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은 왕고의 공민왕이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되찾아 화령부로 개칭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의 영흥만 일대로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화령은 우리나라의 국호가 될 뻔했다.
한편, 명나라에 쫓겨난 몽골의 도읍도 화령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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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9 원사(1370)
明宗即位於和寧之北
명종이 화령의 북쪽에서 즉위하였다.
● 14세기 초의 元은 왕위쟁탈전이 한창이었다. 그러다 1329년에 패아지근화세랄(孛兒只斤和世剌 훗날 明宗)이 몽골과 차가타이 한국의 군사들을 모아 카라코럼(哈拉和林 또는 和林)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明에서 편찬한 元史에는 Qaraqorum을 화령(和寧)이라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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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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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9~1393 세종실록지리지
원나라에 속하게 되어 쌍성 총관부가 되었다. 공민왕 5년 병신에 군사를 보내어 수복하고 화주목(和州牧)을 삼았고, 18년 기유에 화령부(和寧府)로 승격시켜 부윤·소윤·판관을 두었으며, 이듬해 경술에 토관 각 아문을 두고 모두 인신을 주었다. 본조 태조 2년 계유(명나라 홍무 26년)에 외가인 최씨네가 부의 영흥진에 우거하였다하여 영흥부(永興府)로 고쳤다.
● 雙城摠管府(1258) - 和州牧(1356) - 和寧府(1369) - 永興府(1393)
2327#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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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11 조선왕조실록
예문관 학사 한상질을 보내어 중국 남경에 가서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으로써 국호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 “신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나라를 차지하고 국호를 세우는 것은 진실로 소신이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조선과 화령 등의 칭호로써 천총에 주달하오니, 삼가 황제께서 재가해 주심을 바라옵니다.”
2327#8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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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11 조선왕조실록
● 두 가지 안을 올렸지만 사실상 화령은 끼워넣은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조선을 쓰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명나라의 적국인 북원의 수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 이성계는 친명 반란으로 집권했고 왕조를 갓 출범시킨 입장에서 중국의 지지가 절실했다. 국호의 결정을 명나라에 부탁한 것은, 명나라의 환심을 사는 동시에 명나라의 권위를 등에 업기 위한 것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제연합에 정식 국가로 가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2327#8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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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ラコルム
○「和寧」は北元の本拠地カラコルムの別名であったので、洪武帝は、むかし前漢の武帝にほろぼされた王国の名前である「朝鮮」を選んだ
○ 화령(和寧)은 北元의 본거지 카라코람의 별칭이었다. 그래서 홍무제(명태조)는 옛날 漢 무제에 의해 멸망한 지역의 이름인 조선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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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이성계가 왕조를 세울 때 국호를 朝鮮으로 한 것은 朝鮮이 고구려, 백제 그리고 신라를 통합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나 朝鮮과 和寧 두 가지 안을 명나라에 올려 하나를 점지해 주도록 한 점이나 명나라가 朝鮮을 점지해 주자 주나라에 의해 朝鮮에 봉해졌다는 箕子를 언급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볼 때, 朝鮮이라는 이름이 事大主義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이성계는 명나라를 치라고 보낸 군대를 되돌려 왕씨 왕조를 친 사람이다.
2327#3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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