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0916~1125 遼 > 0993

왕치(성종)가 박랑유를 파견하여 표를 올려 죄를 자인하므로 조칙을 내려 여진국 압록강 동쪽 수백리 땅을 주었다.
 
 요나라와 왕씨고려
요나라와 왕씨고려
4498#2307 SBLNGS CHLDRN CMMNT 2307
 
0993.05
0993.05
4498#37212 SBLNGS CHLDRN 37212
 
0993.05 高麗史(1451)
夏五月 西北界女眞報 契丹謀擧兵來侵 朝議謂其紿我 不以爲備 서북계의 여진에서 거란이 군사를 동원하여 침략하려 계획한다고 알려 왔으나,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그들이 우리를 속인 것으로 여기고 방비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4498#5539 SBLNGS CHLDRN CMMNT 5539
 
0993.08 高麗史(1451)
是月 女眞復報契丹兵至 始知事急 分遣諸道兵馬齊正使 이 달에 여진이 거란의 군대가 침략하였음을 다시 알려오자, 비로소 일의 위급함을 알고 각 도에 병마제정사를 나누어 보냈다.
4498#5540 SBLNGS CHLDRN CMMNT 5540
 
0993.10 高麗史(1451)
冬十月 以侍中朴良柔爲上軍使 內史侍郞徐熙爲中軍使 門下侍郞崔亮爲下軍使 軍于北界 以禦契丹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임명하여 북계에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거란을 방어하게 하였다.
4498#37199 SBLNGS CHLDRN 37199
 
0993.10 高麗史(1451)  01
0993.10 高麗史(1451) 01
4498#37241 SBLNGS CHLDRN 37241
 
0993.10 高麗史(1451) 01
成宗欲自將禦之 幸西京 進次安北府 契丹東京留守蕭遜寧 攻破蓬山郡 獲我先鋒軍使·給事中尹庶顔等 成宗聞之 不得進乃還 熙引兵欲救蓬山 遜寧聲言 大朝旣已奄有高勾麗舊地 今爾國侵奪疆界 是以來討 又移書云 大朝統一四方 其未歸附 期於掃蕩 速致降款 毋涉淹留 성종이 몸소 방어를 지휘하려고 서경으로 행차하여 안북부로 가려는데, 거란의 동경유수 소손녕이 봉산군을 격파하고 아군의 선봉군사 급사중 윤서안 등을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4498#37205 SBLNGS CHLDRN 37205
 
0993.10 高麗史(1451) 01
서희가 군사를 이끌고 봉산군을 구하러 가자, 소손녕이 소리 질러 말하기를, “우리가 이미 고려의 옛 땅을 모두 차지하였는데, 지금 너희 나라가 그 경계를 침탈했으므로, 와서 토벌한다.”라고 하였다. 또 서한을 보내 이르기를, “우리가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귀부하지 않으면 소탕될 것이다. 속히 와서 항복하고 머뭇거리지 말라.”라고 하였다.
4498#37206 SBLNGS CHLDRN 37206
 
0993.10 高麗史(1451) 02
熙見書 還奏有可和之狀 成宗遣監察司憲借禮賓少卿李蒙戩 如契丹營請和 遜寧又移書云 八十萬兵至矣 若不出江而降 當湏殄滅 君臣宜速降軍前 蒙戩至營 問所以來侵之意 遜寧曰 汝國不恤民事 是用恭行天罰 若欲求和 宜速來降 서희가 글을 보고 돌아와서 강화할 여지가 있다고 아뢰자, 성종은 감찰사헌 차예빈소경 이몽전을 거란 진영으로 보내 강화를 청하도록 하였다.
4498#34192 SBLNGS CHLDRN 34192
 
0993.10 高麗史(1451) 02
소손녕이 다시 서한을 보내 이르기를, “80만명의 군사가 당도했다. 만약 강으로 나와 항복하지 않으면 모조리 섬멸될 것이니, 임금과 신하들은 속히 아군 앞에 와서 항복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몽전이 거란 진영에 이르러, 침공해 온 이유를 묻자, 소손녕이 말하기를, “너희 나라가 백성을 구제하지 않으니,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것이다. 만약 강화하려거든 빨리 와서 항복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4498#37220 SBLNGS CHLDRN 37220
 
0993.10 高麗史(1451) 02
▐ 速致降款, 宜速降軍前 그리고 宜速來降에서 보듯이 소손녕은 항복을 재촉하고 있다. 이는 소손녕도 전투를 더 치르지 않고 항복만 받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때, 백제가 수차례 왕자들을 보내 항복할테니 돌아가 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소정방이 거부하고 공격을 강행한 것과 대조된다.
4498#37224 SBLNGS CHLDRN 37224
 
0993.10 高麗史(1451) 02
0993.10 高麗史(1451) 02
4498#37268 SBLNGS CHLDRN 37268
 
0993.10 高麗史(1451) 02 ⪢⪢
4498#37269 SBLNGS CHLDRN 37269
 
0993.10 高麗史(1451) 03
蒙戩還 王會群臣 議之 或言 車駕還京闕 令重臣率軍士 乞降 或言 割西京以北之地 與之 自黃州至岊嶺畫爲封疆 可也 王將從割地之議 開西京倉米 任百姓所取 餘者尙多 王恐爲敵所資 令投之大同江
4498#34189 SBLNGS CHLDRN 34189
 
0993.10 高麗史(1451) 03
이몽전이 돌아오자, 성종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다. 어떤 사람은 왕은 개경으로 환궁하고 대신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항복을 간청하자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서경 이북의 땅을 갈라 그들에게 주고 황주에서 절령까지를 국경으로 정하자고 하였다. 성종은 땅을 갈라주자는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서경 창고를 열어, 백성들이 마음대로 쌀을 가져가게 하였는데, 여전히 남은 곡식이 많자, 적이 군량미로 사용할까 우려하여, 대동강에 던져버리라고 명하였다.
4498#34191 SBLNGS CHLDRN 34191
 
0993.10 高麗史(1451) 03
0993.10 高麗史(1451) 03
4498#37264 SBLNGS CHLDRN 37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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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8#37266 SBLNGS CHLDRN 37266
 
0993.10 高麗史(1451) 04
煕奏曰 食足 則城可守 戰可勝也 兵之勝負不在强弱 但能觀釁而動耳 何可遽令棄之乎 況食者民之命也 寧爲敵所資 虛棄江中 又恐不合天意 王然而止之
4498#37231 SBLNGS CHLDRN 37231
 
0993.10 高麗史(1451) 04
서희가 아뢰기를, “식량이 넉넉하면 성을 지킬 수 있고 전투에도 이길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패는 강하고 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의 틈을 잘 살펴 움직이는 데 있습니다. 왜 급하게 식량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식량은 백성의 생명이니, 차라리 적의 군량이 될지라도 어찌 헛되이 강에다 버리겠습니까? 그것은 하늘의 뜻과도 어긋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종이 옳은 말이라 여기고 중지하였다.
4498#37232 SBLNGS CHLDRN 37232
 
0993.10 高麗史(1451) 04
0993.10 高麗史(1451) 04
4498#37265 SBLNGS CHLDRN 37265
 
0993.10 高麗史(1451) 04 ⪢⪢

4498#37267 SBLNGS CHLDRN 37267
 
0993.10 高麗史(1451) 05
煕又奏曰 自契丹東京至我安北府數百里之地皆爲生女眞所據 光宗取之 築嘉州松城等城 今 丹兵之來其志不過取此二城 其聲言取高句麗舊地者 實恐我也 今見 其兵勢大盛 遽割西京以北 與之 非計也 且三角山以北 亦高句麗舊地 彼以谿壑之欲 責之無厭 可盡與乎 況今割地則誠萬世之恥也 願駕還都城 使臣等一與之戰 然後議之 未晩也
4498#37234 SBLNGS CHLDRN 37234
 
0993.10 高麗史(1451) 05
서희가 또 아뢰기를,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 안북부까지 수백 리 땅은 모두 생여진이 살던 곳인데, 광종이 빼앗아, 가주, 송성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지금 거란이 온 목적은 이 두 성을 차지하려는 것에 불과한데,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겠다고 떠벌리는 것은 사실 우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의 군세가 강한 것만 보고 급히 서경 이북 땅을 떼어 그들에게 주는 것은 잘못된 계책입니다.
4498#37235 SBLNGS CHLDRN 37235
 
0993.10 高麗史(1451) 05
게다가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인데, 저들이 끝없는 욕심을 부려 계속 요구한다면 다 줄 수 있겠습니까? 땅을 떼어 적에게 주는 것은 만세의 치욕이오니, 원하옵건대, 주상께서는 도성으로 돌아가시고, 신들에게 한 번 그들과 싸워보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는 것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4498#37236 SBLNGS CHLDRN 37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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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0993.10 高麗史(1451) 06
遜寧以蒙戩旣還 久無回報 遂攻安戎鎭 中郞將大道秀·郞將庾方 與戰克之 遜寧不敢復進 遣人促降 成宗遣和通使閤門舍人張瑩 往契丹營 遜寧曰 宜更以大臣 送軍前面對
4498#37246 SBLNGS CHLDRN 37246
 
0993.10 高麗史(1451) 06
소손녕은 이몽전이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회답이 없자, 안융진을 공격하였다.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그들을 물리치자, 소손녕은 감히 더 진군하지 못하고 사람만 보내어 항복을 재촉하였다. 성종이 화통사로 합문사인 장영을 거란 진영에 보내니, 소손녕이 말하기를, “대신을 군영 앞으로 보내 대면해야 한다.”고 하였다.
4498#37248 SBLNGS CHLDRN 37248
 
0993.10 高麗史(1451) 07
瑩還 成宗會群臣問曰 誰能往契丹營 以口舌却兵 立萬世之功乎 群臣無有應者 熙獨奏曰 臣雖不敏 敢不惟命 王出餞江頭 執手慰籍而送之
4498#37247 SBLNGS CHLDRN 37247
 
0993.10 高麗史(1451) 07
장영이 돌아오자, 성종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 묻기를, “누가 거란의 진영으로 가서 말로써 군사를 물리쳐 만세의 공을 세우겠는가?”라고 하였다. 신하들 가운데 응하는 사람이 없자, 서희가 홀로 아뢰기를, “신이 비록 영민하지는 않지만, 어찌 감히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성종이 강어귀까지 나와서 손을 잡고 위로하며 보냈다.
4498#37249 SBLNGS CHLDRN 37249
 
0993.10 高麗史(1451) 07
0993.10 高麗史(1451) 07
4498#37262 SBLNGS CHLDRN 37262
 
0993.10 高麗史(1451) 07 ⪢⪢
4498#37263 SBLNGS CHLDRN 37263
 
0993.10 高麗史(1451) 08
遜寧語熙曰 汝國興新羅地 高勾麗之地 我所有也 而汝侵蝕之 又與我連壤 而越海事宋 故有今日之師 若割地以獻 而修朝聘 可無事矣 소손녕이 서희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려 땅은 우리 소유인데, 너희들이 침범해 왔다. 또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기 때문에, 오늘의 출병이 있게 된 것이다. 만약 땅을 떼어 바치고 조빙에 힘쓴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4498#37270 SBLNGS CHLDRN 37270
 
0993.10 高麗史(1451) 09
熙曰 非也 我國卽高勾麗之舊也 故號高麗 都平壤 若論地界 上國之東京 皆在我境 何得謂之侵蝕乎 且鴨綠江內外 亦我境內 今女眞盜據其閒 頑黠變詐 道途梗澁 甚於涉海 朝聘之不通 女眞之故也 若令逐女眞 還我舊地 築城堡通道路 則敢不修聘 將軍如以臣言 達之天聰 豈不哀納 서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옛 땅이기 때문에,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다.
4498#37271 SBLNGS CHLDRN 37271
 
0993.10 高麗史(1451) 09
국경 문제라면 요나라의 동경도 우리 땅인데, 어찌 침범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압록강 안팎 또한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그 땅을 차지하고 간악하게 속이면서 길을 막고 있으니,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렵다. 조빙이 통하지 않는 것은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성과 보루를 쌓고 길이 통하게 해준다면, 어찌 감히 조빙을 잘 하지 않겠는가? 장군께서 나의 말을 천자께 전해 준다면, 애틋하게 여겨 들어주지 않겠는가?
4498#37272 SBLNGS CHLDRN 37272
 
0993.10 高麗史(1451) 10
辭氣慷慨 遜寧知不可强 遂具以聞 契丹帝曰 高麗旣請和 宜罷兵 그 말투가 강개하자 소손녕도 더 이상 강요하기 어렵다고 보고 그대로 보고하였다. 거란의 황제가, “고려가 강화를 요청해왔으면 철수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4498#37289 SBLNGS CHLDRN 37289
 
0993.10 高麗史(1451) 10
0993.10 高麗史(1451) 10
4498#37344 SBLNGS CHLDRN 37344
 
0993.10 高麗史節要(1452)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북계에 진을 치고 거란을 방어하게 하였다. 윤월. 서경에 행차하였다가 다음으로 안북부로 가려고 하였는데, 거란의 소손녕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봉산군을 공격하여 우리의 선봉군사인 급사중 윤서안 등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이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서희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봉산을 구하고자 하였다. 소손녕이 공표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이미 고구려의 옛 땅을 ...
4498#5662 SBLNGS CHLDRN CMMNT 5662
 
0993.10 高麗史節要(1452) 01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북계에 진을 치고 거란을 방어하게 하였다. 서경에 행차하였다가 다음으로 안북부로 가려고 하였는데, 거란의 소손녕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봉산군을 공격하여 우리의 선봉군사인 급사중 윤서안 등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종이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4498#41892 SBLNGS CHLDRN CMMNT 41892
 
0993.10 高麗史節要(1452) 02
서희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봉산을 구하고자 하였다. 소손녕이 공표하여 말하기를 “... 속히 항복하여...”라고 하였다. 서희가 그 글을 보고 돌아와서 강화할 수 있는 기미가 있다고 아뢰었다. 성종이 이몽전을 거란의 군영에 보내어 강화를 청하였다. 이몽전이 군영에 이르러 침입하여 온 까닭을 물었다. 소손녕이 말하기를 “백성들의 일을 돌보지 않으니...”라고 하였다. 이몽전이 돌아오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그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4498#4488 SBLNGS CHLDRN CMMNT 4488
 
0993.10 高麗史節要(1452) 03
“서경 이북의 땅을 나누어서 저들에게 주고 황주에서부터 절령까지의 선을 국경으로 삼음이 옳을 것입니다.” ▐ 황주는 옛 둔유로 추정되고 절령은 자비령이다. 이 선은 옛날 낙랑과 대방의 경계였다. 자비령은 훗날 1269년부터 1290년까지 몽골과 왕고의 경계가 되기도 했다.
4498#4491 SBLNGS CHLDRN CMMNT 4491
 
0993.10 高麗史節要(1452) 04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 984년에 압록강 가에 성을 쌓아 관문으로 삼으려다 여진의 공격을 받아 셋에 하나만 살아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청천강 바로 건너편에 있는 가주와 송성은 확보한 듯하다.
4498#4493 SBLNGS CHLDRN CMMNT 4493
 
0993.10 高麗史節要(1452) 04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서희가 한 말이다. 거란의 동경은 지금의 요양인데 요하의 동쪽에 있다. 안북부는 청천강을 건너기 전에 있었고 가주와 송성은 청천강 건너편에 있었다.
4498#5537 SBLNGS CHLDRN CMMNT 5537
 
0993.10 高麗史節要(1452) 05
"삼각산 이북지역 또한 고구려의 옛 땅인데, 저들이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가 어렵다’고 하는 욕심으로써 싫증낼 줄 모르고 그곳을 요구한다면, 다 줄 수 있겠습니까." ▐ 삼각산에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어 한때 이곳이 신라와 고려의 경계였음을 알 수 있다.
4498#4494 SBLNGS CHLDRN CMMNT 4494
 
0993.10 高麗史節要(1452) 06
소손녕은 이몽전이 돌아간 지 오래되었는데도 회답이 없자 마침내 안융진을 공격하였다.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맞서 싸워서 이겼다. 소손녕이 감히 다시 전진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어 항복할 것을 재촉하였다. 왕이 화통을 위한 사신으로 장형을 거란의 군영으로 보냈으나 소손녕은 다시 대신을 보내라고 하였다. 장형이 되돌아오니, 여러 신하들 중 아무도 가려는 자가 없었는데, 서희만이 홀로 아뢰기를, “감히 명령에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4498#4487 SBLNGS CHLDRN CMMNT 4487
 
0993.10 高麗史節要(1452) 07
“너희 나라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의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도 너희들이 침범하여 갉아먹고 있다. 또 우리와 더불어 영토를 맞대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건너 송을 섬기고 있으니, 우리 대국이 이 때문에 토벌을 하러 온 것이다. 이제 영토를 나누어 바치고 조빙의 예를 취한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4498#4489 SBLNGS CHLDRN CMMNT 4489
 
0993.10 高麗史節要(1452) 08
“우리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이니 국호를 고려라고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한 것입니다. 토지의 경계를 논하자면 상국의 동경도 모두 우리의 영역에 있는 것이 되는데, 어찌 침식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의 영역 안쪽인데, 지금 여진이 그 사이를 도적질하여 기거하면서 길이 막혀, 조빙이 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돌려주어 길이 통하게 하여 준다면 감히 조빙의 예를 갖추지 않겠습니까.”
4498#4492 SBLNGS CHLDRN CMMNT 4492
 
0993.10 高麗史節要(1452) 09
소손녕의 요구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요(遼)와 왕고의 역학관계에 걸맞게 왕고는 요를 섬겨라. (2) 왕고는 요와 경쟁관계에 있는 송(趙宋)을 섬기지 말라. (3) 고려의 옛 땅은 요의 것이니 왕고가 차지한 고려의 옛 땅을 돌려 달라. 이에 대해 서희는 왕고가 고려를 계승하였으므로 고려의 옛 땅을 돌려줄 수 없으며, 오히려 지금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여진을 쫓아내고 그 땅을 왕고가 차지하게 해 준다면 여진에 막혀 하지 못했던 요에 대 ...
4498#5663 SBLNGS CHLDRN CMMNT 5663
 
0993.10 高麗史節要(1452) 10
서희가 거란의 군영에 7일간 머무르다가 돌아오니 성종이 크게 기뻐하면서 강나루로 나와 맞이하고, 곧 시중 박양유로 하여금 예폐사가 되어 들어가 뵙게 하였다.
4498#4490 SBLNGS CHLDRN CMMNT 4490
 
0993_ 遼史(1343)
高麗王治遣樸良柔奉表請罪 詔取女直鴨祿江東數百里地賜之 고려 왕치(성종)가 박랑유를 파견하여 표를 올려 죄를 자인하므로 조칙을 내려 여진의 압록강 동쪽 수백리 땅을 주었다.
4498#5538 SBLNGS CHLDRN CMMNT 5538
 
_0993.10 高麗史(1451)
_0993.10 高麗史(1451)
4498#35192 SBLNGS CHLDRN 35192
 
_0993.10 高麗史(1451) ⪢⪢
4498#35196 SBLNGS CHLDRN 3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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