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 연대기 > 391년부터 474년 사이 > 0391 일본서기(720)
 
0391-0474 倭의 韓國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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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1
49년 봄 3월 황전별과 녹아별을 장군으로 삼아 구저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너가 탁순국에 이르러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이 때 어떤 사람이 “군대가 적어서 신라를 깨뜨릴 수 없으니, 다시 사백·개로를 보내어 군사를 늘려 주도록 요청하십시오”라 하였다. 곧 목라근자와 사사노궤에게 (이 두 사람은 그 성을 모르는데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 장군이다) 정병을 이끌고 사백·개로와 함께 가도록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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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1
卌九年春三月 以荒田別鹿我別爲將軍 則與久氐等共勒兵而度之 至卓淳國 將襲新羅 時或曰 兵衆少之 不可破新羅 更復 奉上沙白蓋盧 請増軍士 卽命木羅斤資沙々奴跪是二人不知其姓人也 但木羅斤資者百濟將也 領精兵 與沙白蓋盧共遣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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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2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발·남가라·녹국·안라·다라·탁순·가라의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이에 백제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이 때 비리·벽중·포미지·반고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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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2
倶集于卓淳 擊新羅而破之 因以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七國 仍移兵西廻 至古爰津 屠南蠻忱彌多禮 以賜百濟 於是 其王肖古及王子貴須 亦領軍來會 時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自然降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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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3
그래서 백제왕 부자와 황전별·목라근자 등이 의류촌(지금은 주류수기라 한다)에서 함께 서로 만나 기뻐하고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오직 천웅장언과 백제왕은 백제국에 이르러 벽지산에 올라가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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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3
是以 百濟王父子及荒田別木羅斤資等 共會意流村今云州流須祇 相見欣感 厚禮送遣之 唯千熊長彥與百濟王 至于百濟國登辟支山 盟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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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4
다시 고사산에 올라가 함께 반석 위에 앉아서 백제왕이 “만약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들면 불에 탈까 두렵고 또 나무로 자리를 만들면 물에 떠내려갈까 걱정된다. 그러므로 반석에 앉아 맹세하는 것은 오래도록 썩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니, 지금 이후로는 천 년 만 년 영원토록 늘 서쪽 번국이라 칭하며 봄 가을로 조공하겠다”라고 맹세하였다. 그리고 천웅장언을 데리고 도읍에 이르러 후하게 예우를 더하고 구저 등을 딸려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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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720) 4
復登古沙山共居磐石上 時百濟王盟之曰 若敷草爲坐恐見火燒 且取木爲坐恐爲水流 故居磐石而盟者示長遠之不朽者也 是以 自今以後 千秋萬歲 無絶無窮 常稱西蕃 春秋朝貢 則將千熊長彥至都下 厚加禮遇 亦副久氐等而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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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의 해석
국사편찬위원회 해석 49년 봄 3월 황전별과 녹아별을 장군으로 삼아 구저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너가 탄순국에 이르러 신라를 치려고 하였다. 이 때 어떤 사람이 “군대가 적어서 신라를 깨뜨릴 수 없으니, 다시 사백·개로를 보내어 군사를 늘려 주도록 요청하십시오”라 하였다. 곧 목라근자와 사사노궤에게(이 두 사람은 그 성을 모르는데 다만 목라근자는 백제 장군이다) 정병을 이끌고 사백·개로와 함께 가도록 명하였다.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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