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역사 > 0320 매금

삼국사기(1145)에는 신라의 왕호가 居西干, 次次雄, 尼師今 그리고 麻立干이었다고 되어 있다. 居西干은 우두머리라는 뜻이고 次次雄은 무당, 尼師今은 잇수로 따진 연장자 그리고 麻立干은 지위를 나타내는 말뚝 중에서 최고를 말한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려와 신라의 금석문과 일본서기에는 寐錦이라는 신라의 왕호가 나온다. 이는 尼師今의 이칭으로 보인다. 尼師今은 임금의 어원이다.
 
단군설화의 기원
ᐥ단군설화는 중국의 위만이 평양으로 건너와 세웠다는 위만조선의 건국설화에서 비롯되었다.ᐥ
 
-0108 사기(-91)
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王險城未下 니계상 참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하여 왔으나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16496
 
-0057 삼국사기(1145) 신라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日)即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囯號徐那伐 시조는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 4월 병진(또는 정월 15일이라고도 하였다)에 즉위하여 거서간이라 일컬었다. 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이라 하였다. 居西干辰言王 或云呼貴人之稱 거서간은 진한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혹은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도 한다.
16494
 
-0057 삼국유사(1281)
位號曰居瑟邯 或作居西干 初開口之時自称云 閼智居西干一起 因其言稱之 自後爲王者之尊稱 왕위의 칭호는 거슬한 혹은 거서간이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처음 입을 열 때에 자신을 일컬어 말하기를 알지거서간이 크게 일어난다 하였으므로, 그의 말에 따라 이렇게 불렀으니 이로부터 임금의 존칭으로 되었다.
16510
 
0004 삼국사기(1145) 신라
南解次次雄立 次次雄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丗人以巫事鬼神 尚祭祀 故畏敬之 遂稱尊長者爲慈充 남해차차웅이 즉위하였다. 차차웅은 혹은 자충이라고도 한다. 김대문이 이르기를, “방언으로 무당을 일컫는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공경하였다. 그래서 존장자를 칭하여 자충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16495
 
0012 한서(82)
왕망(9~23) 초에 고구려 병력를 뽑아 오랑캐를 정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도망하여 변경을 나가 법을 어기고 도적이 되었다. 요서대윤 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 죽자 왕망이 장수 엄우를 시켜 치게 하였다. 엄우가 고구려후(高句驪侯) 추를 유인하여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장안에 보냈다. 왕망이 고구려를 하구려로 이름을 바꾸고 천하에 알리게 하였다.
16507
 
0020~0023 위략(265?)
至王莽地皇時 廉斯鑡爲辰韓右渠帥 聞樂浪土地美 人民饒樂 亡欲來降 지황 연간에 염사착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16497
 
0024 삼국사기(1145) 신라
儒理尼師今立 유리이사금이 즉위하였다. 金大問則云 尼師今方言也 謂齒理 昔南解將死 謂男儒理壻脫解曰 吾死後 汝朴昔二姓 以年長而嗣位焉 김대문은 이르기를, “이사금은 방언으로 잇금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 남해왕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인 유리와 사위인 탈해에게 ‘내가 죽은 후에 너희 박, 석 두 성씨는 나이가 많은 자가 왕위를 잇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16503
 
0032 삼국지(289)
當此時爲侯國 漢光武帝八年 高句麗王遣使朝貢 始見稱王 이때 후국이 되었는데 광무제 8년에 고구려왕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면서 비로소 왕의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후국이 되기 전에는 王을 칭했다고 보아야 한다.
16506
 
0049 후한서(445)
烏桓大人來朝 大人謂渠帥也 오환의 대인이 내조하였다. 대인은 우두머리를 말한다.
16488
 
0049 후한서(445)
▶위략(265?)에 나오는 右渠帥를 右渠+帥로 가르면 右渠가 조선이나 한국에서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사기(-91)에 나오는 右渠 또한 위만조선에서 우두머리란 뜻의 보통 명사였는데 중국인들이 조선왕의 이름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이 기록에서 보듯이 渠帥가 우두머리란 뜻의 보통 명사이므로 위략에 나오는 右渠帥는 右+渠帥로 갈라 진한의 우두머리 중의 한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16512
 
0080 삼국사기(1145) 신라
婆娑尼師今立 파사이사금이 즉위하였다.
16502
 
0245 이후 삼국지(289)
部從事吳林以樂浪本統韓國分割辰韓八國以與樂浪吏譯轉有異同臣智激韓忿攻帶方郡崎離營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하였다. 신지와 한인들이 모두 격분하여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진한 8국은 진번에 소속되었다가 빠진 8현일 가능성이 높다. 이 8현은 위치상 마한 지역으로 보아야 자연스럽다.
16487
 
0289 삼국지 馬韓
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각각 장수가 있어서, 세력이 강대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 하였다.
16489
 
0289 삼국지 馬韓
信鬼神 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 名之天君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에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서 천신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이라 부른다.
16511
 
0289 삼국지 弁韓
弁辰亦十二國 又有諸小別邑 各有渠帥 大者名臣智 其次有險側 次有樊濊 次有殺奚 次有邑借 변진도 12國으로 되어 있다. 또 여러 작은 별읍이 있어서 제각기 우두머리가 있다. 세력이 큰 사람은 신지라 하고, 그 다음에는 험측이 있고, 다음에는 번예가 있고, 다음에는 살해가 있고, 다음에는 읍차가 있다. ▶臣智와 邑借는 마한의 우두머리 명칭과 일치한다.
16509
 
0320(<200) 일본서기(720)
爰新羅王波沙寐錦 卽以微叱己知波珍干岐爲質 仍齎金銀彩色及綾·羅·縑絹 載于八十艘船 令從官軍 이에 신라왕 파사매금은 미질기지파진간기를 볼모로 하여 금은·채색릉라·겸견을 배 80척에 싣고 관군을 따르게 했다.
16490
 
0320(<200) 일본서기(720)
▶이 기록은 寐錦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사건이다. 일본서기에는 新羅王이 자주 나오지만 寐錦이라 불린 예는 波沙 밖에 없다. 따라서 波沙는 실제로 寐錦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삼국사기(1145)에는 婆娑를 尼師今이라 하였으므로 寐錦은 尼師今의 이칭일 가능성이 생긴다. 麻立干은 婆娑 이후에 생긴 호칭이므로 그 이전부터 사용된 寐錦의 이칭일 가능성은 없다. 마찬가지로 이 사건은 광개토왕 이전의 일이므로 寐錦은 광개토왕과도 관련이 없다.
16486
 
0381 삼국사기(1145)
26년 봄과 여름에 가물었기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렸다. 위두(衛頭)를 보내 부씨(苻氏)의 진(前秦)에 토산물을 바쳤다. 부견(苻堅)이 위두에게 물었다. “경이 말하는 해동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답해 말했다.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혁되고 이름이 바뀌었으니 지금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16520
 
0382 태평어람
秦書曰 符堅建元十八年 新羅國王樓寒遣使衛頭獻美女 國在百濟東 其人美髮髮長丈餘 又曰符堅時新羅國王樓寒遣使 衛頭朝貢 堅曰 卿言海東之事與古不同何耶 答曰 亦猶中國時代變革名號改易 ▶부견건원 18년은 서기 382년이다. 여기에 나오는 樓寒을 麻立干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樓는 마루(마립)라는 뜻을 표기한 것이고 寒은 간(干)의 발음을 표기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16519
 
0400 광개토왕릉비(414)
昔新羅寐錦未有身來論事▨國上廣開土境好太王▨▨▨▨寐錦▨▨僕勾 ▨▨▨▨朝貢 옛적에는 신라 매금이 몸소 와서 보고를 하며 청명을 한 일이 없었는데, 광개토왕대에 이르러 매금이 조공하였다. ▶자신들의 우두머리는 王이라 칭하고 신라의 우두머리는 寐錦이라 칭했다. 백제의 우두머리는 百殘主라 칭한 바 있다.
16491
 
0417 삼국사기(1145) 신라
訥祇麻立干立 눌지마립간이 즉위하였다. 金大問云 麻立者 方言謂橛也 橛謂諴操 淮位而置 則王橛爲主 㠯橛列於下 因以名之 김대문이 말하기를, “마립이란 방언으로 말뚝을 이른다. 말뚝은 함조를 말하는데 지위에 따라 설치하여 왕의 말뚝이 주가 되고 신하의 말뚝은 그 아래에 배열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명칭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16504
 
0449 중원고려비(中原高麗碑)
東夷寐錦遝還來節敎賜寐錦土內諸衆人 동이 매금이 늦게 돌아와 매금 토내의 제중인에게 절교사를 내렸다. ▶자신들의 우두머리는 王이라 칭하고 신라의 우두머리는 寐錦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광개토왕릉비의 표기와 같다.
16493
 
0503 삼국사기(1145) 신라
"예로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帝 또는 王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시고부터 지금 22세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으로만 부르고 존귀한 호칭으로 바로 잡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뜻으로 삼가 新羅國王이라는 호칭을 올립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16505
 
0524 울진봉평신라비
牟即智寐錦王 모즉지매금왕 ▶삼국사기(1145)에는 寐錦이 나오지 않고 居西干, 次次雄, 尼師今 그리고 麻立干이라는 칭호만 나온다. 그러나 이 금석문에 의해 신라 스스로도 寐錦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당시는 麻立干에서 王으로 칭호를 바꾼 503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인데 寐錦이라는 칭호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16492
 
0636 주서(周書)
王姓夫餘氏 號於羅瑕 民呼爲鞬吉支 夏言竝王也 妻號於陸 夏言妃也 (백제) 왕의 성은 부여씨로 '어라하'라 부르며,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부르니 이는 중국 말로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왕의 아내는 ‘어륙’이라 호칭하니, 중국 말로 왕비라는 뜻이다.
16508
 
0924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加以姓參釋種 遍頭居寐錦之尊 게다가 성마다 석가의 종족에 참여하여 국왕같은 분이 삭발하기도 하였으며 我法興王 剬律條八載也 우리 법흥왕께서 율령을 마련하신 지 팔년째였다. 爰有中貴捐軀 上僊剔髮 이에 귀현한 근신이 있어 제 몸을 바치고 임금이 삭발하였으며
16513
 
0924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삭발한 임금은 법흥왕을 말하는 듯하다. 울진봉평신라비(524)에도 법흥왕을 寐錦이라 칭했는데 여기서도 삭발한 임금을 寐錦이라 칭하고 있다. 비문의 다른 곳에서는 임금을 上이라 칭한 것과 비교된다.
1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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