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은 왕고의 공민왕이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되찾아 화령부로 개칭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의 영흥만 일대로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화령은 우리나라의 국호가 될 뻔했다.
한편, 명나라에 쫓겨난 몽골의 도읍도 화령이라 했다.
•
1369~1393 세종실록지리지
원나라에 속하게 되어 쌍성 총관부가 되었다. 공민왕 5년 병신에 군사를 보내어 수복하고 화주목(和州牧)을 삼았고, 18년 기유에 화령부(和寧府)로 승격시켜 부윤·소윤·판관을 두었으며, 이듬해 경술에 토관 각 아문을 두고 모두 인신을 주었다. 본조 태조 2년 계유(명나라 홍무 26년)에 외가인 최씨네가 부의 영흥진에 우거하였다하여 영흥부(永興府)로 고쳤다.
● 雙城摠管府(1258) - 和州牧(1356) - 和寧府(1369) - 永興府(1393)
2327#8981
SIBLINGS
CHILDREN
COMMENT
8981
•
1392.11 조선왕조실록
● 두 가지 안을 올렸지만 사실상 화령은 끼워넣은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조선을 쓰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명나라의 적국인 북원의 수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이성계는 친명 반란으로 집권했고 왕조를 갓 출범시킨 입장에서 중국의 지지가 절실했다. 국호의 결정을 명나라에 부탁한 것은, 명나라의 환심을 사는 동시에 명나라의 권위를 등에 업기 위한 것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제연합에 정식 국가로 가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2327#8983
SIBLINGS
CHILDREN
COMMENT
8983
•
전우용
이성계가 왕조를 세울 때 국호를 朝鮮으로 한 것은 朝鮮이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를 통합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나 朝鮮과 和寧 두 가지 안을 명나라에 올려 하나를 점지해 주도록 한 점이나 명나라가 朝鮮을 점지해 주자 주나라에 의해 朝鮮에 봉해졌다는 箕子를 언급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볼 때, 朝鮮이라는 이름이 事大主義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이성계는 명나라를 치라고 보낸 군대를 되돌려 왕씨 왕조를 친 사람이다.
2327#31503
SIBLINGS
CHILDREN
31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