서 늘 서로 침략하였다. 뒤에 그 사신이 왔을 적에 고조가 “내가 거란을 생각해 주는 것은 너희들과 다를 것이 없다. 의당 저마다의 국경이나 지키고 있다면 어찌 안락하지 않겠는가. 무엇 때문에 수시로 서로 공격을 하여 나의 뜻을 이다지도 저버리는가,” 라고 타이르니 사자가 사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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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4
고조가 따뜻하게 위로하여 주고 어전에서 연회를 베풀어 술을 마시게 하였더니, 사자가 그의 무리들과 함께 일어나 춤을 추는데, 몸놀림이 대개 전투를 하는 자세였다. 고조는 시신을 돌아 보며, “천지 사이에 이런 물건들이 있어 항상 전쟁할 뜻을 가지고 있음이 어찌 이리 심한가.” 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隋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粟末과 白山만이 가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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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5
煬帝初與高麗戰 頻敗其衆 渠帥度地稽率其部來降 拜為右光祿大夫 居之柳城 與邊人來往 悅中國風俗 請被冠帶 帝嘉之 賜以錦綺而襃寵之 及遼東之役 度地稽率其徒以從 每有戰功 賞賜優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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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5
양제 초에 高麗와의 싸움에서 자주 그들을 물리치니, 그들의 우두머리 度地稽가 그 부의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해 왔다. 右光祿大夫를 除授하고, 柳城에 거주시켜 변방 사람과 내왕을 하게 하였다. 중국의 풍속을 좋아하여 관대를 청하니 양제는 이를 가상히 여겨 錦綺를 내려주고 寵愛하였다. 遼東征伐 때에도 度地稽가 그 무리들을 이끌고 종군하였는데, 전공을 세울 때마다 상을 매우 후하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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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書(636) 06
十三年 從帝幸江都 尋放歸柳城 在塗遇李密之亂 密遣兵邀之 前後十餘戰 僅而得免 至高陽 復沒於王須拔 未幾 遁歸羅藝 617년에 양제를 따라 江都에 갔다. 얼마 후 柳城으로 돌아가는데 중도에서 이밀의 난을 만나 밀이 군사를 보내어 요격하므로 앞뒤 십여 차례의 싸움을 치르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高陽에 이르러서 다시 왕수발에게 함락당하였다. 얼마 안되어 羅藝로 도망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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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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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史(659)
勿吉國在高句麗北一曰靺鞨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는데 말갈이라고도 한다. 粟末部與高麗接 속말부는 고려와 접해 있다. 伯咄部在粟末北 백돌부는 속말의 북쪽에 있다. 安車骨部在伯咄東北 안차골부는 백돌의 동북쪽에 있다. 拂涅部在伯咄東 불열부는 백돌의 동쪽에 있다. 號室部在拂涅東 호실부는 불열의 동쪽에 있다. 黑水部在安車骨西北 흑수부는 안차골의 서북쪽에 있다. 白山部在粟末東南 백산부는 속말의 동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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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史(1344)
隋나라 때에는 靺鞨이라 불렀는데 7부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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