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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卷第一
魏書云。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亦云白岳。在白州地。或云在開城東。今白岳宮是)開國號朝鮮。위서에서 이르길, 단군왕검이 있어 이천 명을 데리고 아사달에 도읍하고 (백주 땅에 있는 무엽산 또는 백악이라고 하고 혹자는 현재 개성 동쪽에 있는 백악궁이라고 하기도 한다) 개국하니 그 이름이 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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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동명성왕(0년 BC 35)
금와는 이상하게 여겨서 방 안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에 비취어 [유화는] 몸을 당겨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좇아와 비쳤다. 그래서 임신을 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왕[금와]은 알을 버려 개,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후에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은 [알을] 쪼개려고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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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동천왕(21년 AD 247)
봄 2월에 왕은 환도성이 난을 겪어서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와 사직을 [그곳으로] 옮겼다.<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이 살던 곳이다. 다른 기록에는 『[그가]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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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온조왕(0년 BC 18)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孺留]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가 살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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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탈해 이사금(0년 AD 57)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 리 되는 곳에 있다. 앞서 그 나라 왕이 여국왕(女國王)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그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맡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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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탈해 이사금(9년 AD 65)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의 시림(始林)의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 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기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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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혁거세 거서간(0년 BC 57)
고허촌의 우두머리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蘿井) 옆의 숲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었으므로 가서 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만 있었다. 그것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왔으므로 거두어서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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