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369 任那 > 세부 주제들 > 西部 任那와 百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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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9 日本書紀(720)
왜의 군사가 반도로 건너와 백제의 군사와 함께 동부에 있는 신라를 치고 7국을 복속시킨 뒤, 다시 서부로 돌아 忱彌多禮 및 比利·辟中·布彌支·半古 4읍의 항복을 받아 백제에게 주었다.
29684
 
0369 忱彌多禮 → 제주도
29689
 
0369 比利 → 전주
29690
 
0369 辟中 → 김제
29691
 
0369 布彌支 → 나주
29692
 
0369 半古 → 반남
29693
 
0392 日本書紀(720)
왜가 紀角宿禰를 보내어 전해에 고려에 패한 것을 꾸짖자 백제는 辰斯王을 죽여 사죄하였다. 紀角宿禰 등은 阿花를 왕으로 세우고 백제의 강역을 나눠 그 땅에서 나는 산물을 모두 기록한 뒤 돌아갔다.
29686
 
0396 廣開土王陵碑(414)
광개토왕이 백제를 침공하여 牟婁城과 古牟婁城 등 58성을 빼앗고 1000명을 잡아갔다. 이때 잡아간 사람들은 광개토왕릉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는데, 그들의 출신지는 牟婁城, 古牟婁城, 比利城 등이었다. 58성은 마한 54국에 비견될 수 있으므로 과거 마한 지역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명목상으로만 취한 것이다.
16640
 
0397 日本書紀(720)
왜가 사신을 보내와 전해에 고려에 패한 책임을 물어 忱彌多禮 및 峴南·支侵·谷那·東韓을 빼앗고 태자를 볼모로 데려갔다. 광개토왕이 58성을 빼앗은 것처럼 이때 빼앗은 땅도 명목상으로 취한 것이다.
29685
 
0397 支侵 → 임실
29703
 
0397 谷那 → 곡성
29702
 
0449 中原高麗碑
古牟婁城이 언급되고 있는데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비석이 있는 충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의 369년과 512년 기록, 광개토왕릉비(414) 그리고 중원고려비(449)에 나오는 牟婁, 古牟婁 그리고 比利는 연대가 서로 멀지 않기 때문에 세 기록에 따로 나오더라도 각각 동일한 장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16641
 
0449 古牟婁 → 충주
29694
 
0475 日本書紀(720)
고려가 한성을 함락시키자 왜가 백제에게 下哆唎의 별읍인 久麻那利를 주었다. 久麻那利는 공주이니 下哆唎는 그 남쪽의 논산인 듯하다.
29687
 
0475 久麻那利 → 공주
29695
 
0475 下哆唎 → 논산
29696
 
0498 三國史記(1145)
백제 동성왕이 탐라에서 공납과 조세를 바치지 않는다 하여 치려고 무진주에 이르니 耽羅(躭牟羅)에서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중지하였다. 忱彌多禮는 369년에 백제의 몫이었는데 397년에 왜가 빼았았다. 475년에 久麻那利를 백제에 줄 즈음에 忱彌多禮도 준 듯하다.
29700
 
0512 日本書紀(720)
왜가 백제에게 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 4현을 주었다. 上哆唎는 下哆唎의 상류일 듯하므로 대전으로 추정한다. 牟婁는 공주에 별읍을 둔 下哆唎와 묶여 언급되므로 공주와 멀지 않을 것이고, 이름으로 보아 충주의 중원고려비에서 언급된 古牟婁와 멀지 않을 것이므로, 공주와 충주 사이에 있는 청주로 추정한다. 차현 남쪽에 있는 이 4현은 통틀어 峴南이라 부를 만하다.
29688
 
0512 上哆唎 → 대전
29698
 
0512 娑陀 → 부여
29537
 
0512 牟婁 → 청주
29699
 
0512 峴南 → 대전·논산·부여·청주
29701
 
0513 日本書紀(720)
백제와 가라가 己汶을 놓고 다투자 왜는 백제의 편을 들어주었다.
8482
 
0513 己汶 → 남원
29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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