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676 ⏍ 新羅民族論 > (2) 多種族 상태 > 온돌은 민족 고유의 문화가 아니다.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東北亞 古代史 槪念圖
東夷와 漢四郡. 이 시기에 형성된 부족 또는 한군현의 단위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2253#6154 SIBLINGS CHILDREN COMMENT 6154
 
-1000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온돌
미국 알래스카주 알류산열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온돌이 발굴됐다. 미국 고고학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고고학’ 2007년 5~6월호는 알래스카주 어날래스카시 아막낙섬에서 다리 건설을 위한 발굴을 하던 중 온돌을 갖춘 집터가 나왔다고 보고했다. 이번에 발굴을 맡았던 릭 크넥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대 교수는 “지난 2003년 발굴했다”고 밝히고, “발굴된 유물을 방사성탄소연대법으로 측정한 결과 3000년 전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2253#24963 SIBLINGS CHILDREN COMMENT 24963
 
Military Dictionary
Aircrafts, tanks, missiles, ...
 
-1000 ± Amaknak Island
Aleutian Islands
2253#6119 SIBLINGS CHILDREN COMMENT 6119
 
-0300 ± Krounovka 옥저 온돌
주거지 1기에서 발해 온돌과 옥저 온돌을 차례로 발굴했다.
2253#2250 SIBLINGS CHILDREN COMMENT 2250
 
-0300 ± Krounovka 옥저 온돌
3세기에서 7세기까지는 이곳에 말갈인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온돌 문화는 3세기에 왜 사라진 것일까? 삼국지에 나오는 위나라의 침공과 연결시킬 수 있다. 그런데 삼국지에는 위나라가 옥저를 지나 숙신의 왕정을 밟았다고 되어 있으니, 온돌 문화는 옥저가 아니라 숙신의 것이 아닌가? Krounovka를 옥저로 비정하기에는 삼국지의 설명과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다.
2253#6121 SIBLINGS CHILDREN COMMENT 6121
 
-0300 ± Krounovka 三國志(289)
其後高句麗背叛又遣偏師致討窮追極遠踰烏丸骨都過沃沮踐肅愼之庭東臨大海長老說有異面之人 그 뒤 (246년) 고구려가 배반하므로 또 다시 약간의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면서 지극히 먼 지방까지 추격하니, 오환과 골도를 넘고 옥저를 거쳐 숙신의 왕정을 짓밟고 동쪽으로 대해에까지 이르렀다. 장로가 ‘얼굴이 이상한 사람이 해가 돋는 근처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有五穀牛馬麻布 읍루에서는 5곡과 소·말·삼베가 산출된다. 古之肅愼氏之國也 옛 숙신씨의 나라이다.
2253#6151 SIBLINGS CHILDREN COMMENT 6151
 
-0300 ± Krounovka  온돌
-0300 ± Krounovka 온돌
2253#6147 SIBLINGS CHILDREN COMMENT 6147
 
-0300 ± Krounovka
2253#6117 SIBLINGS CHILDREN COMMENT 6117
 
-0300 ± Chernyatino
2253#824 SIBLINGS CHILDREN COMMENT 824
 
-0300 ±  정석배 교정
-0300 ± 정석배 교정
“옥저인, 발해인, 한인 이주민 모두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동일민족입니다.” -- 위의 사진은 각각 연해주 Krounovka와 대구 봉무동에서 출토된 주거지다. 옥저는 기원전부터 쪽구들을 사용하였으나 韓은 삼한시대에도 쪽구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도대체 동일 민족이라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공통점이라고는 농경민이라는 것 밖에 없다. 온돌은 시차가 있어 그것으로 엮는 것은 고대 인도와 신라를 불교로 엮는 것과 같다.
2253#6149 SIBLINGS CHILDREN COMMENT 6149
 
-0100 ± 늑도의 온돌
수혈식 주거지 중 방형보다 시기가 늦은 것으로 추정되는 원형에서 넙적한 돌로 조립한 터널형 온돌이 발굴됐다.
2253#1766 SIBLINGS CHILDREN COMMENT 1766
 
-0100 ± 늑도 심봉근 교정
두만강 유역에서 온돌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흘러왔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조선인이었다는 심봉근의 주장은 엉터리다. 당시 두만강 유역에는 옥저인이 살았다. 삼국지에는 조선의 동쪽에 예가 있고 예의 북쪽에 옥저가 있다고 했다.
2253#2414 SIBLINGS CHILDREN COMMENT 2414
 
-0100 ± 늑도
선사시대의 조개무지에서부터 한나라의 오수전, 일본의 やよい토기 그리고 북방의 온돌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이곳이 교류의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온돌은 기원전 2~1세기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다소 원시적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온돌이다.
2253#6122 SIBLINGS CHILDREN COMMENT 6122
 
-0100 ± Ivolginsky 쪽구들
쪽구들은 판석으로 아궁이와 측벽을 축조한 후 점토를 발라 마무리하였으며 주거 북동모서리에 아궁이를 꾸미고 북벽과 서벽을 따라 화기가 진행되는 구조다. 한반도의 세죽리-연화보 유형과 두만강 중류의 노남리와 토성리에서도 발견된 바 있으며, 중국동북지방과 연해주의 초기철기시대 단결-크로우노프카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볼가유적의 쪽구들은 최서쪽에서 발견된 것이다.
2253#6148 SIBLINGS CHILDREN COMMENT 6148
 
-0100 ± Ivolginsky
흉노 제국이 평지에 만든 성의 흔적과 주거지, 무덤군 등이 있다.
2253#2477 SIBLINGS CHILDREN COMMENT 2477
 
0466.0527 수경주(水經注)
水東有觀雞寺寺內起大堂甚高廣可容千僧下悉結石爲之上加塗塈基內疎通枝經脈散基側室外四出爨火炎勢內流一堂盡溫 관계수 동쪽에는 관계사가 있다. 절 안에는 법당이 세워져 있는데 매우 높고 넓어 천 명의 중들을 수용할 수 있다. 아래는 모두 돌을 괴어 만들고 위는 흙을 발라 바닥 밑에 공기가 통하게 하여 갈래가 이리 저리 퍼져 있다. 바닥 옆의 바깥에는 네 방향의 아궁이에서 불을 때어 불기가 안으로 들어가 법당 전체가 따뜻해지게 한다.
2253#6150 SIBLINGS CHILDREN COMMENT 6150
 
0466.0527 수경주(水經注)
아궁이가 바깥에 있고 방바닥 전체에 고래가 지나게 했다는 점에서 관계사의 난방이 한국의 온돌과 일치한다. 아궁이가 실내에 있고 고래가 방의 일부분만 지나는 고대의 쪽구들은 한국의 온돌과 다르다.
2253#6153 SIBLINGS CHILDREN COMMENT 6153
 
0466.0527 鮑丘水
관계수가 흘러 포구수로 들어간다.
2253#6152 SIBLINGS CHILDREN COMMENT 6152
 
0945 구당서 고려
冬月皆作長坑下燃熅火以取暖 겨울철에는 모두 구덩이를 길게 파서 밑에다 숯불을 지펴 방을 덮힌다. -- 구당서의 고려 설명은 평양 천도 이후의 고려 즉, 낙랑고려의 모습이다.
2253#6123 SIBLINGS CHILDREN COMMENT 6123
 
2008.05.29 강인욱
연해주 남부의 끄로우노프까문화에서는 기원전 4~1세기대에 이미 온돌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온돌은 환동해를 끼고 살던 사람들의 또 다른 창조품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남 사천 늑도에서 기원전 2~1세기대에 다소 원시적으로 만든 온돌이 발견되어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것으로 꼽힌다. 이곳이 교역의 요충지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환동해의 문화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2253#24964 SIBLINGS CHILDREN COMMENT 24964
 
2009.03.19 강인욱
몽골에서 다양한 흉노 유적이 발견되며 온돌이 흉노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버러 성지에서는 온돌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는데 그곳의 온돌은 옥저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 유목민들도 곡물과 여러 가지 생활도구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교역을 통해 정착민들로부터 그러한 것들을 구했으나 흉노 제국은 정착민들을 자신들의 영토 내로 이주시켜 그것들을 공급받았다. 흉노의 온돌 문화는 이러한 과정에서 흘러들어간 것이다.
2253#24965 SIBLINGS CHILDREN COMMENT 24965
 
2019.01.25 강인욱
온돌은 기원전 4세기께 두만강 유역의 옥저인들이 처음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후 곧바로 널리 퍼져서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조선, 부여, 고구려로 확산되었다. 기원전 1세기께는 남한 일대까지 퍼져서 남해안 늑도에서도 발견되었다. 흉노 제국에도 전해져 바이칼 인근의 이볼가 성터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흉노 이후의 유목 제국에서는 온돌을 만들지 않았다. 그대신 온돌은 비단길을 따라 여관에서 가끔 만들어진 것이 발견된다.
2253#6118 SIBLINGS CHILDREN COMMENT 6118
 
2019.01.25 강인욱 교정
온돌은 한민족의 발명품?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쪽구들은 Aleutian Islands의 것으로 옥저보다 500여년 앞선다. 이 쪽구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남쪽으로 전해져 옥저에까지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 또 옥저가 독자적으로 고안했다고 하더라도 옥저가 한민족인가? 두만강 유역이 한민족의 영역이 된 것은 이조 후기의 일이다. 그 전에는 그곳에 여진이 살고 있었다. 옥저는 한국으로 흡수되지 않았다. 그 전에 한국과 하나였던 적도 없다.
2253#2404 SIBLINGS CHILDREN COMMENT 2404
 
hypocaust
2253#26426 SIBLINGS CHILDREN 26426
 
경남 창원
경남 창원
5~6세기, 바닥이 높게 설치된 집 형태로 가로와 세로로 이어진 지붕과 출입문이 표현되어 있다. 
2253#2415 SIBLINGS CHILDREN COMMENT 2415
 
고려의 집모양 토기
고려의 집모양 토기
2253#6144 SIBLINGS CHILDREN COMMENT 6144
 
대구 봉무 건물지
대구 봉무 건물지
굴립주건물지 200여기 이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단일유적에서 조사된 수량으로는 전국 최대다. 만들어진 시기는 삼한시대로 추정된다. 창고 또는 주거지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주거지라면 다수 확인된 수혈식주거지와의 기능적인 면에서 비교가 필요하고, 창고라면 그 수가 너무 많아 단일 취락민의 창고로 보기 어렵다.
2253#6145 SIBLINGS CHILDREN COMMENT 6145
 
온돌 - 나무위키
산림황폐화의 주요 원인으로 온돌 난방을 들고 있다.
2253#26425 SIBLINGS CHILDREN 26425
 
온돌의 결과
온돌의 결과
2253#26450 SIBLINGS CHILDREN 26450
 
일본 よしのがり
일본 よしのがり
방어 시설이 철저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침략이 잦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목책에 가까운 굴립주 건물지의 일부를 망대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수혈식 건물지는 당연 집터다.
2253#6146 SIBLINGS CHILDREN COMMENT 6146
 
일본 よしのがり
일본 よしのがり
망루가 이렇게 촘촘히 있을 필요는 없으니 이 굴립주 건물지는 창고나 집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수혈식 집터가 따로 있으므로 이 굴립주 건물지는 창고로 보아야 한다.
2253#4408 SIBLINGS CHILDREN COMMENT 4408
 
¦온돌 요약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쪽구들은 Aleutian Islands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1000년경의 것이다. 그 다음 오래된 쪽구들은 두만강 중류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4세기께의 것이다. 이 둘의 상관관계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이후 쪽구들은 Krounovka에서 많이 만들어졌고 서북쪽으로는 바이칼 인근의 흉노 성터, 서남쪽으로는 남해의 늑도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쪽구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나라는 고려와 발해였다. 이 쪽구들은 아궁이가 실 ...
2253#6120 SIBLINGS CHILDREN COMMENT 6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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